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장서 회당본을 집필한 칠곡 출신 회당 장석영(晦堂 張錫英) 선생은 1919년 꼿꼿한 붓 하나로 세계를 향해 조선의 해방을 고한 독립유공자로,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일제는 당시 조선의 독립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독립불원서(獨立不願書)`에 일부 유림 명의를 조작해 넣었다. 독립불원서는 일본이 국제평화회의에 한국의 독립 문제가 상정되지 않도록 하려고 이완용을 시켜서 작성한 문서다. 이에 장석영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 초안을 작성하면서 유림은 물론 조선 백성이 독립을 간절히 원하는 내용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섰다. 파리강화회의에 우리나라의 독립을 지지해 달라는 긴 서한(장서·長書)을 보내는 파리장서운동에 불을 붙인 것이다. 장석영 선생 서거 100주년(2026년 7월)을 앞두고 선생의 이러한 뜻을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회(회장 장병홍·이윤갑)가 지난 6월 10일 칠곡군민회관 3층 대강당에서 공식 출범했다. 이날 창립 행사에는 지역 유림, 학자, 후손, 주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해 선생의 삶과 정신을 되새겼다.장석영 선생은 1851년 경상도 인동도호부 기산면 내각리(현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 내각마을)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제에게 넘어가자 장석영은 유생 300여 명과 `청참5적소(請斬五賊疏)’를 올려 을사오적을 참수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장석영은 김창숙 등과 함께 파리강화회의(1919년 1월 18일~6월 28일까지 개최)에 독립청원서를 보내기로 하고 청원문 초안을 작성했으며, 유림 대표 137명 중 1인으로 서명했다. 이 사건으로 장 선생은 투옥되기도 했다. 장석영은 자신의 파리장서 회당본을 통해 이완용 등이 자행한 만행을 강한 어조로 고발했다. 2009년 6월 대구MBC가 파리장서운동 90주년 기념 특집으로 <붓의 투쟁>이라는 3부작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흑산록`이 공개되면서 그 안에 회당본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장 선생의 회당본은 만세운동, 일본의 기만, 독립에 대한 강렬한 의지 등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와 장석영 선생의 사상 이해에 중요한 사료로 인정받고 있다.장 선생의 현손인 장세민 씨는 “후손 중심의 추모로 시작하려 했지만 선생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되새기기 위해 학계와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기념사업회로 확대했다”며 “100년 전의 외침을 오늘날 청소년과 주민들이 이어가게 된 것만으로도 큰 감동”이라고 말했다.특히 선생의 망명길이 시작된 왜관나루터(石田津·석전진) 일대를 고증해 역사 현장으로 되살리는 작업도 추진되고 있다. 장 선생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제작, 자료집 발간, 전국 학술대회 개최 등도 계획하고 있다.김재욱 칠곡군수는 “장석영 선생은 칠곡이 낳은 인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기억하고 기려야 할 독립운동가”라고 했다.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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