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5월, 6.25 한국전쟁의 참혹한 시기에 부모님 덕에 세상과의 인연을 갖게 되었다. 전란 속에 이름도 없는 갓난인생이 휴전 후 1954년 5월에 송인태라는 법적 이름을 얻게 되었고 전후 학창시절도 순탄하지 못해 청주-대전-대덕-유성-서울에서 고학생활로 이어오다 군 입대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뜻밖에 행운의 카투사로 선택받게 된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갓 태어난 아기 붓다가 한 손은 하늘을,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일곱 걸음을 걸은 뒤 외쳤다는 말이라고 한다. 이는 전승(傳承), 즉 전해오는 이야기다. 막 태어난 아기가 걸음을 걷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초기불교 경전에도 그런 기록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 말을 '하늘 위와 하늘 아래서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데 그쳐 정작 "중생 모두가 부처(각자·覺者·깨달은 존재)"라는 석가모니의 메시지를 간과하기 쉽다. 일부 문헌에는 '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삼계개고 아당안지'가 이어진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이다. 이 말은 '이 세상에서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니 온통 괴로움에 휩싸인 세상(중생)을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라는 뜻이다. 이는 한역자(漢譯者)가 빨리어 경전을 근거로 '三界皆苦 我當安之'를 뒷부분에 첨가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지만 붓다밤사(佛種姓經)의 수기를 반영한 절묘한 번역이라는 주장도 있다. 빨리어는 산스크리트어(범어)에 비교해 속어 또는 사투리라고 불리는 쁘라끄리뜨의 하나다. 『장아함경(長阿含經)』에는 "천상천하 유아위존 요도중생 생로병사(天上天下 唯我爲尊 要度衆生 生老病死)"(대정장 T1, 4중)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는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내가 존귀하다. 요컨대 나는 중생들을 생로병사에서 구할 것이다’라는 의미다. 『아함경』은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한 설법을 구전에서 문서화해 모은 초기 경전이다. 장아함경(長阿含經)은 이름 그대로 아함경 가운데 긴(長) 내용들을 따로 엮어 만든 경전이다. 흔히들 아함경을 초기불교 문헌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함경은 '부파 불교의 문헌'이다. 불교는 석가모니 입멸 후 약 100년간 단일 교단으로 이어졌다. 이 시절의 불교를 '초기불교' 또는 '원시불교'라고 부른다. 약 100년이 지난 뒤부터 계율과 교리의 해석 문제로 승단이 분열해 '부파불교'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렇게 갈라진 다양한 부파의 여러 승려가 전승한 경전을 모은 것이 아함경이고, 장아함경은 아함경 이후의 경전이다. 한문이든 빨리어든 경전에 나오는 부처님 첫마디의 공통점은 중생을 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따라서 문자에 얽매이면 ‘우주에서 인간보다 더 존귀한 것은 없다’는 부처님의 진의를 알 수 없다. 선가(禪家)와 세속가(世俗家)에서 '견지망월(見指忘月)'을 자주 사용한다. 이는 중요한 본질인 '달'은 보지 못하고 중요하지 않은 '손가락'에만 집착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문자와 기록은 손가락에 해당하며 달을 보기 위한 수단인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면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되기 쉽다. 불가의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말이나 글에 의존하지 않는다. 즉, 불립문자(不立文字),, 염화미소(拈華微笑)다. 따라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란 문구에 갇히지 말고 부처님의 참된 메시지에 귀기울여야 한다. ‘하늘 위와 아래서 나를 존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오직 나 스스로 혼자뿐이다'로 해석하면 자구(字句) 해석을 넘어서서 앞뒤 모든 의미가 자연스레 연결된다.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도 고통 받는 중생 모두에게 내가 마땅히 평안과 구원을 주겠다라고 받아들이면 무난하다. 빨리어 불경에서도 부처님은 탄생 시 "나는 세상에 광명을 비추고, 고통과 번뇌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모든 중생이 부처라는 말이 있다. 화엄경은 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부처님과 같이 일체 만법의 근본인 자성(自性)을 깨칠 수 있는 무한하고 절대적인 능력인 지혜 덕상, 즉 자아경(自我經)을 지니고 있으나 분별 망상에 가려서 성불하지 못할 뿐이라고 선포했다. 백천만겁(百千萬劫) 속에서 이 땅에 온 부처님은 이 세상이 이미 구원됐는데 중생이 삼독(三毒), 즉 욕심·분노·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번뇌에 가려 이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무명(無明)에 가려 깨닫지 못하고 고통의 바다에서 계속 허우적거릴 수는 없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부처(부처는 覺者, 즉 깨달은 자라는 뜻)가 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되자.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
'2024년 경북청유 선비문화 칠곡포럼'이 지난 5월 11일 칠곡문화원 3층 강당에서 개최됐다. 이번 '慶北靑儒 선비포럼'은 경상북도청년유도회(회장 김홍희)가 주최하고, 칠곡군청년유도회(회장 이우석)가 주관했으며, 경상북도와 칠곡군, 인천채씨 투암공파종회(회장 채종률)가 공동후원했다. 우선 정우락 경북대 교수가 '공자의 예술정신과 문학사상'이란 주제로, 구본욱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투암 채몽연·백포 채무 부자의 생애와 학업, 현창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각각 발표를 했다. 구본욱 교수는 "투암(投巖) 채몽연(蔡夢硯) 선생은 조선 중기 대구에서 태어나 한강(寒岡) 정구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유학자다. 그의 아들 백포 채무는 서사원·한강 선생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문과에 합격해 병조좌랑을 역임했다"고 소개했다. 구본욱 교수는 "채몽연·채무(蔡楙) 부자는 많은 저술을 했으나 1640년, 1663년 두 차례 화재로 하남정사가 불에 타 그가 저술한 시문과 서적이 모두 잿더미로 변해 소수의 시문만 전하고 있다. 그의 문집은 19세기에 이르러 아들 백포 채무의 문집과 함께 편집되는데, 당시 사미헌(四未軒) 장복추(1815~1900) 선생이 편집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1702년(숙종 28) 지방유림의 공의로 채몽연·채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소암서원(嘯巖書院)이 창건돼 두 선생의 위패를 모셨다. 1847년(헌종 13) 장내범(張乃範)을 추가 배향해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 훼철, 소암서원은 칠곡군 기산면 평복리로 이건돼 지금의 '소암서당(嘯巖書堂)'으로 유지되고 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사상사를 전공한 채억곤 역사학자는 '소암서원(嘯巖書院)이 품은 향기'라는 주제의 특별기고를 통해 낙동강 칠곡보 인근 산성(토성)이 관호산성이 아니라 '백포산성'이라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조명했다. 채억곤 사학자는 "백포 선생(1588~1670)의 성은 채(蔡)씨, 휘는 무(楙), 자는 자후(子後), 호는 귀은자(歸隱子)·백포(栢浦), 본관은 인천이다. 백포 선생은 서사원 정구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1612년(광해군 4) 향시인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됐으며, 그 후 성균관에 들어가 폭넓게 학문을 연마했다. 1633년에는 대과(大科)에도 급제해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로 기용됐다"고 백포 선생을 소개했다. 채억곤 사학자는 "백포 선생은 병조좌랑을 끝으로 관계에서 물러난 후 고향으로 돌아온 후, 칠곡군 약목면 관호리 낙동강변에 위치한 백포산(栢浦山)에 자주 올라 여러 학자들과 교유했다. 백포산 정상부에 위치한 백포산성의 경치가 사계절 무척 아름다워 이곳 고유의 지명인 '栢浦(백포)'를 선생의 호(號)로 삼았다. 그래서 선생의 본래 호인 '귀은자(歸隱子)'보다 ‘백포’로 더 많이 불리었고 이후 ‘백포 선생’으로 통하게 됐다"고 밝혔다. 백포산성 북동쪽 산기슭에는 능허대(凌虛臺)라는 넓고 평탄한 큰 바위가 하나 있다. 이곳에서 지역의 여러 선비들과 더불어 시도 읊고 함께 술잔도 기울였다. 이곳이 바로 백포 선생이 노년에 낙동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보며 인생을 즐긴 유식(遊息)의 장소였다. 채억곤 사학자는 자신의 저서 『칠곡의 역사』에서 낙동강 칠곡보 인근 '백포산성'의 유래와 명칭에 대해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백포산성에서 ‘백포’는 한자로 ‘栢浦’이다. 栢은 원래 ‘측백나무 백’ 자이고, 浦는 ‘개 포’ 자이다. 산성이 있는 이곳은 옛날부터 측백나무가 울창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측백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나무로 절벽이나 바위틈, 또는 척박하고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다. 특히 상큼하게 나는 독특한 향과 상록수인 측백나무는 조선 시대 성리학자의 기절(氣節)과도 잘 부합돼 예부터 성리학자들이 귀하게 여기는 나무였다. 또한 이 산성의 남서쪽 밑에는 오목하게 들어간 개(간석지의 일종)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와 함께 울창한 측백나무 숲이 어우러져 이 산성의 뒷산을 백포산(栢浦山)으로 지칭하게 됐고, 산성 밑 마을을 백포동(栢浦洞)으로 일컬어 왔다. 따라서 ‘백포’는 이미 지명으로 고유명사화한 지 오래이고, 줄곧 ‘백포산성’으로 불리어 왔다. 따라서 이 산성 이름을 역사가 짧은 ‘관호산성(觀湖山城)’ 보다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백포산성’으로 부르는 것이 더욱 친숙하고도 향토적인 이름으로 판단된다. 나아가 전통문화의 수호 차원에서도 부합한다. 백포산성은 삼국시대인 4세기경 성산가야의 연맹체인 변군미국에서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성(城)의 축조는 보통 그 지역의 방어에 주목적을 두고 있는 만큼 이 성이 낙동강 서안(西岸)에 위치해 변군미국과 성산가야의 지역 방어와 합치되기 때문이다. 또 백포산성과 인접한 성주군 월항면과 기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봉화산 정상부에는 성산가야 시대에 축조된 봉화산성(烽火山城)이 있다. 이 성은 산 정상에 쌓은 토석성의 산성으로, 토성(土城)인 백포산성과 축성 방법에 있어서 유사성이 많다는 점이다. 이성숙 기자 9746002@hanmail.net
칠곡군은 성실납세자에 대한 우대혜택을 추가 시행하기 위해 지난 16일 군 금고인 NH농협은행 칠곡군지부, 대구은행 왜관지점과 “칠곡군 성실납세자 금융우대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칠곡군은 건전한 납세문화를 정착하고 성실납세의식 고취를 위해 매년 3월 성실납세자를 선정하여 칠곡사랑상품권과 공영주차장 무료이용 혜택을 주고 있는데, 금번 협약에 따라 기존 혜택 이외에 이들 금융기관을 통해 금리우대 및 각종 수수료 인하 등의 혜택을 추가적으로 제공한다.
칠곡지역에서 바르게살기운동을 펼치면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놓고 깊이 생각해 보았다. '바르다'는 사전적으로 "말이나 행동 따위가 사회적인 규범이나 사리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부합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즉 언행일치(言行一致)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생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가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따라서 언행일치하는 '바르게 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이인편(里仁篇)에서 "옛사람이 함부로 말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실행이 미치지 못할까 부끄러워서였다(古者, 言之不出 恥躬之不逮)"라고 지적했다. 言之不出(언지불출)은 말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벼이 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언행일치가 되는 군자(君子)는 자기가 한 말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까 말을 아낀다. 바르게 사는 군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 자신이 실천할 수 없는 말을 할 때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논어 위정편 13장에는 "자공이 군자에 관해 묻자 공자께서 '자신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먼저 실천하고 난 이후에야 그것을 말해야 한다'고 답했다(子貢問君子 子曰 先行其言 而後從之)"라는 구절이 나온다. 자신이 말한 대로 작은 일부터 지키지 못하면 후에 큰일까지 행동이 말에서 벗어난다. 이처럼 공자는 말보다 행동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실천을 수반하지 않은 말을 가장 경계했던 것이다. 공자는 먼저 실천한 뒤에 말하라고 했다. 말과 행동에서 행동이 먼저다. 자공(子貢)은 공자가 아끼는 제자이지만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말이 많으면 언행일치가 어렵다. 많은 말을 실천에 다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군자의 말에는 위엄이 있어야 한다. 잘못 말하면 권위를 잃는다. 공자는 논어 곳곳에서 말을 삼가고 먼저 행동할 것을 역설한다. 논어 학이편에서는 "일에는 민첩하되 말에는 삼가라(敏於事 愼於言)"고 권유한다. 공자는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이야말로 바르게 사는 군자로 보았다. 군자는 진심(眞心)과 신심(信心)을 성실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만큼 부끄러울 것이 없고, 언제 어디서나 떳떳하다. 말만 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 말은 아무런 의미와 실속이 없는 허언(虛言)이 되고 만다. 말이 앞서는 소인(小人)은 거짓말이 드러날까 두려워 또다른 더 큰 거짓말을 계속함으로써 그것을 합리화하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소인이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그가 어떠한 행동을 해도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군자처럼 바르게 사는 것과 착하게 사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착하다'는 말은 마음이 곱고 상냥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착하게 산다는 것과 바르게 산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저 남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착하게 보인다. 잘못된 것 같은데도 그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착하게 살아가는 것은 상대와 현실에 순응하기에 쉽게 살아가는 삶일 수 있다. 반면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며 바르게 사는 사람은 틀렸으면 틀렸다고 지적한 후 틀린 것을 바로잡기 위해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남들의 미움을 받아 가면서 바르게 살아가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상대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착하게 사는 것이 어쩌면 훨씬 쉽게 사는 삶일 수 있다. 남들의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 타인의 시선에 맞추는 착한 삶은 '좋은 게 좋다는 식'이어서 발전이 없다. 그러나 진리와 정의에 입각해 자신의 주관을 버리지 않고 올바르게 사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의 진실이 입증되고, 전체 사회가 정의롭게 변해가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을 확인할 것이다. 물론 착하게 살아가는 것이 결코 나쁜 삶이라는 말이 아니다. 남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선(善)하게 살아가는 동시에 보다 나은 국가나 사회, 온 인류를 위한 공동선(共同善)을 위해 바르고 정의롭게 살아가자는 말이다.
2024 갑진년(甲辰年)은 푸른 용띠, 청룡의 해다. 갑진년은 육십갑자(六十甲子)의 41번째 푸른색의 '갑(甲)'과 용을 의미하는 '진(辰)'이 만나 청룡(靑龍)의 해인 것이다. 전설에 용이 도를 깨우치면 비늘의 색이 파란색이나 초록색으로 변해 청룡이 된다고 한다. 소재학(미래예측학자) 동국대학교 교수는 "용은 희망적인 변화를 상징하기에 청룡의 해 대한민국은 희망을 향한 변화와 변혁의 시기이고, 혼란을 극복하며 피어나는 '희망의 꽃봉오리'로 표현할 수 있다"면서 "비록 대립과 갈등, 혼란은 있지만 그 속에서도 화합과 재도약을 위한 희망적인 기틀이 마련되는 해"라고 지적했다. 소 교수는 "제22대 총선을 치르는 올해 4월 10일은 '갑진(甲辰)년 무진(戊辰)월 갑진(甲辰)일'로 희망과 변화를 상징하는 '진(辰)'의 용이 3마리 겹치는 날이다. 이는 극심한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고 예측했다. 갑진년 청룡의 해에 태어난 필자는 오는 4월 10일 갑진(甲辰)년 무진(戊辰)월 갑진(甲辰)일 진시(辰時·오전 7시~오전 9시)에 투표할 예정이다. '진(辰)'의 용이 4마리나 겹치는 일시(日時)기 때문이다. 아니 필자가 용띠니 용이 5마리 겹칠지 모르겠다. ▶올해 2월 4일 이후 출생자가 갑진년 '청룡의 띠' 그런데 2024년 1월 1일부터 2월 3일까지 태어난 아이는 청룡띠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올해 2월 4일 이후에 태어나야 갑진년 청룡띠가 된다는 것이다. 사주명리(四柱命理)에서 입춘을 한 해의 시작점, 즉 설날로 보기 때문이다. 올해 입춘은 2월 4일이다. 입춘(立春)은 24절기 가운데 첫번째다. 태양의 황경이 315도에 위치한다. 입춘은 24절기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로 음력 1월에 해당하며, 새해를 상징한다. 농경사회에서 농사의 기준이 되는 첫번째 절기로 큰 의미를 지닌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김일권 교수는 "띠는 바로 태양의 위치를 따라 매기는 시간 요소 이어서 24절기 중 1년의 시작 절기인 입춘을 기준으로 바뀐다"고 단언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태어나면서 가지는 띠를 대부분 사람들은 음력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전통달력은 음력이라기보다는 정확히 태음태양력이다. 이는 달의 변화도 반영하고, 태양의 변화도 동시에 반영한 것이다. 달의 위치는 음력 날짜로 표시하기로 했고, 태양의 위치는 24절기로 나타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갑자(甲子)로 시작해 계해(癸亥)로 끝나는 60간지 천간(天干) 또는 십간(十干)은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를 이른다. 지지(地支) 또는 십이지(十二支)는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다. 간지(干支)는 천간(天干)의 간(干)과 지지(地支)의 지(支)를 딴 것이다. 육십갑자(六十甲子)란 천간 10개와 지지 12개를 순서대로 조합해 만든 간지 60개를 말한다. 매년 순서대로 천간과 지지를 조합하면 갑자(甲子)로 시작해 계해(癸亥)로 끝나는 60간지가 구성된다. 산술적으로 천간 10개와 지지 12개를 결합하면 120개(12×10) 조합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천간과 지지는 짝수와 홀수로 조합하지 않고, 짝수는 짝수끼리, 홀수는 홀수끼리 조합하는 결과 최대 조합은 60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 바퀴 도는 60간지, 즉 60년의 단위를 1갑자(甲子)로 부른다. 회갑(回甲) 또는 환갑(還甲)은 1갑자를 돌았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10개의 천간은 색을 의미하고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12개 지지는 동물을 상징한다. 갑을은 청색, 병정은 적색, 무기는 황색, 경신은 백색, 임계는 흑색이다. 이러한 오행(五行)의 색은 우주 만물 변화의 다섯 기운인 목(木·나무), 화(火·불), 토(土·흙), 금(金·쇠), 수(水·물)의 오행에 따른다. 갑을(甲乙)은 무성하게 솟아나는 푸른 나무(木)와 풀 같은 청색이며, 병정(丙丁)은 불(火)처럼 내리쬐는 태양 같은 적색이다. 무기(戊己)는 대자연의 광활한 대지와 땅(土)의 황색이고, 경신(庚辛)은 보석과 제련된 금속(金) 같은 백색이다. 임계(壬癸)는 계곡과 연못 및 검푸른 바다 등 큰물 같은 흑색이다. 따라서 갑진년(甲辰年)은 무성하게 솟아나는 나무(木)처럼 생명력을 지닌 푸른 용, '청룡(靑龍)의 해'다. 용띠 해는 청룡(靑龍), 적룡(赤龍), 황룡(黃龍), 백룡(白龍), 흑룡(黑龍) 등 오행에 따라 용의 색상이 달라진다. 그러니까 갑진년은 청룡의 해, 병진년(丙辰年)은 적룡의 해, 무진년(戊辰年)은 황룡의 해, 경진년(庚辰年)은 백룡의 해, 임진년은 흑룡의 해가 된다. 일각에서는 흑룡은 역사적 근거가 희박한 신조어로, 시류에 영합한 상술이므로 임진년 '흑룡의 해'는 일반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계묘년(癸卯年)은 '검은 토끼'의 해였다. 왜 검은 토끼라고 했을까? 계묘년의 '계(癸)'에 해당하는 색이 흑색(검은색)이고 '묘(卯)'가 토끼인 조합이기 때문이다. ▶동양 용은 입에 여의주, 서양 용은 입에서 뜨거운 불길 우리나라의 경우 그림으로 전하는 용의 대다수는 거의 갑진(甲辰)의 청룡이 차지한다. 최고의 벽화인 고구려 무용총의 고분 벽화와 평양 근교의 고분 벽화에는 청룡도가 전한다. 용은 선사시대부터 고대인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숭앙 되던 신화적 동물로 동방(東方·동쪽)을 상징한다. 포효하듯 크게 벌린 입에서는 붉은 기운이 강렬하게 뻗쳐 나와 진취적이며 활달한 고구려인의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열두 띠를 구성하는 동물 중 유일하게 현실에 없는 것이 바로 용(龍)이다. 동양은 용이고, 서양은 드래곤(dragon)이다. 용과 드래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날개다. 동양의 용은 날개 없이 긴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구부리면서 난다. 그러나 서양의 용은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다닌다. 동양 용 몸통에는 짧은 다리와 매서운 발톱이 붙어 있지만 서양 용은 길고 튼튼한 다리가 4개나 있어 날지 않을 땐 땅을 딛고 서 있다. 동양 용은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으나 서양 용은 입에서 뜨거운 불길을 내뿜는다. 비늘은 동양의 용에서만 볼 수 있다. 바로 용린(龍鱗)이다. 용린은 81개가 있는데, 이 가운데 용의 턱 아래에 거꾸로 붙어 있는 비늘이 '역린(逆鱗)'이다. 한비자(韓非子) '세난편(說難編)'에 따르면 용은 순한 동물로 길을 잘 들이면 사람이 탈 정도로 온순하나 역린을 건드리면 건드린 사람을 끝까지 쫓아가 죽인다는 '역린지화(逆鱗之禍)'라는 고사가 있다. 역린은 '임금의 노여움'이란 뜻도 있다. ▶동양의 용, 자비·길조 및 왕을 상징 용의 순우리말은 '미르'다. 비와 바람, 구름을 지배하는 물의 신(水神)으로 숭배되는 중요한 대상이다. 또한 동양에서 용은 신성한 영물로 자비와 길조의 상징이다. 제왕의 위력이나 지상의 수호신 역할을 담당해 오기도 했다. 덕분에 용은 왕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 임금이 정무를 볼 때 앉던 평상 '용상(龍床)', 임금이 입던 정복 '용포(龍袍)', 임금의 얼굴을 높여 이르는 '용안(龍顔)' 등에서 용은 바로 왕이다. 용이 나타난 설화를 바탕으로 생긴 지명은 용산(龍山), 용강(龍江), 용연(龍淵), 용담(龍潭), 구룡소(九龍沼), 구룡포(九龍浦), 용정(龍井), 용천(龍川), 용포(龍浦) 등이다. '용산(龍山)'과 '용' 자가 들어간 지명은 전국에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풍수지리적으로 지형이 용의 형상을 닮았다고 알려졌거나 왕이 행차했던 지역에 의례적으로 붙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은 지명의 유래가 최소 900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1102년(고려 숙종 7년) 풍수지리를 관장하던 관청인 서운관에서는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 일대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용산도 후보지 중 하나였다고 한다. 풍수학자들은 용산(龍山)의 지세가 용의 머리와 닮아 궁궐이 들어설 만하다고 주장했다고 전한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대통령청사를 이전한 것도 이러한 풍수지리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청룡의 해인 2024년은 4월 10일 제22대 국회
경상북도교육장학회(이사장 임종식)는 18일 본청 웅비관에서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경상북도회(회장 김성환), 경상북도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회장 이주희)와 장학금 기탁식을 했다. 임종식 이사장(경북교육감)과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경상북도회 김성환 회장, 경상북도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 이주희 회장 등이 참석한 이날 기탁식에는 지역사회 인재 발굴과 육성을 위해 장학금을 각 1,000만 원씩 전달했다.
가끔 우리는 최고의 협상 결과를 도출하는 <감동의 접근법>을 목격한다. 박목월 시인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나는 국내에서 있었던 최고의 <감동 접근법> 사례로 든다. 1952년 한국전쟁이 채 끝나지 않고 모두가 어려울 때 박목월 시인은 여대생 제자와 사랑에 빠져 가정을 버리고 제주도로 사랑의 도피를 한다. 명예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자리도 다 버리고 초여름 제주도로 도망갔는데, 10월경 박목월 시인의 아내가 두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을 수소문해 찾아온다. 보통의 경우 옳고 그름 접근법을 써 간통으로 고소하든지 여대생 머리채를 낚아채고 분풀이를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내는 생활비에 보태라며 돈 봉투를 주면서, 손수 만든 두 사람의 겨울 솜옷외투도 내미는 것이었다. 그리고 말없이 떠났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두 연인의 동거관계의 즉각적 종료였다. 두 사람은 슬피 헤어졌는데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박목월 시인은 그 후 평생 가정에 충실했다고 한다. 만약 본부인이 간통죄로 법적 조치를 취했었더라면 시원한 복수는 했을지 모르나, 결혼생활, 가정은 파탄 났을 것이다. 머리채 낚아채고 실컷 두들겼더라도 두 연인의 사랑과 동거는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부부는 법적절차를 밟아 갈라섰을 것이다. 상식을 초월한, 소위 일상적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용서, 관용, 배려, 이해에 바탕을 둔 감동의 접근법은 하버드 로스쿨, 비즈니스 스쿨에서 권하는 <원하는 것에 바탕을 둔 협상기법>의 기대치를 훨씬 넘어서는 최고의 접근법이다. <감동의 접근법>은 갈등분규의 진정한 해결·해소를 가져온다. 박목월 시인은 다시는 바람피우지 않았고, 여대생 연인은 다시는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비록 사랑의 기억은 강렬히 남아있었다 할지라도··· 2002년경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 칼럼에 실렸던 박목월 시인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나는 협상학 강의 도입부에서 갈등분규의 네 가지 접근법을 소개하는 바, 그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옳고 그름에 바탕을 둔 접근법 ②힘에 바탕을 둔 접근법 ③원하는 것에 바탕을 둔 접근법 ④감동에 바탕을 둔 접근법 우리 인간들 대다수(통계로 보면 70%)는 <옳고 그름에 바탕을 둔 접근법>을 택한다. 그러나 파이 나누기의 상충하는 세 가지 기준(기여한 만큼 가져가기, 평등하게 나눠 갖기, 필요한 만큼 가져가기)이 강력히 존재하기에 이 접근법은 많은 경우 협상 결렬로 이어지거나, 설사 합의에 도달한다 할지라도 갈등분규는 밑에 깔려 계속 존재하는 상황을 도출하여, 궁극적으로 갈등분규 해소에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옳고 그름에 바탕을 둔 접근법>이 갈등 당사자 간의 진정한 합의도출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때, 종종 <힘에 바탕을 둔 접근법>을 쓰게 되는데 그 결과는 거의 예외 없이 협상결렬은 물론이고 소위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되는 현상을 야기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미국에서 하버드 로스쿨의 로저 피셔 교수를 시작으로, 진정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협상 접근법> 연구가 출범하였고 지금 세계를 이끌고 있다. 김철호 전 카이스트 교수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재세이화(在世理化)는 '민족을 넘어 인류를, 국가를 넘어 세계'를 지향한다. 홍익인간과 재세이화는 고조선이 한반도 최초의 고대 국가인 만큼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홍익인간은 대한민국 교육법이 정한 교육의 기본 이념이기도 하다. 교육분야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 문화 등의 최고 이념이다. 흔히들 홍익인간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상고역사대학원 송부웅 학장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본래 뜻은 이게 아니고 '많은 인간을 더하라' 또는 '크게 인간을 도와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에서 홍(弘)자는 '넓을 홍(弘)'이 아니라 사전의 두번째 의미인 '클 홍(弘)', 즉 '크다, 크게 하다'로 풀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益)자의 첫번째 사전적 뜻도 <더할 익>이다. '더하다'는 원래 의미에서 '이롭다·유익(有益)하다'·돕다·많다·넉넉해지다 등이 파생된 것이다. 따라서 익(益)자의 부수적 의미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이롭다·유익(有益)하다>를 바탕으로 홍익인간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고 해석한 것은 단군 이래 최대의 오해(誤解)가 아닐까? 이렇게 홍익인간을 제대로 해석하면 재세이화와의 의미 연결도 자연스럽다. 재세이화(在世理化)는 '세상에 있으면서 다스림으로 교화를 이뤄낸다'로 이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송부웅 학장은 재세이화(在世理化)를 '세상의 이치로 조화롭게 하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이 두 명제에 대한 송 학장의 해석을 종합하면 "많은 사람을 더하여(인구를 늘린 후) 그들을 세상의 이치로 조화롭게 하라"는 테제(These)가 된다. 너무나 인간적인 건국이념이 아닐 수 없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성경 창세기 1장28절)"고 한 하나님의 지상명령과 첫 부분은 비슷하나 그다음은 확연히 다르다. 지금으로부터 약 4356년 전에 세워진 고조선은 당시 인구수가 곧 국력과 직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한 제일 과제는 인구 증가이고, 건국이념은 '크게(많이) 인간을 더하라'로 정하는 것은 당연하리라. 그런데 '많은 인간을 늘려라'는 건국이념으로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크게(弘) 인간을 도와라(益)'는 홍익인간의 두번째 뜻이 필요했고, 재세이화(在世理化)와 함께 건국이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재세이화(在世理化)에서 '재(在)'의 첫번째 뜻은 '있다'이고, 다음으로 '장소'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재(在)'는 공간적 인간존재 방식을 말한다. 재세이화(在世理化)에서 '인간 세(世)'의 다른 사전적 의미는 '세대', '시대', '시기' 등이다. 그러니까 '세(世)'는 시간적 인간존재 방식이다. 요컨대 재세이화(在世理化)는 재(在)와 세(世)를 다스려(理) 교화(敎化·가르치고 이끌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함)하는 것이다. 역사적 단군과 단군신화는 부인할 수 있다. 그러나 고조선과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과 재세이화를 무시하는 것은 이곳(在) 우리나라에서 현재(世) 살아가는 삶의 의미와 희망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리라.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
칠곡군은 지난 20일 칠곡국민체육센터에서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및 관계 공무원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자복지 촘촘, 미래준비 꼼꼼”이라는 슬로건으로 제24회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 및 어울림 한마당을 개최했다. 칠곡군사회복지협의회(회장 장재경) 주관으로 개최된 이번 행사에는 사회복지 일선에서 복지증진을 위해 헌신해온 유공자에 대한 표창과 어울림한마당 등을 통해 바쁜 일상속에 지친 사회복지종사자들의 정서를 치유하고 그간의 노고에 대해 격려했다.
'최후의 만찬'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년)의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나누는 장면을 담은 프레스코화다.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의 식당 벽에 그려져 있다. 이 수도원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 마치 '최후의 만찬'에 초대된 느낌이 들게 할 정도로 이 작품은 장소 선정까지 주도면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네스코는 1980년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과 함께 이 작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다빈치는 완벽한 ‘최후의 만찬’을 위해 10년간의 연구와 치밀한 준비를 거쳐 작업 시작 3년 만인 1498년 작품을 완성한다. 예수는 이 만찬장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쭙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고 했다. 그가 바로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은화 30냥에 예수를 팔아넘긴 가롯 유다이다. '최후의 만찬' 벽화를 보면 오른손으로 은화 30냥이 든 돈주머니를 움켜쥔 인물로 그 앞에 엎지른 소금통이 그려져 있다. 이 장면 하나만 보더라도 다빈치는 신약성경을 꿰뚫고 있으며, 붓터치 하나하나에 성경적 내용을 토대로 스토리텔링화했다. 다빈치는 등장인물들의 다양하고 독특하며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곳을 가리지 않고 다니며 수많은 스케치로 고심했다고 전한다.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의 얼굴은 12명의 제자 중 가장 어둡게 그려져 있다. 다빈치는 배반하는 유다의 사악한 모습을 찾기 위해 1년 넘게 밀라노 외곽의 빈민가를 찾았다고 한다.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10여 년간의 노력 끝에 탄생한 명작이 '최후의 만찬'이다. 다빈치는 왜 유다 앞에 엎지른 소금통을 그렸을까? 예수가 최후의 만찬장에서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하자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유다가 소금통을 엎지른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불길한 징조로 보인다. 이전에 예수는 산상수훈을 통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라고 가르친 바 있다. 예부터 소금(Salt)은 '밥값'으로 해석되기도 할 정도로 중요했다. '그는 밥값을 못한다'를 영어로 하면 ‘He is worth his salt'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예를 소금과 교환했다. 로마시대 군인들에게 매일 소금 한 줌씩을 배급해 주었다가 언제부터 소금을 살 수 있는 돈을 주었다. 여기서 월급을 의미하는 ‘샐러리(Salary)’라는 단어가 생겼다고 한다. 샐러드(Salad)의 ‘Sal-’도 Salt(소금)를 의미한다. 모두의 어원이 'Sal-'이다. 소금은 변하지 않는 성질 때문에 신뢰와 우정, 명예의 상징으로 사람과 동물의 생존에 꼭 필요한 물질이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섭취하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게 의학계 정설이다. 박정환 한양대학교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소금의 주성분은 염화나트륨(NaCl)이다. 나트륨은 혈관 속으로 수분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소금을 과잉 섭취하면 혈액 내의 나트륨 농도가 높아지면서 혈관 속으로 수분을 끌어들이게 되고, 이로 인해 혈압이 높아지게 된다"고 밝혔다. 소금을 과잉 섭취하면 고혈압과 뇌졸중, 만성 신부전의 발생 위험을 높이고 위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수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나트륨을 하루 2000mg(소금 5g, 티스푼으로 한 스푼) 이하로 섭취하고, 칼륨이 함유된 식품을 충분히 먹도록 권고하고 있다. 한때 세계 상위권이었던 우리나라 나트륨 섭취량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행한 '2022 식품의약품 통계연보'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하루 평균 나트륨 소비량은 2011년 4831mg으로 세계보건기구 권고량의 2.4배 수준이었지만, 2020년 기준 3220mg으로 30% 이상 감소해 미국 3346mg, 영국 3340mg 등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지원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많은 다수의 연구에서 명백하게 많은 나트륨(4.5~5g 이상)을 먹으면 심혈관 질환 사망과 총사망률이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너무 적은 양의 나트륨을 먹어도 사망률이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30년 넘게 소금을 연구해 온 조기성 전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 원장은 지난해 출판한 자신의 저서 『소금의 진실과 건강』에서 저염식 식생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제시했다. 저자는 "산업혁명 이후 개발·확산된 인공 순소금인 정제염이 문제”라며 “미네랄이 풍부한 천일염, 죽염 등 천연 소금은 과도하게 짜게 먹지 않는 한 혈압이 상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건강한 소금을 '몸이 원하는 대로' 섭취해 체내 혈액의 항상성인 소금기 0.9%, 약알칼리성인 pH 7.4를 유지하면 신장이나 혈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성 질병이나 저염식으로 인한 고질적인 질환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환 교수는 "염분이 결핍되면 단기적으로 소화액의 분비가 잘되지 않아 식욕이 떨어지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전신 무력, 권태, 불안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땀을 다량으로 흘려 몸의 염분이 소실될 경우 적절한 염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현기증, 의식혼탁 등 육체적 혹은 정신적 기능 상실이 일어날 수 있다. 극단적인 저염식이나 무염식은 빈혈, 어지러움, 두통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부족한 짠맛을 단맛에서 찾는 경향이 생겨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소금의 주성분인 나트륨은 우리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다. 우리의 건강한 삶을 위해 평소 적정량의 소금을 섭취하는 식생활 습관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WHO의 하루 나트륨 권장량(2000mg)은 비빔·짜장라면 등을 한꺼번에 2개 먹으면 기준치를 넘게되는 만큼 지키기가 힘들다. 한국소비자원이 소비가 높은 비빔·짜장·볶음 라면 15개 제품을 시험·평가한 결과 평균 나트륨 함량이 1227mg으로 2개를 먹으면 하루 권장기준치(2000mg)를 훌쩍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한국인은 하루 나트륨 권장량을 훨씬 초과하고 있다. 젓갈이나 장아찌처럼 소금에 절인 음식을 절제하고 라면이나 우동은 면 위주로 먹고 국물은 남기는 게 좋다. 짭짤한 맛이 나지 않아도 나트륨이 다량으로 들어 있는 음식을 식별해 내야 할 것이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나트륨 폭탄' 순위를 미국 건강 정보 매체 ‘에브리데이헬스(Everyday Health)’가 정리했다. ▶야채주스=명칭에서 풍기는 느낌은 건강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의외로 나트륨이 많이 들었다. 예를 들어 일부 토마토 주스는 330g짜리 한 캔당 나트륨을 무려 900mg 함유하고 있다. 야채주스는 되도록 직접 짜서 마실 것. 마트에서 구입해 먹는다면 용기에 표시된 영양 정보를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핫케이크=소금빵은 이름 그대로 반죽에 버터와 소금을 넣어 만드는 빵. 소금빵 하나에는 대략 나트륨 400mg이 들어 있다. 설탕이 문제일 것 같은 핫케이크의 나트륨 함유량도 그에 못지않다. 시중에 유통되는 핫케이크 가루 100g에는 400mg에서 많게는 700mg의 나트륨이 들어 있다. ▶참치 통조림=해산물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심장을 튼튼하게 지키는 데 기여한다. 하지만 조개류나 갑각류, 그리고 캔에 들거나 냉동한 제품을 먹을 때는 나트륨 함량에 신경을 써야 한다. 예를 들어 참치 캔(내용물 200g 안팎) 하나엔 나트륨이 800mg이 들어있다. 얼린 새우 85g에는 나트륨 400mg이 들어 있다. ▶파스타 소스=토마토를 갈아 넣은 파스타 소스 한 컵에는 나트륨이 무려 1000mg 들어 있다. 미트 소스는 더하다. 소시지나 미트볼도 추가로 나트륨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스타를 만들 때는 귀찮더라도 시중에 판매되는 소스 대신 직접 만든 소스를 사용할 것. 잘 익은 토마토에 마늘과 바질을 곁들이면 된다. 취향에 따라서는 올리브 오일만 가지고도 맛있는 파스타를 완성할 수 있다. ▶치즈=유제품은 칼슘과 비타민 D의 보고. 그러나 숙성시키지 않은 코티지치즈나 가공한 치즈엔 소금이 많이 들어갈 수 있다. 자연 치즈를 원료로 다른 식품이나 첨가물을 더해 만든 가공 치즈, 즉 슬라이스 치즈, 큐브 치즈, 크림치즈 등도 나트륨 함량이 높다. 혈압에 신경을 쓴다면 나트륨이 30g당 85mg 정도인 생 모차렐라 치즈나 장당 40mg 이하인 스위스 치즈 등 저염 제품이 좋다.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터가 된 한반도에 일본인 70명이 들어왔다. 이들은 미군과 동행하면서 실탄을 지급받아 직접 북한군 및 중국군과 교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후 미군 당국은 오히려 일본인 요원들을 엄중히 심문했으며, 이들의 존재 및 활동을 극비에 부치는 등 사실을 은폐했다. 그 과정에서 1033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일급비밀 문서가 작성되었는데, 기밀에서 해제된 후 일본계 호주인 교수가 최근에 그 존재를 파악했다. 해당 교수와 접촉한 NHK 보도국의 후지와라 가즈키(藤原和樹)는 이 문서를 바탕으로 생존한 일본인 요원 또는 유가족들을 취재했다. 그에 따라 70명의 일본인들은 누구였고, 어떻게 한반도로 들어왔으며, 무슨 임무를 맡았는지, 또한 전투원으로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심문까지 받고 수십 년간 실상마저 감춰진 이유가 비로소 밝혀지게 된다. ▶한·일 관계의 가장 불편하고도 복잡한 역사 일본인들이 한국전쟁에서 미군을 도와 직접 전투에 나섰다는 사실은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태평양전쟁으로 패망한 일본인들에게 한국전쟁은 ‘조선 특수(朝鮮特需)’라 불리는 전후 부흥 서사의 시작이자 일부였다. 그들은 경제 부흥으로 번영과 안정을 누리는 가운데, 전쟁을 일으키거나 개입하지 않겠다는 ‘평화헌법’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자국 출신 요원의 한국전쟁 참가는 불편한 사실이다. 이는 일본이 ‘평화헌법’ 체제의 이면에서 이미 전쟁에 직접적으로 관여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광복 이후 오늘날까지도 일제 강점기의 개인적, 집단적 기억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의 기억은 국군과 유엔군의 분전에 주목하는 견해, 아니면 동족 상잔에 주목하는 견해로 양분되어 있다. 이와 같은 여건에서 일본인 요원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렵다. 그것이 한국전쟁을 둘러싼 주요 논쟁으로부터 동떨어져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인들은 그저 한국전쟁을 이용하기만 했을 뿐이어야 하며, ‘희생’되기까지 했다는 것은 한국전쟁의 ‘숭고하거나’ 혹은 ‘가슴 아픈’ 서사를 ‘더럽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한국전쟁의 지상전에 참가했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들 일본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정립하기도, 그에 따른 평가를 내리기도 곤란하지만, 그것이 바로 한·일 관계의 복잡함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우리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 일본인들의 한국전쟁 참가는 전후 일본 정부가 미군의 점령 상태에 놓인 가운데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그와 같은 구조는 이제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서 재현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한반도 위기에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이 인도·태평양에서의 미국 패권 동요에 대응하는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 미군 기지가 위치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및 타이완 해협 위기의 심화 속에서 군사적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과연 한국은 미국의 전쟁 수행에 협력하게 될 것이며, 그때 시민들 개개인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때 한국은 자신들이 참전하게 될지도 모르는 전쟁에서 각국 정부 및 시민들 개개인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인가. 한국전쟁 시기 미국과 일본의 관계, 그 사이에 운명을 내던졌던 일본인들의 삶은 어쩌면 우리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 서평 박용준 번역자
무궁화가 대한민국 나라꽃(국화·國花)으로 적합하지 못해 한반도 전역에 고루 피는 진달래 등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제기돼 입법화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효백 경희대학교 법무대학원 교수는 최근 출판한 『일본 무궁화 가라 한국 진달래 오라』에서 "무궁화는 일본 신의 꽃이다. 무궁화는 꽃나무로 위장한 일본의 전범기다. 일본인은 일장기와 욱일기를 흔드는 대신 무궁화를 심고 가꾸고 노래하고 받들고 사랑하며 항상 심신에 새기며 한편으로 타국으로 은밀한 확산을 꿈꾼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진달래는 우리 역사의 정사나 야사에서 자주 출현하고 우리 정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진달래 화전, 진달래 술 두견주, 진달래를 읊은 수많은 문학 작품 등이 있어 무궁화를 대체할 새 나라꽃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강조한다. 무궁화가 국화로 적합하지 못하다는 의견은 구한말에도 있었다. 나라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던 그 당시에도 황성신문은 무궁화는 국화로서 마땅치 않으니 복숭아꽃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민재 식물학자는 조선일보(1956년 2월 8일자)에서 무궁화는 국화로서 적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궁화가 국화로 지정된 일도 없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일이 없는 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박완주 국회의원은 2020년 6월 무궁화를 공식 국화로 지정하는 법률안을 제출한 바 있다. 제정안은 매년 8월 8일을 무궁화의 날로 정하고, 국화 또는 국화문양을 물품 등에 활용할 때 훼손하거나 혐오감을 주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박 의원은 "태극기는 대한민국국기법에 의해 제작·게양·관리 사항이 규정돼 있다"며 "나라꽃인 무궁화에 대한 법적 근거는 없어 근거를 마련해 국민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35조 등에 따르면 산림청장은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있는 무궁화를 체계적으로 보급·관리하기 위해 무궁화 진흥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해야 하며, 무궁화 보급·관리에 관한 기본 목표 및 추진 방향, 보급 및 관리 현황, 품종에 관한 연구와 개발은 물론 관련 상품과 콘텐츠를 개발해 국민이 무궁화에 대한 사랑 의식을 갖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국민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국화, 무궁화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무궁화는 세계에서 유례가 드물게 국민이 정한 나라꽃이다. 17세기를 전후해 여러 나라에서 나라꽃이 정해졌는데 영국의 장미, 프랑스의 백합, 독일의 수레국화처럼 왕실이나 귀족이 정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무궁화는 끊임없는 외침에도 나라를 지킨 호국의 상징으로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민족의 표상으로 내세웠고, 이런 연유로 박해받은 세계 유일의 꽃이다. 무궁화는 개량종 등 종류에 따라 빠르면 6월 24일부터 10월 중순까지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무궁화 한 송이가 피고 지는 시간은 24시간(하루)이다. 새벽에 꽃이 피고 오후가 되면 오므라들기 시작해 해가 지면 꽃도 진다. 무궁화는 이렇게 매일 20∼30송이씩, 약 100일간 2000∼3000송이 새로운 꽃을 피운다고 한다. 무궁화(無窮花)는 끝이 없고 다함이 없는 '무궁무진(無窮無盡)의 꽃'이다. 날마다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며칠이 지나면 먼저 핀 꽃은 떨어지고 새로운 꽃이 그 뒤를 이어 피어난다. 이처럼 꽃과 꽃이 끝없이 이어 피는 꽃이란 뜻에서 '무궁(無窮)화'다. 피고 지고를 계속하는 영원성을 담은 '꽃중의 꽃' 무궁화를 '호국의고장', '호국평화의도시' 칠곡군 등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칠곡군은 6·25전쟁 때 우리나라와 자유-평화를 지킨 상징물인 낙동강 '호국의다리' 인근의 무궁화 나무를 마구 베어낸 '역사적인 죄'를 지었다. 지난 2000년 6월 제1회 낙동강세계평화제전이 열리기 전 행사장 환경정리를 한다고 무궁화를 비롯한 나무 수그루를 베어내 당시 "무고한 나무를 제거하는 것이 평화제전인가"하는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주민들은 "낙동강 제방에서 산책을 할 때면 호국의 다리 바로 옆에 피어있는 무궁화를 바라보면서 호국의 의미를 되새겼는데 지금은 이곳에서 무궁화를 볼 수 없어 안타깝다"고 밝힌 바 있다. 호국평화의 의미를 담는 대한민국 대표 '호국평화 무궁화축제'가 낙동강세계평화축전과 함께 열리는 날을 기다려 본다. 무궁화가 피기 시작하는 시기가 6·25전쟁이 일어난 6월 25일과 비슷하고, 하루하루 꽃이 계속 피고 지며 생명을 이어가는 무궁화를 보면 치열했던 낙동강·다부동전투에서 산화(散花)한 호국영령이 떠오른다. 칠곡군이 매년 개최하는 낙동강세계평화문화대축전 기간 동안 삶과 죽음이 함께 흐른 낙동강 전선을 따라 무궁화가 피고 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
겹벚꽃은 일반 벚꽃이 모두 지면 짙은 분홍 빛깔로 화려하게 만개한다. 그래서 '벚꽃 엔딩' 주인공이라 불리운다. 겹벚꽃은 첫 벚꽃이 땅에 떨어질 때쯤 피기 시작해 4월말 만개해 5월초까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상기온으로 20일 정도 일찍 만개한다. 겹벚꽃의 꽃말은 '단아함', '정숙'이다. 일반 벚꽃의 꽃말은 '아름다운 영혼(정신)', '정신적 사랑', '삶의 아름다움', '절세미인', '삶의 덧없음과 아름다움', '순결', '뛰어난 아름다움', '정신미', '교양', '부', '번영' 등이다. 벚꽃의 꽃말이 이렇게 많은 것은 그만큼 벚꽃에 대한 느낌과 시적인 정서가 풍부하기 때문이 아닐까? 피는 모습처럼 지는 순간도 눈길이 쏠린다. 얇은 꽃잎이 하나하나 흩날리듯 눈처럼 떨어져 꽃이 마치 꽃비가 내리는 것 같다. 언제 활짝 피었나 싶다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만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진다. 이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순간은 짧은 만큼 잊히지 않는 법이다. 어차피 지고 마는 꽃의 덧없음을 가장 빨리 보여 주면서 꽃과 인생의 허무함을 앞서 망각하라는 것일까? 확 피었다가 확 지는 벚꽃에서 탄생한 '순간의 미학(美學)'은 일본의 '하이쿠'(17자로 된 일본 특유의 단시), 죽어야 할 순간에 망설임 없이 할복하는 '사무라이', 벚꽃 같은 죽음이 전쟁에 이용된 '가미가제' 자살 특공대 등으로 이어졌다. 벚꽃의 꽃말 중 '절세미인'이 있다. 벚꽃처럼 희디흰 피부를 지닌 미인의 아름다운 순간은 짧게 만개하는 벚꽃에 비유될 수 있겠다. 지극히 아름다운 것은 벚꽃처럼 순간으로 머물까? 괴테의 파우스트는 "멈추어라, 이 순간이여! 너는 너무 아름답구나"라고 외쳤다. 가인박명(佳人薄命), 즉 미인박명(美人薄命·미인은 불행한 일이 따르기 쉽고 요절하기 쉽다)이라 했다. 이는 중국 북송의 시인 소식(蘇軾)의 시 '박명가인시(薄命佳人詩)'에서 유래했다. "예부터 미인의 운수 순탄치 않다더니, 문 닫고 봄날 가자 버들꽃 떨어지네(自古佳人多命薄 閉門春盡楊花落)."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 ‘죽마고우도 말 한마디에 갈라진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말이 씨 된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 된다.' 말과 관련된 속담이다. 태초에 신(神)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기 때문일까.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예부터 어른들은 분별없이 아무렇게 말을 하면 '말이 씨 된다'라며 주의를 주셨다. 함부로 말하다가 이 주의를 받으면 무서워 하던 말을 중단하곤 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누구든지 심은 대로 거두리라. 말이 씨가 되면 말한 대로 이뤄질 것이다. 말이 씨앗과 같다면 한번 뱉어 놓은 말도 땅에 떨어진 한 알의 씨앗처럼 싹트고 성장해 잎이 달리고 꽃이 핀다는 것이다. 희망하는 것을 계속 상상하고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으로 주문(呪文)을 계속 외우면 힘이 솟아나고 언젠가 그대로 이뤄질 때가 있다. 말이 씨가 되는 순간이다. 주문(呪文)은 말의 씨앗을 자신의 마음과 신념 속에 심는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굿판에서 무당의 주문은 그냥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의 씨앗을 촘촘하게 꼭꼭 심는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가 매일 새벽에 정화수(井華水)를 떠 놓고 가족의 평안은 물론 자식이 잘 되기를 비는 기도만큼 순수한 진언(眞言)이 있을까.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언어는 참되고 긍정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부모의 칭찬과 격려 한마디가 자식에게 희망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은연중에 심어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우들과 스마트폰 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학생들은 흉기보다 무서운 폭력적인 언어와 나쁜 말의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정모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하면서 언어폭력의 심각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흔히들 언어폭력이 물리적 폭력보다 심각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언어폭력은 모든 폭력의 시작인만큼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고 비속어나 폭력적인 언어를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할 권리는 있지만, 동시에 욕설과 폭력적인 말을 듣지 않을 권리도 있다. 표현의 자유가 상대의 인격과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분이 나쁠 때 나쁜 언어나 비속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 청소년들은 비속어를 암묵적 합의라는 미명 아래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문제는 비속어와 욕설이나 언어폭력을 계속 하다 보면 습관처럼 굳어져 나중에 고치려고 해도 잘 고쳐지지 않은 데 있다. 청소년 스스로 언어문화개선 홈페이지를 통해 언어 습관에 대한 자기 진단을 수시로 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부모의 언어습관이 그대로 자녀에게 반영되는 만큼 어른들부터 고운 말과 품격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모든 폭력의 시작인 언어폭력을 미리 막아 밝고 명랑한 사회를 조성해 나가기 위해서는 바른말 고운 말 사용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존댓말 사용 권장으로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대수 부모들은 자녀의 존대어 사용을 원하고 있으나 요즘 자녀가 부모에게 높임말을 사용하지 않는 세태 때문인지 경어 사용을 포기한 것 같다. 아무리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 하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낮춤말을 하면서부터 부모를 동등한 관계에서 마구 대하게 되고, 결국 반인륜적 사회로 흘러가기 쉽다. 내가 존중 받기 위해서는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이는 '꼰대 마인드'와는 다르다. 존댓말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존댓말은 수직 관계에서 사용하는 권위적인 어법이 아니라 상대방을 높임으로써 나 스스로를 높이는 경어(敬語)다. 부모와 교사는 자녀와 학생에게만 존댓말 사용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부모와 교사가 먼저 경어 사용을 실천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듯이 존중을 중시하는 사람이 자신과 타인을 존중할 수 있다. 부모와 교사의 입장에서 수직적 상하관계에서 아이를 꾸짖기보다는 존중하는 말투로 타이르면 아이는 인격체로서 어른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는 느낌으로 어른들을 존경할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자신의 어록 『다산어록청상』에 "지위가 높은 사람의 말 한마디는 아랫사람의 인생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좋은 말도 가려서 하고 충고도 살펴서 하라.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박힐 수 있으니 사려 깊지 못한 말과 행동은 원망을 사고 재앙을 부른다"고 강조했다. 반드시 필요한 말만 할 때 말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다. 말은 사람의 인품을 닮는 그릇, 즉 인격이기 때문이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박힌다면 차라리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좋다. '가만히 있으면 2등은 한다.' 품격 있는 지성인은 자신이 말할 때와 어떤 말을 해야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할 줄 안다.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다.’ 그러나 서양의 이 격언대로 처음부터 계속 침묵하라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어야 그에 맞는 말을 할 수 있기에 우선 상대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聖(성인성·耳+口+王)은 耳(귀이)와 口(입구)를 잘 다스리는 王(왕)이라는 뜻을 지닌 한자다. 이 글자에서 귀(耳)가 입(口) 앞에 위치한 것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번뜩이는 지혜가 경이롭다. 시대를 초월해 있는 聖人(성인)은 오늘날 소통의 시대에도 부합한다. '경청(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다.'
8·15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광복' '해방' '독립'을 애매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을 1945년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8월 15일 같은 날에 맞추다보니 8·15는 독립기념일, 광복절, 건국절 등으로 복잡하게 됐다. 8·15를 '광복절'로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1949년이다. 1949년 10월 1일 제정해 ‘광복절 8월 15일’이라고 명기한 법률 제53호 ‘국경일에 관한 법률’ 2조에 근거로 하고 있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헌법기념일을 제헌절로, 독립기념일을 광복절로 각각 수정했다. 문제는 본회의에서 의원들은 해방이냐 광복이냐의 의미에 충실하기보다는 일(日), 절(節)과 같은 어미와 자구에 집착했다. 그 결과 3·1절, 개천절과 같이 ‘절’자를 넣어 통일시키면서 제헌절과 광복절이라는 간결한 명칭에 손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모두 3음 끝에 '절'자를 넣어 통일시킨 것이다. '광복절'이란 명칭의 법률적 명문화는 결과적으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어 다행이다. ‘빛 광’과 ‘회복할 복’을 쓰는 광복절(光復節)에서 光復은 ‘빛의 회복’이라는 뜻이다. 본래의 제 빛을 찾는 것이다. 이는 잃었던 나의 주권(자주성)과 국권을 동시에 회복하는 것으로 '독립'과 '자유'의 의미를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일각에서는 광복절이 '해방절'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해방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광복이란 단어가 타당하다. 해방(解放)의 사전적 의미는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함'이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에서 벗어난 역사적 사건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해방'을 확대 해석하고,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좌파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데 문제가 있다. '해방'은 누군가(주어)가 누구를(목적어) 억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일본과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이나 연합국이 일본의 지배와 억압에 있던 우리나라를 해방시켜 주었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링컨 대통령이 노예를 해방시켜 주었다"라고 사용하지 "노예를 광복시켜 주었다"라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해방이라고 하면 우리의 독립은 일본을 이긴 승전에 대한 연합국의 선물이나 부산물로 치부되기 쉬울 것이다. 더구나 일제로부터 자주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 투사들의 노력은 허사가 되고, 연합국이 부각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김구 선생의 임시정부도 의미를 잃게 된다. 그러나 북한은 8·15를 '조국해방기념일'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종북 주사파를 비롯해 일부 좌파의 '노동해방' '인민해방' '조국해방' 등에서 보듯이 이들은 광복이란 말 대신 해방이란 용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즐겨 사용한다. 우리나라 법률에 명시된 공식 명칭인 '광복절'은 영문으로 정확히 'Restoration Day'(주권을 회복한 날)이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 영문판 공식홈페이지 뉴스란에는 광복절이 'Restoration Day'로 돼 있지 않고 'Liberation Day'(해방일)로 나와 있다. 지난 8월 15일자 'President Yoon, first lady cheer on Nat'l Liberation Day'(윤대통령·김여사 해방절 격려) 기사제목과 기사내용에 'National Liberation Day'(해방절)라는 표현을 볼 수 있다. 진보·좌파는 주로 '해방'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주권과 국권 상실로부터의 회복을 의미하는 광복은 보수적이고 복고풍으로 보여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빼앗긴 것을 되찾는다는 의미에서 광복이 호소력이 있었지만 좀 복고적인 냄새가 난다는 의미에서 진보적인 사람들은 해방을 선호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1945년 8·15를 ‘부분의 광복절’ 혹은 ‘1기 광복절’로, 미군정의 지배로부터 독립된 1948년 8·15(대한민국 정부수립)를 ‘2기 광복절’, ‘미완의 광복절’로, 장차 도래할 통일의 날을 ‘완성된 광복절,’ ‘진정한 광복절’로 각각 부르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교수의 '1기~2기~미래 광복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 처해 있던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자. 1945년 8월 15일 정오 일본의 라디오를 통해 히로히토 일왕의 육성이 흘러나왔다. 안타깝게도 이날 일왕의 태평양전쟁 종전 선언을 대다수 조선인들이 몰랐다. 당시 조선에는 라디오가 있었지만 보급률이 낮았기 때문이다. 당일 거리는 조용했고, 다음날 16일이 돼서야 전국적으로 광복의 만세 함성을 들을 수 있었다. 온 민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감격적인 장면은 8월 15일이 아니라 16일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치안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9월 9일까지 일장기를 걸었고, 이날부터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까지는 미군정 하에 성조기가 걸려 있었다. 따라서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우리나라는 앞에서 이완범 교수가 지적했듯이 '미완의 광복절'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히로히토 일왕이 1945년 8월 15일 발표한 ‘대동아전쟁종결조서'를 봐도 조선의 완전한 독립이나 광복이 아니었다. "짐(일왕)은 세계 정세와 제국(일본)의 현재 상황을 깊이 감안해 비상조치로 시국을 수습하고자 여기 충실한 그대들 신민에게 고하노라. 짐은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영·소·중 4국에 대해 그 공동선언(포츠담선언)을 수락할 뜻을 통고케 하였다.(중략) 적(敵)은 새롭게 잔학한 폭탄(원자폭탄)으로 무고한 백성을 살상함으로써 그 참혹한 피해는 헤아릴 수 없다. 전쟁을 계속하게 되면 우리 일본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 뿐 아니라 나아가 인류의 문명까지도 파괴될 것이다.(하략) 흔히들 이 내용을 히로히토 일왕의 무조건적인 항복선언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히로히토 일왕은 1945년 8월 14일자로 작성된 ‘대동아전쟁종결조서(大東亞戰爭終結詔書)’를 다음날 발표했다. 조서(詔書)는 임금의 명령을 일반인에게 알릴 목적으로 적은 문서를 말한다. 항복문서나 항복선언서가 아니라 제목에서 보듯이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을 종결하는 내용을 알리는 담화문이고, 일왕이 자국의 신민(臣民)에게 내리는 명령이다. 조서 전체 내용 어디에도 '항복한다'거나 '패전했다'든지 전범 국가로서 잘못했다는 등 일본에게 불리한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도리어 일본은 잘못한 것이 전혀 없고, 연합군이 더욱 잔혹했으며, 자국민의 더 많은 희생을 막는 등 세계평화를 위해 종전을 받아들였으나 다시금 총력으로 국가의 재생과 번영을 위해 일치단결해 진가를 발휘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과 같은 전범국가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피해를 입은 국가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사과를 해왔다. 반면 일본 아베 전 총리는 "침략은 정의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라며 침략을 부인했고, 위안부는 자발적인 집단이라는 등 망언을 스스럼 없이 내뱉었다. 독일은 또한 전범을 철저히 처벌하고 피해자에게 배상을 해주었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이후에도 나치 전범을 계속 추적해 9만명을 기소했고 그중 6000명을 유죄로 판결해 처벌했다. 그러나 극동국제군사재판소는 일본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A급 전범 28명을 기소해 1948년 7명이 사형 선고를 받는 것에 그쳤다. 도조 히데키는 이 재판에서 “천황 허락 없이는 전쟁을 시작할 수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그러나 종전 후 맥아더 사령관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은 천황체제가 무너질 경우 일본 국내가 혼란에 빠지면서 공산주의 세력이 급속히 확산될까 두려워 아예 히로히토 일왕(천황)에 대해 불기소 방침을 내렸다. 당시 소련은 이미 만주와 북한을 점령한 상황이었다. 맥아더는 일본 군국주의의 2차세계대전 전범들을 축출한 반면 조선에서는 친일분자들을 대거 요직에 등용함으로써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하는 역사적 비극을 초래했다. 1945년 9월 14일 미군정장관 아놀드 소장은 기존 일제의 경찰기구를 행정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군은 당시 조선을 강압통치하기 위해 이를 받아들여 조선총독부의 일본인 관리들을 해임하고도 행정고문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남겨두고, 일제 통치기구를 이용했다. 반면에 임시정부와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인민위원회 등 민족자주 세력은 억누르거나 해체시켰다. 그러는 사이 미국과 가까운 이승만은 순조롭게 1948년 7월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미국의 일제에 대한 면죄부와 조선의 통치기구 승계로 일본은 조선 합병·강제동원(1910~1945년)은 물론 ▶중일전쟁(1937~1945) ▶731부대의 생체실험 ▶위안부 강제동원 ▶태평양전쟁(1941~1945년) 등에 대한 반성과 사죄는커녕 오히려 정당화하고 있다. 제77주년 광복절인 지난 15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비롯해 주요 각료와 정치인들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하거나 참배해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을 샀다. 이는 히로히토 일왕이 1945년 8월 15일 발표한 ‘대동아전쟁종결조서'의 역사적 연장선상에서 예견된 일이다. 당시 일왕이 조서 발표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로서 반성의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았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세계평화 선언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앞으로 힘을 키워 또다시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일왕의 숨겨진 야망은 일본에서 최장기간 총리를 지낸 아베 등 극우 정치인들로 이어져 내려온다. 지난 7월 8일 자국민에게 저격된 아베는 자위대에 불리한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생전에 군국주의 망령을 되살리려 했다. 개정의 핵심은 일본 헌법 9조다.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헌법 9조에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재무장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전쟁·무력행사의 영구적 포기, 전력(戰力) 불보유'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일본이 실질적 군대인 자위대를 보유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주장이 계속 나왔기 때문에 아베는 이를 종식시키기 위해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기하겠다며 개헌을 적극 추진해 왔다. 무엇보다 우리는 평화헌법 개정을 빌미로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일어서려는 현재 일본의 야욕을 직시하고, 역사적으로 응당한 대처를 현명하게 해나가야 '8·15 광복'을 완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
칠곡소방서(서장 이진우) 소방행정자문단(단장 김웅정)은 대규모 산불로 피해를 입고 있는 울진군의 현장 복구와 피해 주민의 지원을 위해 성금 300만 원을 기탁했다. 소방행정자문단은 평소 소방행정정책에 대한 자문과 지역 발전을 위해 화재취약계층에 주택용 소방시설을 기증하는 등 사회 공헌 활동을 추진하는 단체이다. 김웅정 소방행정자문단장은 “갑작스러운 산불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실질적으로라도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라며 “피해 주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기원한다.”라고 전했다.
칠곡노인복지센터(센터장 홍화정)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지난 23일, 24일 양일간 지역사회 내 재가노인지원서비스 이용어르신께 산타꾸러미를 지원했다.
흔히들 타인과 약속을 하거나 지나가는 인사로 "언제 차 한 잔 하자"고 해 놓고 막상 만난 자리에서는 커피나 술을 마시는 경우가 다반사다. 서양에선 차와 커피를 확실히 구분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과거 즐비했던 다방(茶房)은 거의 다 사라지고 커피전문점으로 간판이 바뀌었다. 차(茶)나 음료 등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하는 공간인 '다방(茶房)'을 순수 우리말로 하면 '차방', '찻집'이다. 그만큼 커피에 밀려난 국내 차(茶)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우리가 다반사로 사용하는 '다반사'라는 용어도 문제가 있다. 다반사(茶飯事)에서 다는 차 다(茶)자이고 반은 밥 반(飯)자이다. 사전적 의미는 "차(茶)를 마시고 밥(飯)을 먹는 일이라는 뜻으로, 보통 있는 예사로운 일(事)을 이르는 말"이다. 항다반사(恒茶飯事)의 준말이다. 우리 민족이 얼마나 차를 마셨기에 이 말이 생겨났을까. 다반사란 말은 중국에서 적용되는 말이다. 중국 속담에 '아침에 차 한 잔은 하루를 활기차게 하고, 정오에 차 한 잔은 일을 즐겁게 하고, 저녁에 차 한 잔은 정신을 맑게 해주고 피로를 풀어 준다'라는 말이 있다. 중국인의 차 사랑은 맑지 않은 물을 정화해 마시는 데서 시작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의 효능과 차 문화가 이들의 생활 속 깊이 자리잡으면서 중국이 '차의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러나 새천년(2000년)과 함께 커피 소비가 급증하면서 중국은 커피 대국으로 부상했다. 차 생산지에서 커피생산지로 변모하고 있으며, 중국인들의 커피 소비도 급증하고 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서구 문화가 유입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스타벅스 같은 국제적 커피기업들은 원재료 조달을 위해 중국 차의 고향으로 알려진 윈난성(雲南省)에 법인을 세워 커피의 주요 생산지가 됐다. 우러나오는 맛과 향을 지닌 차가 기호품이었던 중국인 특유의 '만만디(천천히)'가 젊은층을 중심으로 ‘빨리빨리’ 문화에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한국 국민의 1인당 연간 차 소비량은 50g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차보다 술을 훨씬 많이 마신다. 이같은 음주문화로 생겨는 말이 ‘음주망국(飮酒亡國) 음다흥국(飮茶興國)’이다. 술을 마시면 나라가 망하고, 차를 마시면 나라가 흥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차 단체 대표나 원로 중에서 차가 술보다 좋다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술을 비하한 이 말을 자주 인용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말을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이 했다고 하나 다산이 이 말을 했다는 기록이나 저서는 없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호에서 보듯이 차를 누구보다 좋아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술독에 빠졌으나 차를 마시면서부터 정신을 차렸고, 위대한 저술을 대거 남기게 됐다. 그의 호는 지명에서 온 차나무가 많은 산 '다산(茶山)'이지만 이를 거꾸로 하면 '산다'가 된다. 다산은 술에 찌든 몽롱한 삶에서 맑고 깨끗한 차의 삶으로 바꾸면서 다시 살아났다. 한국 최고의 지성이자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교수의 차와 술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자. 차(茶)는 깨어 있는 물이고, 술은 잠들어 있는 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차(茶)의 나무는 달마의 눈꺼풀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잠자지 않고 수도를 하던 달마가 어느 날 너무 졸음이 와서 자신도 모르게 깜박 졸았다고 한다. 그는 그것을 크게 뉘우치고는 다시는 수면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눈꺼풀을 도려내 뜰로 내던져 버린다. 거기서 싹이 나 나무 한 그루가 자라니 그것이 곧 차(茶)의 나무라는 것이다. 차는 잠을 몰아내는 각성의 물이다. 달마의 눈처럼 늘 깨어 있는 물, 사람들은 거기에서 수면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칠곡차문화회 배외자 회장은 "다기(茶器) 등을 갖춰 차를 즐기려면 커피에 비해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선입견 때문에 차를 멀리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며 "차는 사치와 허영이 아니라 차를 우려내는 과정에서 기다리는 여유를 가지고 상대와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소통의 매개체"라고 말했다. 배 회장은 "초스피드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조급한 습성에 따른 병폐는 물론 소통 부재에 따른 오해와 충돌은 차 마시는 문화가 해결해 줄 것"이라며 코로나19로 힘들게 '집콕'하는 사람들에게 차 한 잔을 권했다.
칠곡군 왜관읍 석전2리 주민들과 미군들이 함께한 '한미친선 김치담그기'가 지난 9일 SBS 특별기획 '백두대간 인문캠프'에 맞춰 석전2리 '어울마당'에서 열려 눈길을 끌었다. 경북도가 마련한 ‘2021 백두대간 인문캠프'는 책이 아닌 여행길에서 배우는 인문학 교실로, 명사와 함께 지역 관광지의 숨은 가치와 여행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경북 인문기행 프로그램이다. 왜관 미군부대 캠프케롤 인근 석전2리 주민들은 60여년의 주한미군 역사와 함께 미군 및 가족의 이웃으로서 미군들과 함께 준비한 재료로 김치를 담궜다. 최근 국내 젊은 미식가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캠프캐롤 후문 한미식당 멕시칸 타코 음식을 소개하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