교육부가 지난해말 2028 대입개편안을 발표하면서 현 중3 학생들이 고1이 되는 내년부터 고교학점제을 전면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는 정부의 새로운 대입제도가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무색할 뿐 아니라 고교학점제의 세부 지침도 없어 교육 현장은 혼란이 발생해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기준을 채우지 못해 졸업하지 못하는 낙제생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다.
흥미·적성에 따라 시간표를 짤 수 있어 학생들의 선택권을 넓혀주고, 학생 개별적으로 진로와 적성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교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들을 수 있다. 1학년 때는 공통과목(선택과목 수강 전 이수하는 과목)을 중심으로 수강하고, 2학년 때부터 선택과목을 본격 수강하게 된다.
현재 고교수업은 학반(class) 중심으로 같은 반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동일한 과목으로 진행된다. 대학의 수강 신청처럼 고교생이 직접 자신이 과목을 선택하고 수강할 수 있어 교육 체계의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현행 담임교사도 사라지고, 10~15명 학생들이 그룹을 지어 `소인수 담임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고교학점제는 현재도 일부 학교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내년부터는 모든 일반 고등학교 1학년부터 적용된다.
현재까지는 각 학년 수업 일수의 3분의 2 이상 출석하기만 하면 졸업이 가능하다. 그러나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는 내년부터는 각 과목별로 출석률 3분의 2 이상, 학업성취율 40% 이상을 모두 충족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학업성취율 40%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 즉 학점을 채우지 못한 미이수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별도 과제나 보충 이수를 통해 다시 학점을 딸 기회를 주지만 수강 과목 학점을 이수하지 못할 경우 졸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방침이 없어 재수강 제공 등의 구체적인 방안이 요구된다. 일선 교사들조차 고교학점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없어 불안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희정 경기교사노조 대변인은 “학생 입장에서도 적성과 흥미보다는 수능과 입시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고, 정규과정 외에 개설되는 다양한 교과수업으로 인한 피로도 증가 등이 예상돼 학교 교육이 아닌 평가기관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선택과목이 확대됨에 따라 이를 가르칠 교사 수도 함께 늘어야 하지만 교사 충원 없이 선택과목만 늘어나는 상황으로 교육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며 “실제로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중등교사로 전출을 희망하는 교사가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라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고교학점제가 적용되는 현 중3이 치르는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발표했다. 수능과 고교 내신을 개선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부의 이 개편안은 수능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를 없애기 위한 `통합형 수능` 도입과 내신 평가 `9등급→5등급제` 축소 개편 및 상대·절대평가 병기 등의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는 정부의 새로운 대입제도가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무색케 한다고 비판했다.
`통합형 수능`으로 바뀌면 문·이과 구분 없이 수능에서 국·영·수, 통합사회·과학 등을 공통으로 치르게 된다. 고교학점제 실시로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과목 선택권을 확대한다고 해놓고 수능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과목을 치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시 확대 기조가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는 만큼 학생들은 수능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고, 결국 자신의 흥미보다는 수능에 도움이 되는 과목 위주로 `수강신청`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양한 과목을 수강할 권한을 부여하는 고교학점제가 유명무실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범대 학장들은 내년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을 앞두고 교사가 가르칠 수 있는 교과인 ‘자격증 표시과목’을 유연하게 조정해 달라고 건의했다. 고교학점제가 실시되면 학생들이 선택할 여러 과목이 개설되는 만큼 교사 자격증이 나오는 과목도 다양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현재 교원 자격증 표시과목과 취득 방식 등을 규정한 ‘교원자격검정령’이 낡은 규제이기 때문이다.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