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거점 국립대의 위상이 왜 낮아졌는가? 1990년대까지 거점 국립대의 위상이 매우 높았다. 서울로 유학 올 형편이 되지 않는 학생은 거점 국립대를 나와 그 지역에서 잘 살았다. 지금 거점 국립대의 위상이 떨어진 것은 그 대학들이 뭘 잘못해서가 아니다. 지방이 소멸했기에 대학의 위상도 낮아진 것이다. 지방에 좋은 직장이 부족하니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몰려가고, 지방에 청년들이 없으니 거점 국립대학도 인기가 없어진 것이다. 지방 거점 국립대를 아무리 강화해도 지방의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거점 국립대의 위상이 높아지기 어렵다." -『교육개혁은 없다』의 저자 박정훈 교사
지난 6월 30일 당시 교육부 장관 후보자였던 이진숙 전 충남대 총장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거점국립대뿐만 아니라 국가중심국립대, 지역 사립대 등과 동반 성장하는 구조로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단순한 간판 변경이 아닌 구조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2021년 김종영 경희대 교수의 저서 『서울대 100개 만들기』에서 제안된 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책의 핵심은 전국 9개 거점국립대(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전북대, 충남대, 충북대, 강원대, 경상국립대, 제주대)를 서울대 수준의 교육·연구 역량을 갖춘 대학으로 육성해 지역균형발전과 대학 서열 완화, 고등교육의 질 제고를 동시에 도모하는 데 있다.교육부와 글로컬대학위원회가 지난해 8월 2024년 글로컬대학 평가 결과 ▲경북대 ▲대구한의대 ▲한동대 ▲대구·광주·대전보건대 ▲원광대·원광보건대 ▲인제대 등 총 10개 대학이 본지정에 선정됐다. 2023년 글로컬 본지정 대학은 ▲포항공대 ▲안동대·경북도립대 ▲부산대·부산교대 ▲ 순천대 ▲울산대 ▲전북대 등 총 10곳이다.글로컬대학 사업은 비수도권 대학의 혁신과 지역 발전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다. 교육부는 오는 9월 글로컬대학 10곳을 추가로 지정할 계획이다. 글로컬대학 30곳에 5년간 1000억원을 지원해 지역 대학의 경쟁력과 글로벌 역량을 강화한다. `글로컬`은 `글로벌`과 `로컬`의 합성어로 지역과 함께하는 세계화를 의미한다. 정부는 지역대학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자율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예산 배정과 평가 기준은 중앙정부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명문대 브랜드를 지역에 분산하겠다는 취지로 보이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표면적으로는 지역 균형발전을 외치지만 지역 주민들과 교수들 사이에서는 이 사업이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나 ‘의대 증설’처럼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회의적 지적도 나오고 있다.무엇보다 서울대 이름을 지역에 붙인다고 해서 서울 집중화가 해소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글로컬 대학은 입시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 학문 공동체를 구축하고,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지역 문제 해결에 참여하며 취업까지 보장 받아 졸업 후 학생들이 계속 살고 싶은 도시에서 탄생할 수 있다. 지역대학의 위기는 곧 지방의 위기다. 이는 곧 국가 균형의 위기로 이어진다. 대학을 살리기 위해선 이름이 아니라 철학과 비전이 바뀌어야 한다. 보여주기식 명칭 변경과 일회성 공모사업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서울대 10개가 아니라 서울대 100개를 만들어도 지역은 변하지 않는다. ‘서울대 10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역이 필요로 하는 살아있는 1개 대학이다. 이름만 바꿔선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양정호 성균관대 교수는 이 정책이 “20년 전 실패한 누리사업의 재탕”이라며 ‘서울대’ 간판만으로 경쟁력이 생길 수 없다고 일축했다. 학벌주의만 더 강화하고, 실질적 개혁은 없는 껍데기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서울대 수준의 질적 전환을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데 이를 감당할 정책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비판의 핵심이다.배상훈 성균관대 교수는 “간판만 바꾼다고 서울대가 하나 더 생기지 않는다”며 대학 경쟁력은 정주 여건과 연구 생태계, 장기적 리더십, 학문 공동체 등 복합적 요소가 결합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1996년 전남대 강준만 교수가 출간한 『서울대의 나라』는 대한민국의 학벌주의를 최초로 공론화한 저서로 꼽힌다. 강 교수는 대통령 후보, 장차관, 국회의원, 고위공무원, 판검사, 대기업 임원, 언론사 간부 중 서울대 출신이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지 다양한 자료와 통계수치를 제시하며 대한민국을 ‘서울대의 식민지’라고 규정하고 서울대 패권주의 타파를 주장한 바 있다.2004년 경상대학교 정진상 교수가 이끄는 사회과학연구원이 출간한 『대학 서열 체제 연구』에서는 대학 서열화 체제를 대체할 ‘국립대통합네트워크’ 구축이 제시되기도 했다. ‘국립대통합네트워크’란 학벌주의의 근본 문제를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 서열화 체제에 있다고 보고, 프랑스의 파리1~13대학 체제를 모델로 하여 대학을 평준화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장기적 과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서울대와 지방 거점 국립대(강원대, 충남대, 충북대, 전북대, 전남대, 경북대, 부산대, 경상대, 제주대)를 묶어 공동의 졸업장을 수여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주장이다.『교육개혁은 없다』 저자 박정훈 교사는 "서울에 명문 사립대들이 몰려있는 조건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설계하는 것부터 어렵겠지만, 설사 설계해서 강행한다고 해도 지금 학생들이 겪고 있는 교육 경쟁, 사교육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치열한 입시 경쟁은 서울대를 향한 경쟁이 아니라 ‘의치한약수’ 경쟁이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의치한약수’는 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의 머리글자다.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대학 선택의 기준이 달라졌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이사(理事)까지 올라가더라도 50대면 옷 벗고 나와야 하는 현실에서 70대까지 일할 수 있는 전문직 자영업이 최고로 선망하는 대학이 됐다. 전국 40개 의대를 다 채운 후 서울대 공대 지원이 시작된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7세 고시`, `4세 고시` 모두 서울대가 아니라 의대가 목표다.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