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어준 콘서트에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유력 인사가 대거 참석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김어준 씨가 행사장에서 “곧 대법관이 될 김어준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등 세를 과시한 이번 콘서트가 지지세력이 결집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였다는 지적이다.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복합리조트 아레나에서 지난 27~29일 열린 ‘더파워풀’ 콘서트는 김씨가 기획하고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연출했다.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관객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3일간 열린 ‘더파워풀’ 티켓은 모두 매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티켓 가격은 R석 13만원, S석 11만원, A석 9만원 등이다. 총매출 추정액은 S석 11만원 기준으로 할 경우 약 49억5000만원이다. 콘서트에는 문 전 대통령과 우원식 국회의장,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정청래 의원,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장으로 취임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등이 대거 참석했다.유튜브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김씨는 인형 탈을 쓰고 루이 암스트롱의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를 부르며 등장한 후 "곧 대법관이 될 김어준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행사 중간에는 김씨와 문 전 대통령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문 전 대통령은 김씨를 향해 “야! 김어준 동생. 형님이라고 불러봐”라고 했고, 김씨는 폭소를 터뜨린 뒤 “형님!”이라고 화답해 박수가 쏟아졌다.김씨는 이어 문 전 대통령에게 “형님 이재명 대통령 만날 때 나 대법관 좀 시켜달라고 하세요”라며 “앞으로 모두들 대통령님이라고 할 때 전 형님이라고 하겠다. 형님 이따 봐요”라고 했다.김씨의 이 발언은 지난 5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박범계 의원이 대법관 정원을 최대 30명으로 늘리고 비법조인도 대법관으로 임용할 수 있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로 발의하자 국민의힘에서 “김어준 같은 사람들을 대법관 시켜서 국민들 재판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3일간 비싼 유료석 1만5000석이 모두 매진될 정도로 팬과 관객들이 김어준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어준은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을 넘어선 대안 매체의 상징이자 목소리 없는 이들의 대변자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는 팟캐스트라는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를 개척해 정치와 저널리즘,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진보 진영의 정치적 메시지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유머와 풍자의 언어는 피로한 현실 속에서 위트 있는 해방감을 선사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정서적 공감과 분노, 해학을 건드리는 이야기로 재구성되어 팬덤을 형성했다.대중은 그를 언론인이라기보다, 시대를 통찰하고 끌고 가는 하나의 `신드롬`으로 인식한다. 그의 콘서트는 단순 공연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퍼포먼스이자 감정의 집단 의식,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문화적 실천’으로 받아들여졌다.팬덤(열성 팬이나 지지자들)이 대중 문화를 선도하고 트렌드를 만들기도 하는 오늘날, 관객은 단순한 축제나 공연을 넘어 음악과 미디어, 퍼포먼스, 토크가 한데 어우러지는 다층적인 감각과 정서의 경험을 원한다. 이번 김어준 콘서트는 이를 충족시켰고, 이른바 `복합 감정소비 시대`에 부합했다. 일부 보수우파 관계자는 이렇게 결집하는 좌파의 정치세력화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김어준이 진행해 온 각종 프로그램은 ‘대안 언론’이라는 명분 아래 사실보다 특정 진영의 신념을 중시하는 방식이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정치적 이념에 기댄 문화 콘텐츠는 강력한 팬덤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특정 문화나 가치관, 이념을 절대시하면서 다른 생각이나 표현을 배척하면 일종의 `문화적 교조성`으로 빠지기 쉽다. 이는 건전한 민주주의적 문화와 충돌할 수 있다.열광하는 분위기 속에서 공감을 앞세워 비판적 사고를 희석시키고, 특정 진영의 이념과 주장을 절대화하는 것은 오히려 자유로운 공론의 장에서 나오는 다양성이 훼손되기 쉽다. 나아가 일종의 폐쇄적 집단사고(集團思考)로 변질될 수 있는 위험성이 뒤따른다. 그렇다고 감정과 공감을 억제하거나 부정하라는 말은 아니다. 감성적 공감은 비판적 사고와 연결 짓는 시민의식의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감은 공동체를 움직이는 중요한 에너지다. 그 에너지가 사고를 대체하게 될 때 우리는 타인의 말에 쉽게 휩쓸리고, 나의 생각 없이 누군가의 감정에 동조하기 쉽다. 감정은 이성을 무력화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성찰의 촉매가 돼야 한다. 공론의 장은 다양한 관점이 충돌하고 논쟁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건강한 사회로 성숙해 나갈 수 있다. 그 안에서 감정은 논리와 함께 숨 쉴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의견을 견디지 못하고 반론을 적대시하는 분위기에서는 공감은 선동으로 변질되고,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게 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열광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과 이해관계를 견디는 힘에서 자라난다. 불편한 목소리도 공론의 장에서 나와야 하며 나와 다른 의견을 들어줄 수 있는 용기와 겸손이야말로 공동체를 지탱하는 중요한 힘이다. 좌우 양측의 폐쇄적인 진영의 논리와 경직된 신념에 갇히지 않는 공감 속에서 자유와 상생을 노래하자.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