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국회출입기자단 선정 `약속 잘 지키는 국회의원 1위`, `일 잘하는 국회의원 1위. `2007·2009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민선4기 광역자치단체 공약이행도 평가 1위. 2007년 포브스 경영품질대상 공공혁신부문 대상 수상. 2009년 포브스 경영품질대상 리더십부문 대상 수상. 환경관리기사, 열관리기능사 등 국가자격증 9개 보유. 김문수 후보의 이력이다.   노동운동 1세대인 김문수 후보는 장기표 재야운동가와 마찬가지로 김영삼 정부 시절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지급한 민주화운동 보상금(당시 예상 금액 3억∼4억원)을 수령하지 않았다. 김 후보는 “국회의원 하고 도지사 하고 했으면 됐지, 내가 국민 세금을 또 받으면 되나”고 했다. 또 초선 국회의원 시절 관용차로 소형차인 아반떼를 타고 다니다가 국회의원인지 모르고 국회 정문에서 자주 검문을 당한 일화가 있다. 2002년 고속도로에서 추돌사고가 난 뒤 소나타로 차를 바꿨다. 경북 영천군 임고면에서 태어난 김문수 후보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공부를 잘해 지방 최고 명문인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경북고 3학년 때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아 결국 중징계를 받았다. 입시 준비에 전념해야 할 시기에 학생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은 그가 어려서부터 정의감과 패기가 넘쳤음을 보여준다.서울대 입학 직후 학생운동에 투신해 1971년 10월 제적됐고, 노동운동을 하다가 1973년 10월 복학했다. 그러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또 제적됐다. 1993년 9월 서울대에서 시국사건 관련자 복학 조치로 3학년 2학기로 복학했고, 남은 39학점을 이수해 1994년 24년 만에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당시 김문수가 꼬박꼬박 수업에 출석하자 교수가 "오지 않아도 됩니다. 시험 때만 오면 됩니다"라고 했지만 꾸준히 출석해 A학점을 받았다고 한다. 명석한 두뇌에 남다른 뚝심과 성실성이 돋보였다.김문수는 그 어려운 일류대(서울대) 인기학과(취직이 잘되는 경영학과)에 들어가서도 개인의 영달보다는 어려운 이웃과 함께할 수 있는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한일도루코 공장에 위장취업해 밑바닥부터 힘든 노동을 하면서 노조위원장을 지내는 등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1980년대는 대학생들의 위장취업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이 시기 대학생들과 노동운동계에 뛰어든 20대 젊은이들에게 김문수는 `전설`이었다. 당시 김문수의 연설 내용을 그대로 적은 필본이 돌아다니곤 했는데, 그 연설을 못 본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필본을 돌려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당시 학생운동권에서는 노동자 해방과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서울 구로공단 등 노동현장에 뛰어들었으나 상당수가 중도에 포기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김문수는 인간에 대한 불타는 사랑으로 그야말로 `맨살로 맨땅을 긁는 처절함`으로 끝까지 버티어 냈다고 한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구속수감된 김문수의 뒤를 이은 인물이 바로 심상정 전 제20대 대선 정의당 대통령 후보였다. 심상정의 결혼을 주선해 준 사람도 김문수였고, 김문수는 고문당하면서도 심상정의 위치를 끝까지 말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의리의 사나이`로 통한다.김문수는 그때까지 혁명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노동자 조직을 규합해 결정적 시기에 정권을 장악하는 대한민국의 전복을 꿈꾼 것이다. 그는 "내 이상은 노동자와 빈민, 농민, 소상공인, 지식인들이 합쳐서 재벌과 외세, 군부를 타도하는 데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좌익이었다"라고 고백했다.민중당의 실패 이후 1년간 택시기사로 일했다.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를 영입해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 김문수는 우익으로 전향한다. 옛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 정책 추진에 이은 1989년~1990년대초 베를린 장벽과 동유럽, 소련의 사회주의체제 붕괴는 김문수를 보수우파로 전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선거구에 출마해 현역 국회의원인 자유민주연합 박규식 후보와 김대중의 측근인 새정치국민회의 박지원 후보 등을 꺾고 당선됐다. 이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2006년부터 2014년까지 2선 경기도지사를 지내면서 평택에 세계 최대 삼성 반도체 단지를 유치해 대규모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고, GTX 사업을 추진해 수도권 교통망으로 크게 개선한 실적이 높이 평가된다. 서울에서 한 시간 넘는 거리에 있는 평택에 근로자를 유입시키기 위해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을 추진했던 것이다. 김문수 후보는 "그 때 삼성전자는 국내에 반도체 투자를 일체 하지 않았다"며 "내가 경기도지사를 8년을 했는데 그 중 6년 동안 삼성전자를 설득했다. 그 결과 평택에 삼성 반도체 단지 착공식을 보고 퇴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특히 지난해 12월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과를 요구했으나 김문수 후보(당시 고용노동부 장관)는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 신념이 강한 꼿꼿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 모두가 일어나 고개를 숙인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국민의힘 김문수 제21대 대선 후보의 10대 공약 ▶자유주도성장, 기업하기 좋은나라 ▶AI-에너지 3대 강국 도약 ▶청년이크는나라, 미래가 열리는 대한민국 ▶GTX로 연결되는나라, 함께크는대한민국 ▶중산층자산증식, 기회의 나라 ▶아이낳고 기르기 좋은나라,안심되는평생복지 ▶소상공인, 민생이 살아나는서민경제 ▶재난에 강한나라, 국민을 지키는대한민국 ▶특권을 끊는 정부, 신뢰를 세우는나라 ▶북핵을 이기는 힘, 튼튼한국가안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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