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인지도 모른 채> 김향금 개인전은 우선 시어(詩語) 같은 텍스트가 눈에 띄었다. 또한 특정 주제와 사물을 뚜렷하게 묘사하지 않은 대신 배경색의 대비나 질감, 색채의 조화를 통해 이미지를 표현한 작품이 특이하게 다가왔다.
나아가 `데포르메` 기법을 연상하게 했다. 데포르메는 특정 색을 사용해 그에 맞는 분위기나 감정을 표현하거나 특정 색의 면적을 조절해 어떤 주제와 사물의 형태를 추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김향금 작가의 이번 작품도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통해 느끼는 감정이나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아포리즘(aphorism)과 함께 독창적인 기법으로 담아냈다.
꽃을 화려하게 그리지 않았는데 마치 화폭 어디에 꽃이 숨어서 피어 있는 듯하다. 꽃이 곧 피어날 듯한 설렘과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굳이 꽃으로 말하면 아련한 안개꽃이다. 안개꽃은 장미 같은 꽃을 돋보이게 하는 고요한 배경의 꽃이다. 홀로 온전한 풍경이 되기 힘들다. 조연처럼 보이지만 주연을 돋보이게 하면서 붉은 장미에 지친 나의 눈을 은은하게 감싸 준다. 김향금 작가의 이번 작품 중 안개처럼 신비스러운 색상의 <너의 세계>가 시선을 끌었다. 양쪽 벽을 거의 채운 크기의 두 작품에 마치 짙은 안개가 깔린 듯 `블루 미스트(blue mist)`가 몽환적이다. 블루(blue)는 푸른색이고, 미스트(mist)는 안개를 뜻한다. 미스트는 원래 색상에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안개색이 단독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없다. `블루 미스트`처럼 특정 색상에 미스트가 붙은 색들은 원래 색보다 톤이 옅어지고 살짝 회색톤이 돌아 파스텔 톤보다 차분한 색상이 된다. 미스트가 들어간 색들은 원래 색보다 연해지는 것이 아니라 색상의 분위기가 조금씩 변하는 안개 같은 미스터리(mystery)를 느끼게 한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색의 존재론`을 주장하면서 미술 작품에 있어서 선과 형태보다 색의 중요성을 발견했다. 메를로 퐁티에 따르면 색은 하나로 고정된 색을 찾을 수 없으며, 색은 다른 색과의 관계를 통해 매번 다른 의미를 다양하게 드러낸다.
세잔은 "세상이 색으로 되어 있다"고 했고, 메를로 퐁티는 "세상은 살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메를로 퐁티에게 있어서 <살>은 정신과 대비되는 단순한 육체나 몸이 아니다. 감각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살아 있는 <감각 자체>다. 즉, 감각과 사물이 전혀 구분되지 않는 `감각 덩어리 자체`다.
사르트르는 "애무는 몸을 살로 바꾼다"고 했다. 몸은 도구를 사용하고, 살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살의 반응은 남녀가 키스할 때처럼 주체와 객체의 주고받는 관계를 분리하지 않고 사물과 감각이 완전히 혼연일체가 되는 경지에 이른다.
이처럼 순수 감각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은 몸에서 살로 전이되는 것을 의미한다. 김향금 작품을 볼 때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나름대로 세잔의 `색`을 느끼고, 메를로 퐁티의 `살`을 느낄 수 있으리라.
김향금의 <너의 세계> 두 화폭에 넘쳐 나올 듯한 `블루 미스트`에서 감상자는 그 속에 피어오르는 자신만의 꽃을 상상하기도 하고, 어둠 속에 박힌 별을 떠올릴 수도 있다. 별의 바탕은 블루 미스트보다 짙은 어둠이다.
정진규 시인은 <별>이란 시에서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라고 읊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1888년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릴 당시 `블루 미스트`가 있었다면 그 색을 사용했을까? 고흐는 <밤의 카페 테라스>에 대해 검정을 쓰지 않고 그린 밤의 풍경이라고 했다. 검정을 쓰지 않고 밤을 그린 고흐처럼 김향금 작가는 <너의 세계> 등 작품에서 빨강을 쓰지 않고 불타는 얼굴을 그렸다고 할까. 블루 미스트로 화려한 꽃과 빛나는 별을 감상자가 무한한 상상력의 캔버스에 그릴 수 있도록 안개 같은 여백을 남겨 둔 것 같다.
중국 북송(北宋)의 화가 곽희는 "그림은 소리 없는 시(詩)이고, 시는 형태 없는 그림”이라고 했다. 북송 시인 소식은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결론적으로 "그림은 말없는 시고,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 시인과 화가는 묘사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김향금 작가는 화가로서 그림 속에서 생생한 시어 같은 텍스트가 인상적이다. 그림 속 짧은 문구가 그림의 일부처럼 녹아드는 것 같다.
김향금 작가는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명상과 같다. 순간순간 생의 모습이 보여주는 글쓰기는 작업의 화두가 되고 삶을 바라보는 고요한 의식이 된다. 이 의식적인 행위가 작업으로 이어지면서 나는 나만의 주관성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소통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래서 작품 속의 이미지나 텍스트가 고정되지 않기를 바라며, 각자의 언어로 읽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회화적 추상성과 함께 언어를 해체해 나간다면 감정이입의 폭이 더 넓어질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구체적인 언어가 특정한 `상`을 직접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면 회화의 추상성은 텍스트를 유연하게 만들어 주고, 타자의 경험에 의해 변화하고 확장되는 해석까지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김 작가는 시각작업을 할 때 텍스트의 애매성과 모호성에 의지하려 한다. 순간적인 감흥으로 만들어 낸 문장이 고정되지 않고, 매일 새로운 언어로 다의적인 의미를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언어는 회화 속 이미지에 대한 해석의 변화를 유도할 수도 있다.
김 작가의 작업에 담긴 모든 감각은 시간 속에 머문 찰나를 표현하고 있다. 삶의 목적이나 가치를 일부러 만들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서 작업을 통해 느끼는 이 순간이야말로 궁극이며 영원일 것이다. 김 작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모든 것이 결국 본질을 향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증명되지 않아도 체화된 에너지를 통해 느껴지는 직관, 그로 인해 흐름과 멈춤을 반복하는 플로우(flow·흐름)를 표현하고자 한다.
김향금은 그림작업과 기획, 예술 행정 등을 두루 체험해 온 작가다. 김 작가에게 모든 활동은 언제나 창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번 개인전은 김 작가의 작품 활동과 창작의 여정을 글과 그림으로 선보이는 기획전시다.김향금의 17번째 개인전 <꽃인지도 모르는 채>는 지난 5월 15일부터 5월 31일까지 대구 갤러리동원(앞산)에서 초대전 형식으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 출품작은 22점이고, 대작 위주로 구성됐다. <꽃인지도 모르는 채>라는 타이틀을 보니 "내 삶이 꽃인 줄 모르고 꽃 찾아 떠돌다 돌아오니 꽃이 진다"라는 이해리 시인의 시 <꽃이 진다>가 떠오른다. 꽃이 지기 전에 전시회에 한번 가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