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이론과 기독교는 양립할 수 없다. 빅뱅이론에서는 모든 것이 저절로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만물을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빅뱅이론을 인정하는 순간 내 목을 사단에게 내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진리는 숫자에 있지 않다 오늘날 빅뱅이론을 지지하거나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하나님께서 만드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소수이다. 많은 사람이 믿는다고 해서 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고대와 중세에 모든 사람이 ‘땅이 가만히 있고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이 돈다고 주장’하였지만, 진실은 그것과 달랐다. 19세기 들어와서 모든 사람이 에테르(빛의 매질이라고 여겨지는 가상의 물질)라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고 에테르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였지만 아무도 그것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아인슈타인만이 그것을 부정하고 진실을 찾았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했을 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지만 결국 진실은 진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하던 이론이 진실로 밝혀진 예는 너무나도 많다. 빅뱅이론은 100여 년 전 에테르를 찾으려는 시도와 같아 보인다.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듯이 빅뱅이란 것도 없다. 100여 년 전 빛의 매질로 여겨지는 에테르를 부정하면 주변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도 빅뱅이론을 부정하면 과학적 소양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의심을 받게 된다. ◆빅뱅이론의 등장 빅뱅이론의 등장부터 문제가 많다. 빅뱅이론이란 엄밀하게 검증된 이론이 아니며 ‘최악(最惡)의 선택’과 ‘차악(次惡)의 선택’ 중에 최악 다음을 선택한 것이다. 빅뱅이론이 처음 등장할 때 논리적인 면이 보이지 않는다. 과학연구의 방법론 중에는 외삽이라는 것이 있다. 실험을 하여 자료를 모았는데 어떤 상황에서 그 자료를 축적하지 못하였을 때 다른 곳에서의 자료를 통하여 그곳의 수치를 예측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3일 전에도 비가 오고, 2일 전에도 비가 왔으며, 어제도 비가 왔으면, 내일도 비가 오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태도이다. 3일 연속 비가 왔더라도 내일은 비가 오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자연이다. 지구 주위의 모든 은하들은 10년 전에 지금보다 모두 서로 더 가까웠고, 20년 전에는 더 가까웠으며, 30년 전에는 20년 전보다 더 가까웠었다. 그렇다면 ‘언제인가는 한 점에서 모든 물질이 출발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서 빅뱅이론은 출발하였다. 그러한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가톨릭의 신부이다. 단순한 추상적 발상에서 시작하였다. ◆외삽의 함정 빅뱅이론과 비슷한 상황이 분자의 세계에도 펼쳐진다. 방안에 향수가 퍼져있다. 냄새가 향기롭다. 그러나 ‘1초 전에는 그 분자들은 서로 가까이 있었을 것이며, 10초 전에는 더 가까이 있었을 것이며 100초 전에는 그보다 훨씬 더 가까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가면 그 향수 분자들은 한 점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이러한 유추가 가능한가? 처음에 이 향수는 향수병에서 액체상태로 출발해서 증발되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한 점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화학에는 샤를의 법칙이 있다. 이 샤를의 법칙에 따르면 이상적인 기체(ideal gas)는 섭씨 영도일 때 기체부피의 1/273만큼 부피가 변화한다는 법칙이다. 그래서 영도에서 273도 정도 음으로 내려면 기체의 부피는 영이 된다는 것이다. 즉, 기체의 부피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기체는 한 점으로 사라져버린다. 물론 실제로 그러한 것은 아니다.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는 샤를의 법칙이 잘 들어맞지만 극저온으로 내려가면 샤를의 법칙은 더는 성립하지 않는다. 기체들은 응축되어서 액체가 되어버린다. 더 내려가면 대부분의 기체는 아예 고체가 되어버린다. 빅뱅이론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다. 빅뱅이론도 샤를의 법칙과 같이 외삽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단지 추측과 이론으로만 만들어낸 것이 빅뱅이론이다. 빅뱅이론의 모순점은 너무 많이 밝혀져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과학사에서 이러한 상황은 더 있다. 바로 초전도물질의 발견이다. 일반적으로 전기의 저항은 온도가 증가할수록 증가한다. 반대로 전선의 온도가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저항은 줄어든다. 1911년 온네스는 도체의 저항을 극저온에서 측정한 적이 있다. 온도가 내려갈수록 도체의 저항이 계속 내려가다가 어느 순간에선가 완전히 제로가 되는 순간을 발견하였다. 아니 전기 저항이 제로가 되다니……. 초전도현상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실제로 관측된 자료 없이 과학현상을 추측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전기저항은 점차 조금씩 내려간 것이 아니라 특정 온도가 되면서 갑자기 영이 되는 현상을 나타낸 것이다. 빅뱅이론도 마찬가지이다. 은하들이 시간이 거슬러 올라갈수록 점점 가까워진다는 추측은 극단적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단지 하나의 가설로 이야기될 수는 있겠지만, 오늘날과 같이 이토록 확신을 주는 현상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결국, 빅뱅이론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발산하는 하나의 광기에 가깝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셨는가? 폭발을 일으켜 세상이 저절로 만들어졌는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비신앙인들이야 어떻게 믿든 상관없지만, 신앙인이 빅뱅이론을 받아들인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간혹 하나님께서 빅뱅이론을 통하여 세상을 창조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가톨릭의 교황은 이렇게 인정한다. 진화론도 인정하고 빅뱅이론도 인정한다. 가톨릭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하자. 개신교 내에서 빅뱅이론을 인정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마치 호랑이 입속에 자신의 머리를 넣는 것과 같다. 무심코 인정한 빅뱅이론의 논리는 신앙을 조금씩 갉아먹어 결국 불신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젊은 우주와 늙은 우주 개신교 내에서 젊은 우주와 늙은 우주에 대하여 약간의 의견 불일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빅뱅이론과 진화론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나온 이론이며 성경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옳지 않다. 우주와 지구의 연대를 오래되었다고 보든 젊었다고 보든, 예수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는다는 구원과는 관계없겠지만, 오래된 지구관과 우주관은 진화론과 빅뱅이론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원수 사단은 하나님에게서 성도들을 떼어놓기 위하여 진화론과 빅뱅이론을 준비하였다. 오래된 지구론과 우주론을 인정하는 순간 그 계략에 말려드는 것이다. 그 오래된 우주론의 첨병에 바로 빅뱅이론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은 관측자료가 없는 추측에 있으며, 그러한 추측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샤를의 법칙’과 ‘초전도 현상의 발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은 이러하다. 결혼이 임박한 처녀가 있다. 그런데 결혼할 수 있는 남자는 세상에 두 명밖에 없다. 그 처녀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과 가장 미워하는 사람.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가? 빅뱅이론을 믿는다는 것은 마치 이런 상황과 같다.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에 대한 물음에 대하여 의심이 가지만 많은 사람이 빅뱅이론을 택한 것이다. 의심이 많이 가고 흠집이 많으면 선택을 미루면 될 것이 아닌가! 과학자들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인가?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남겨두면 될 것이다. 더군다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상황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상을 만드셨다고 하시지 않는가! 왜 기독교인들이 빅뱅이론이 열광하는가! 사단의 유혹에 경계해야 할 때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수수께끼나 난해한 문제를 풀다가 난관에 봉착하여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관련 분야의 전문가나 정답을 알고 있는 분의 도움으로 의외로 쉽게 문제를 해결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지질학은 꼬여진 실타래를 앞에 두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매우 어렵고 힘들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다. 틀을 깨면 답은 쉽게 얻어진다. ◆깨어져야 할 틀 지질학에는 5가지 중요한 법칙이 있다. ‘동일과정의 법칙’, ‘누중의 법칙’, ‘동물군 천이의 법칙’, ‘부정합의 법칙’, ‘관입의 법칙’ 등이 그것이다. 다른 것들은 그럴듯하지만 ‘동일과정의 법칙’이라든지 ‘동물군 천이의 법칙’은 법칙이 아니다. 자연과학에서 법칙이라는 말의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어떠한 자연과학의 법칙이 등장하려면 수많은 검증과 비판 그리고 혹독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많은 가설과 이론들이 최후의 검증을 거쳐서 모든 경우에 대하여 성립할 때 비로소 법칙으로서의 권위를 가지는 것이다. 만유인력의 법칙, 열역학 제2 법칙 등이 그러한 경우이다. 그러나 ‘동일과정의 법칙’이나 ‘동물군 천이의 법칙’이란 사실 가설의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제멋대로 법칙이라는 말을 붙여놓은 것이다. 검증도 거치지도 않았으며, 중간단계인 이론으로서의 과정도 밟지 않았다. ‘동일과정의 법칙’이란 ‘지구가 갑작스럽게 변하여 오늘날의 모양을 갖추게 된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조금씩 조금씩 오랜 시간 동안 변하여 결국 오늘날과 같은 모양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본 사람이 있는가? 아니면 결정적인 증거라도 있는가? 없다. 그런데도 법칙이라고 우기는 데에는 분명히 음모가 있음이 틀림없다. ‘동물군 천이의 법칙’은 ‘동일과정의 가설’에 의하여 지층이 천천히 쌓일 때 생물들도 그 틈에 같이 쌓여 화석이 되었으므로 지층을 보면 생물이 살았던 시대를 알 수 있고, 또한 그 생물의 종류를 통하여 진화와 지층의 연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법칙도 아니고 이론도 아니다. 그냥 자신이 상상한 것을 그대로 법칙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사실, 지층이 급속히 형성되는 메커니즘이 이미 증명되었다. 입자의 크기가 다른 여러 종류의 입자들이 추진력을 얻어서 흘러갈 때 입자의 크기에 따른 마찰로 인하여 입자들의 위치가 정해지며 이것은 지층을 형성하는 중요한 원리가 되는 것이다. 화산재의 경우 자유낙하가 그 추진력이 되고, 흐르는 물의 경우 물의 이동이 그 추진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본인의 글 ‘급속한 지층 형성의 비밀’참조) 과학에서 증명되지 않은 것은 가설이나 이론이라는 이름이 적당하다. 지질학의 5가지 법칙 중 ‘동일과정의 법칙’이나 ‘동물군 천이의 법칙’은 과학자의 상식의 범위에서 상당히 벗어난 것이다. ◆상상에 상상을 더하다. 변호사였던 라이엘(Charles Ly-ell, 영국, 1797∼1875)에 의해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를 출판하고 지질시대를 나누었다. 그리고 몇 번의 수정을 거쳐서 오늘날 약 12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자녀들은 공교육을 통하여 이러한 지질시대를 외우고 암기하고 있다. 그러나 라이엘이 분류한 것처럼 12개의 지층이 온전하게 발견되는 곳은 지구상의 그 어디에도 없다. 바로 위 사진과 같은 지층은 라이엘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자연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반대로 된 지층이 수없이 많이 발견된다. 심지어는 공룡이 살았던 지층에 사람의 화석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들은 많은 자료 가운데 자신들의 이론에 맞는 것만 발표하는 것이 일상적이다. 왜 앞뒤가 맞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고 증거도 불충분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하나님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마음 속에 하나님 섬기기를 싫어하므로 모든 세상이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말하여야만 마음이 편한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기 위하여 생명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격변의 핵심인 노아홍수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는 처음 만들어진 때부터 이때까지 조금씩 변한 것이지 절대로 한 번에 격렬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화론이 상상이듯이, 지질학의 법칙도 머릿속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들이 모두 모여 하나님을 체계적으로 대적하고 있다. ◆그러면 진실은 무엇인가? 진실은 격변론에 있다. 특히 노아홍수의 결과이다. 사실 라이엘이나 다윈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격변론이 대세였다. 동일과정설이나 진화론은 극소수의 의견이었으며 격변론에 반대하여 나왔던 이론인 것이다. 일단 틀을 깨고 자연주의 사고에서 벗어나 격변론적 시각으로 보면 주변의 수수께끼들이 한꺼번에 풀려버린다. 이리저리 꼬였던 실타래가 순식간에 풀리는 것이다. 자연주의나 현대지질학적 이론으로는 우리 주위에 관찰되는 지층을 결코 설명할 수 없다. 격변론의 시각으로 관찰하면, 실험을 통해서 지층이 형성되는 과정을 눈으로 관찰할 수 있다. 지층이 형성되는 실험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서도 동일과정설이나 동물군 천이의 법칙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자연주의자들은 화석을 보고 강력한 진화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과학자들은 화석이 하나님의 창조를 설명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또한 자연주의자들은 각 지층에 쌓여있는 생물의 화석이 오랜 세월 동안 지층이 형성되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즉, 당연히 화석의 주인공인 그 생물들의 생존연대가 많이 차이가 나므로 지층도 오랜 시간에 걸쳐서 쌓인 증거라는 것이다. 그들의 시각에 따르면 이 모든 사건이 연속적이면서 논리적인 이해는 불가능하다. 다만, 격변론 특히 노아홍수에 따른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할 때 정확하고도 논리적으로 이해된다. ◆‘진화의 순서’가 아니라 ‘매몰 순서’이다. 라이엘이 분류했던 지질 12시대는 진화의 순서가 아니다. 그것은 노아홍수로 인한 생물들의 매몰 순서일 뿐이다. 라이엘의 분류에 따르면 제일 아래층에 어패류가 있고 그다음에 어류 그다음이 양서류 그다음이 육지 생물이고 최고 높은 곳이 조류이다. 거대한 홍수가 일어나 수십 미터의 쓰나미가 밀려온다고 생각해보자. 그 물의 아랫부분에는 퇴적물과 땅이 깎여서 엄청나게 점도가 높은 흙탕물이 일어난다. 이러한 저탁류가 닥쳐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제일 바닥에 있는 조개류들이 가장 먼저 매몰될 것이다. 그다음은 물고기들이 도망을 치다가 매몰될 것이며 그다음은 물가에 살던 양서류가 될 것이며, 뛸 수 있는 것은 열심히 뛰었을 것이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매몰되었으며 조류는
오늘날과 태양계 형성 이론에 따르면 진주에 떨어진 운석과 하틀리2혜성, 지구와 달 그리고 태양은 모두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것들이다. 태양에서 떨어져 나오는 데 약간의 시간 차이가 날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가설이 옳다면 설명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지구의 자전속도, 목성과 토성의 고리, 혜성들이 내뿜는 기체 등 모순되는 것이 너무 많다. 이 모든 것이 지구의 나이 45억 년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 연대는 하나님 없이 인간의 존재를 억지로 설명해보기 위한 타락한 인생들의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의 지구의 여러 부분을 살펴보면 빙하로 인한 지각구조들이 많이 있다. 혼(horn), 피오르드(fjord), 빙퇴석(moraine)등 빙하로 인한 대규모 지질구조를 우리는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곳에 현재는 빙하가 없는 곳이 많다. 그렇다면 과거에 빙하가 대규모로 남하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빙하기는 노아홍수와 더불어 과거 지구에 일어난 대격변 중의 하나이며 성경해석과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빙하기라는 현상은 있지만 이것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이것을 두고 자연주의 과학자들과 성경을 근거로 하는 과학자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자연주의 과학자들은 지구의 공전이나 그 외 여러 가지 환경에 의하여 주기적으로 빙하기와 간빙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고, 성경을 근거로 하는 과학자들은 노아홍수의 결과로 빙하기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것을 살펴볼 것이다. 빙하기형성의 필수조건 빙하기란 무엇인가? 빙하기란 지표면에 얼음이 확장된 지역을 말한다. 현재 지표면의 약 10%정도가 빙하로 덮여있는데 이것이 과거 어느 시점에 최고 약 30%정도 덮여졌던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지표면의 30%가 수천 미터의 얼음으로 덮였다면 실로 엄청난 양의 물이 얼음으로 변한 것이다. 여기에서 빙하는 바닷물이 직접 얼어서 된 것이 아니라 눈이 와서 압력을 받아서 얼음이 된 것이다. 우선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증발된 후 눈이 되어 육지에 내려야 한다.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것이 빙하기를 해석할 수 있는 최대 열쇠이다. 빙하기의 얼음은 눈이 내려서 형성된 것이므로 첫 번째, 눈이 올 수 있도록 추워야 하고 둘째, 그 많은 눈이 올 수 있도록 하는 바닷물의 증발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여야만 한다. 기존의 자연주의 학자들의 여러 가지 이론들은 기온이 낮다는 것은 설명할 수 있지만 바닷물이 대규모로 증발한다는 현상은 설명하지 못한다. 빙하가 만들어진다는 추위와 따뜻하여 바닷물이 증발되는 현상은 극단적으로 반대 현상인데 빙하기의 필수조건은 이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성립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수증기 증발 원인 빙하기는 노아의 대격변이 원인이다. 노아의 대격변 초기에 깊음의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이 열렸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깊음의 샘은 과거 지하에 있었던 대규모 수(水)층이다.(Hydroplate Theory) 화강암층과 현무암층사이에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던 물이 어떤 원인에 의하여 터져 올라왔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해령은 깊음의 샘이 터져 올라왔던 시작점이며 그곳을 중심으로 대륙은 양쪽으로 밀려나갔다. 여기까지가 Hydroplate Theory(수판이론)이다. 수판이론은 성경에 나오는 내용은 아니지만 성경의 많은 부분들을 과학적으로 훌륭하게 설명해내고 있다. 빙하기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부터이다. 지구의 내부는 불덩어리이다. 방사성물질이 조금씩 붕괴하여 지금도 조금씩 열을 내고 있다. 노아홍수 초기에 깊음의 샘이 터져서 지하에 있던 엄청난 물이 솟구쳐 올라가 극한의 비가 되어 내렸다. 그렇다면 바닷속은 어떻게 되었는가? 깊음의 샘에서 뜨거운 물이 빠져나간 후 대륙이 양쪽으로 이동하면서 바닥은 뜨거운 현무암재질의 물질이었다. 엄청난 양의 바닷물과 뜨거운 현무암재질의 바닥이 만나서 전체 바다의 온도는 서서히 올라갔다.(그림 1) 이것은 바닷물을 대규모로 증발시겼으며 막대한 규모로 내린 눈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인류의 흩어짐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의 수명이 단축되었던 시기가 세 번 있었다. 처음은 에덴동산을 상실하였을 때이고 두 번째는 노아홍수를 겪으면서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빙하기를 지나면서이다. 에덴동산에서는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으나 범죄함으로써 그곳에서 쫓겨나서 저주받은 땅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래도 약 1000년 정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노아홍수 후 하늘의 보호막이 걷히면서 수명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 후 빙하기를 지나면서 추위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더욱 수명이 줄어 현재의 수명으로 정착이 되었다. 증발이 한창 진행되었을 때 막대한 양(육지의 30%를 얼음 수 천 미터로 덮는 양)의 바닷물이 지상으로 올라갔으므로 해수면은 현재보다 더욱 낮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모든 육지는 하나였으며 호주나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베링해도 육지로 연결되었을 것이다.(그림 2) 때 마침 바벨탑사건이 일어나고 언어가 달라진 사람들은 온 세상으로 흩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해안에는 빙하가 쌓이지 않는다. 바닷물이 따뜻하였다면 그 주변에 있는 육지는 당연히 따뜻하여서 얼음이 얼지 않는다. 그러므로 빙하가 없는 곳과 해안을 따라서 동서남북으로 모든 인류가 흩어졌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노아홍수 후 약 200년 동안의 따뜻한 시기를 거쳐서 그 후 약 500년 정도의 빙하기가 왔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빙하기가 끝날 무렵, 이들 빙하들이 녹아서 바다의 수면을 상승시켰을 것이며 대륙과 대륙은 다시 끊어지고 사람들이 서로 이동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지형이 완성된 것이다. 세계 곳곳의 해저에서 발견되는 도시 흔적이나 건물들은 노아홍수를 견딘 노아 이전 시대의 유적이거나 아니면 빙하기 이전의 도시들이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수몰된 도시들일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흩어지게 하신 하나님은 흩어질 길을 만들어 놓으시고 흩으신 것이다. 빙하기 형성의 핵심은 추위와 수증기이다. 춥기도 하지만 막대한 양의 수증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추위와 막대한 양의 수증기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성경적 사고로 살펴본 과학이론만이 설명가능하다. 깊음의 샘이 터지고 그 바닥의 뜨거운 바닥이 드러나면서 지구 전체의 바닷물의 온도가 상승하고 이것이 막대한 양의 바닷물을 수증기로 날려 보낸 것이다. 막대한 양의 수증기를 날려 보낸 후 길을 만드셔서 사람들이 온 세상으로 흩어질 수 있도록 만드신 것이다.
전국 명당중의 명당 세종대왕자태실 옆에 위치한 서진암 주지 선문스님은 산사음악회와 어르신 무료급식 등으로 지역민과 함께하면서 삶의 의미와 기쁨을 주고 있다. '자연 음악 나, 그리고 서진암'이라는 주제로 지난 6월1일 서진암 마당에서 열린 제4회 서진암 산사음악회에 참석한 신도와 지역주민 등은 자연 속의 음률을 타고 선석산의 정취에 젖어들었다.
도대체 왜 살아가는가? 왜 연구하며 왜 이론을 세우며 왜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 싶어 하는가?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정말로 부질없는 짓일 뿐이다. 우주의 점 중의 점도 안 되는 존재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태양을 논하고 은하를 이야기 하고 우주의 생성을 알아내려고 하는가? 그들은 잠시라도 더 쾌락을 즐기는 것이 나을 것이다. 진실로 자연주의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인간이란 그저 먼지가 공중에서 떠돌다가 바람에 흩날려가는 무의미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정말 놀랍다. 자연주의자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이 세상이 생겨났다면, 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인간의 유전자는 모바일폰의 설계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다. 복잡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놀라운 효율성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유전자의 자기복제성, 환경에 따른 적응능력(형질발현)등은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놀라운 재료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효소들은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지시에 따라 단백질들을 합성해낸다. 놀랍고도 엄청난 시공능력이다. 인간의 몸은 궁극의 정보와 궁극의 기술에 의하여 만들어진 최고의 건축물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세상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혔다. 그 이전 사람들도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으나 코페르니쿠스는 구체적인 수식과 증거를 가지고 설명한 최초의 사람이다. 코페르니쿠스 이전 시대에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알고 살았다. 코페르니쿠스는 일거에 세상의 중심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결과 지구는 특별한 위치에서 밀려나 보통의 자리에 앉아야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코페르니쿠스 원리(Copernican principle)는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 그 뜻은 ‘지구는 특별하지 않다’ 또는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뜻을 가지는데 최근에는 지구 대신 "인류는 특별하지 않다"는 뜻으로도 쓰이기도 한다. 인간은 우주의 중심에 있지 않다.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밝혔을 때 인간은 자신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우주의 주인공에서 한 순간에 우주의 변방으로 추락한 것이다.(그림 1)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지위가 바뀐 것이다. 세상의 중심이 지구에서 태양으로 바뀌고 난 뒤에도 세상의 중심에 대한 인간의 미련은 끝이 나지 않았다. 지구가 있는 이 공간이 전체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와 특별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내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과학자 중에서도 지구는 다른 행성보다 특별하므로 특수한 위치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수많은 관측결과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가 다른 우주와 특별히 구별된 공간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할 뿐이다. 혹시 특별히 구분되는 공간에 속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자존심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까지 인간이 알아낸 것에 의하면 우리의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이 은하계 내에는 약 2000억 개의 태양과 같은 별이 있다. 그리고 인간의 지성이 미치는 우주공간 안에 그러한 은하계가 약 2000억 개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에게 우주공간은 거의 무한한 공간으로 느껴질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궁창에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는데 별을 왜 이렇게 많이 만드신 것일까? 하나님께서 별들을 이렇게 많이 만드신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많은 별들을 보는 순간 우리는 어떠한 생각이 드는가? 이 광대한 우주에 비하여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우주의 광대함에 비하면, 지구에 사는 우리의 존재는 신분이 높든지 부자이든지 권력자이든지 상관없이 너무 보잘 것 없는 존재인 것이다. 우주의 광대함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낮아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수많은 별들의 창조 목적의 많은 부분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다른 동물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인간이 존재하는 태양계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신 자체도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우선 기능적으로 그러하다. 인간은 말과 같이 빠르지도 않으며 호랑이와 같이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지도 않았으며 새와 같이 하늘을 날수도 없다. 더군다나 추위를 견딜 수 있는 털도 없다. 개와 같이 냄새를 잘 맡을 수도 없으며 생쥐와 같이 재빠르지도 않다. 육체적인 조건에서 볼 때 다른 동물에 비해서 나은 점이 별로 없다. 인간의 육체를 유전적으로 따져 봐도 다른 생명체보다 특별히 나은 점이 없다. 과거부터 인간은 특별하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다른 동물과는 달리 매우 특별할 것이라고 막연히 믿어 왔다. 그러나 유전적 정보가 어느 정도 해석이 된 오늘날 인간은 유전적으로도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우선 염색체수를 보자. 염색체란 인간의 세포내에 존재하는 유전자 덩어리이다. 이것은 한 생명체의 특성과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집합체라 볼 수 있다. 이 염색체는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으며 오늘날 염색체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다. 염색체수를 보면 침팬지가 48개, 사람이 46개, 감자가 48개, 쥐가 40개 등이다. 염색체수가 많을수록 더 고등한 생명체라면 침팬지와 감자가 사람보다 우등한 생물인 셈이다. 염색체 안에 있는 유전자의 수는 연구한 단체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나 약 22333여개로 추정된다. 이것은 닭보다는 많으나 포도보다도 유전자가 적다. 유전자수가 많을수록 고등생물이라면 포도가 사람보다 고등한 생물이다. (그림 2)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처음에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매우 고등하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유전자수를 약 10만개 정도로 추측하였다. 지놈프로젝트를 통하여 유전자를 오랫동안 분석한 결과, 인간의 유전자는 다른 동식물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다른 동식물들이 유전자수가 더 많았다. 막연히 인간이 육체적으로 매우 특별할 것이라는 편견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인간은 왜 다른 동물과 달리 존엄해야하는가? 인간은 도덕적으로 모든 생명체중 최악이다. 인간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을 대규모로 사육하여 끔찍한 방법으로 도살하여 자신의 먹이로 삼는다. 인간은 자신의 편의와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다른 동물과 식물들을 탐욕적으로 취하여 아예 세상에서 멸종되게 하기도 하고 자신의 욕구에 맞는 기형적인 식물과 동물들의 변종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자신의 욕심을 채울 수만 있다면 산도 깎고 바다도 매우고 모든 세상을 바꿀 기세다. 인간의 욕심에 의하여 지구 전체가 더워지고 있으며 다른 동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자신의 영역에서 쫓겨나고 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한 죄악은 더욱 더 심각하다. 자신과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 또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십만명 또는 수백만명의 목숨을 빼앗는 일이 역사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무도 이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 분명히 일어났던 생생한 역사이다. 인간은 법 앞에서 평등하고 모든 사람이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인간의 생명은 존엄하다. 왜? 인간은 왜 만물의 영장이고 왜 돼지의 생명은 존엄하지 않고 인간의 생명만 중요한 것인가! 만약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이것은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을 것이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특별하다. 하나님을 바르게 깨닫는 가장 기본은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낮아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냥 높으신 분이 아니라 만물을 지으시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운행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왕들 중의 왕이신 분이시고 인간이 감히 대들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코페르니쿠스의 원리는 지구와 인간을 특별하지 않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특별한 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하나님 앞의 만물은 티끌 같으며 우주 만물 앞에서 인간의 존재는 먼지 같은 존재이다. 우주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났다. 만물의 주인 되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아닌 우리 인생을 사랑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벌레 같은 인간을 하나님께서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이다. 죄로 가득한 인생을 하나님은 죄 없다고 하신다. 보잘 것 없는 조각목에 금을 입히셔서 성전재료로 사용하신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의롭다 여기심을 통하여 의인이 될 수도 있고 존엄할 수 도 있고 만물의 영장이 될 수 도 있다. 인간의 모든 가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인체의 경우에도 몸 구성물질의 약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 인체의 체온조절기관이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장치일 뿐이고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인체의 대부분이 물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이다. 산이나 바다에서 조난을 당하면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여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만일 인체가 물이 아닌 다른 물질로 채워져 있다면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바다와 인체가 많은 물로 채워진 것은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사랑이신 것이다.
최근 타키온(빛보다 빠른 입자)으로 뉴트리노가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주의 크기를 뉴트리노 속도에 맞춰 늘릴 것인가! 현재 둥근 지구상에 내 시선이 닿는 곳의 넓이가 매우 좁은 것과 마찬가지로 137억 광년 우주의 크기가 인간지성이 미치는 곳이고 실제우주는 그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 우주의 크기를 137억 광년으로 제한하는 것이 오히려 비과학적이다. 인간은 우주의 크기를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오래전부터 우주에 대하여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진실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우리 몸은 소중하다. 적어도 이 땅에서 살면서 우리는 몸을 가지고 몸이 하는 기능에 의지하여 살고 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건강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이유는 우리의 생활이 몸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하기 때문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몸의 정상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들로 넘쳐난다. 현대에 들어서 몸 자체의 아름다움이 상당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과거에도 몸의 아름다움을 선호하였지만 정신문명이 쇠퇴한 오늘날에 접어들어서 몸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더욱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보이는 것 우리의 몸은 경이적이다. 20대의 청년이 여기 있다고 하자. 그는 태어날 때 약 3.5kg 정도로 태어났을 것이다. 현재 그의 몸이 70kg이라면 나머지 66.5kg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음식을 먹어서 그 음식이 우리의 몸의 일부가 된 것인가? 그렇다면 음식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따지고 따지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탄소 1개)가 태양에너지를 힘입어 우리 몸으로 들어와 우리 몸을 이룬 것이다. 즉, 내 몸의 거의 모든 부분은 한 때 공기였던 것이다. 공기 속의 탄소들이 내 안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쌓인 결과로 인하여 신문을 읽고 있는 나의 눈과 손을 만든 것이다. 단지 원료로만 놓고 보았을 때 인간의 몸은 전혀 귀하지 않다. 흔하고 흔한 공기가 모여서 내 몸을 구성하였고 그 몸이 결국에는 다시 땅으로, 공기 속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잘 것 없는 탄소조각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내 몸이지만 이 몸으로 생각도 하고 향기 그윽한 커피도 마시며 사랑하는 이와 이야기도 할 수 있으며 각종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웃들과 친구들과 성도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도구이기에 귀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보이지 않는 것 우리의 몸은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고 이 단백질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밀한 설계도에 의하여 조립된다. 그 설계도를 인류를 발견한 것이다. 내 몸을 만드는 설계도는 바로 유전정보이다. 유전정보들은 단순히 DNA나 RNA와 같은 분자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DNA나 RNA는 유전정보를 기록한 기록물이지 유전정보자체는 아니다. 여기 위대한 문학 작품이 있다고 하자. 그 위대한 작품을 기록한 잉크가 중요한가 아니면 잉크를 이리저리 기록한 작가의 정신세계가 중요한가!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 문학작품을 기록한 작가의 정신세계가 위대한 것이지 한낱 종이 위에 뿌려진 잉크의 모양을 보고 위대하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대한 나의 몸은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작품이다. 나의 몸은 우리가 늘 접하는 것이고 항상 내 곁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의해서 현실이 된 것이다. 우리는 고도의 정보에서 빠져나온 내 몸은 만질 수 있지만 그 고도의 정보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 (그림 1.) 정보는 정보로 부터만 나온다 DNA나 RNA는 엄청난 정보를 담고 있다. 이것은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램을 짜는 것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로그래머가 작은 프로그램을 작성한다고 생각해 보자. 프로그래머의 생각이 잘못되었을 경우에는 바른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없다. 바른 생각과 바른 자료를 입력하면 올바른 결과가 나오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 결코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없다. 하나의 프로그램을 작성하기에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류를 수정하여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마침내 올바른 코드와 올바른 자료를 넣었을 때 원하는 대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모든 생명체들의 생존과 존재 자체가 기적이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초파리는 거의 ‘존재의 기적’을 선언하고 있다. 초파리는 그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비행능력과 탐지능력 그리고 공기 중의 몇 개의 기체분자를 추적하여 먹이를 찾는 능력은 아연실색하고도 남는다. 더욱이 이들 초파리들은 대를 이어서 생산하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 초파리 안에서 놀라운 정보가 들어있다. (그림 2) 작은 정보라도 저절로 생기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정보의 복제는 우리가 늘 경험하는 것이다. 정보는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정보에서 새로운 정보가 생겨난 현상은 인류역사 이래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다. 자연주의자들은 진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조직적 유전정보가 저절로 생기거나 더하여져 발견된 적은 결코 한 번도 없었으며 그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증명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현재 존재하는 유전정보가 복제되는 현상은 지금 내 몸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은 엄연한 진실이다. 최초의 정보 그렇다면 내 몸이나 초파리에 대한 최초의 유전정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저절로 생겨났다는 말은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 유전정보는 파괴되는 경우는 있지만 의미 있는 정보 또는 유전정보가 새로이 생겨나는 경우는 결코 발견된 적이 없다. 최초의 정보는 온 세상 정보와 지식과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비행기를 연구하면서 독수리를 경이롭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배를 만들면서 돌고래가 수영모습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비행기를 만들어 본 사람은 파리와 독수리 등이 얼마나 고도의 정보 집합체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달을 우주선으로 왕복하는 인류이지만 작은 초파리 앞에서는 모든 과학적 업적이 그야말로 해체되어 버린다. 인간이 만든 어떤 자동차가 긁히면 저절로 복구가 되는가! 그러나 인간의 피부는 약간의 피가 나고 딱지가 생긴 후 거짓말같이 새로운 피부를 형성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이다. 우리의 몸이 모든 것을 증거하고 있다. 자식을 가져본 부모는 이미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였다. 자식의 몸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부모가 한일은 무엇이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의도와는 아무관계 없이 정보가 복제되고 자신을 닮은 2세가 생겨난다. 이러한 표적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놀라운 일이다. 놀라운 피부가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고 놀라운 치아구조가 하나님의 솜씨를 선포하고 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것들이 일련의 정보의 표현이라는 것이며 그 정보의 시초는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몸을 가꾸고 꾸미는 것뿐만 아니라 그 몸이 선포하고 있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데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태양의 지름은 달의 지름보다 약400배 크다. 그리고 태양은 달보다 약400배 멀리 있다. 그래서 지구에서 보기에는 똑같은 크기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태양이 달에 의해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1년이 정확하게 365일이 아니라 365.2422일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윤달을 조정하여야 만이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윤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윤초(leap second)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 년의 길이가 (365×24×60×60)초가 아니라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일 년을 정확하게 맞추려면 가끔씩 일초를 삽입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물질을 끝까지 분해하면 존재의 근원을 찾을 줄 착각하고 있다. 물질이 무슨 법칙이나 원리에 의하여 스스로 존재하는 줄 오해하고 있다.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을 아무리 분해하더라도 존재의 근본을 알 수는 없다. 하나님이 입자를 존재하게도 하시고 상호작용하게도 하시는데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 속에서 실제로 그 핏값이 유대인들과 유대의 자손들에게 돌아간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히틀러에 의한 600만 유대인의 대학살사건이다. 광란의 두 번째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연결되어있다. 광란의 외침은 광란의 학살로 이어진다. 히틀러는 무슨 생각으로 600만명에 가까운 유대인들을 학살하였을까? 단순히 유대인을 싫어하기 때문에 제거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나치하에서의 독일은 제국주의다. 거대한 제국주의를 운용하려면 그 제국의 규모에 걸 맞는 이념과 통치사상이 있어야 한다. 히틀러는 그 제국의 이념을 바로 ‘생물학적 자연주의’인 진화론에서 찾았다.
거창한 제목의 물리학과 관련된 책이나 천문학과 관련된 책의 결론부분에 항상 등장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라는 것이다. ‘인류발생원리’라고도 하는데 그 주된 관심은 ‘인류가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가’하는 것이다. 인류발생원리를 논하는 과학자들은 ‘빅뱅과 진화론’으로 이어지는 극단적 자연주의와는 관점이 조금 다르다. 일단 그들의 논점은 놀라움에서 출발한다. “세상에! 어떻게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세상에는 도저히 인간이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런데 인간이 존재한다. 이것은 기적이다.’는 식이다.
생명은 결코 저절로 생겨날 수 없다. 분자에서 생명체까지 여러 단계가 있는데 이러한 몇 가지 단계에서 그들의 주장대로 저절로 된다는 가설은 모두 부정된 상태이다. 이것은 어떠한 과학자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큰 배를 뜻하는 船(선)자를 보자. 이 글자를 자세히 분석해보면 배(舟)에 8(八)명의 식구(食口)가 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한자에는 이러한 종류의 많은 글자들이 ‘성경의 사건과 노아홍수’를 의미하고 있다.
우주는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우주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하늘의 별은 얼마나 많을까? 어린아이의 유치한 질문 같지만 이 땅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과 모든 과학자들의 의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러한 물음에 함구하고 계시지 않는다. 성경을 통하여 많은 것들을 알려 주셨다. 그러나 오늘날 이 질문에 대하여 성경적 관점은 너무나 무시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