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다고 해서 매국노가 아니고 애국자입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한 소신 있는 발언이다. "김 장관은 일제 치하에서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말했다"고 한 이재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대해 "그러면 일본 국적이 아니면 어디 국적인가, 임시정부이지 국가가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문수 대세론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그가 갑자기 나타난 인물도 아닌데 왜 그럴까? 유파 국민들이 그동안 진정한 우파 지도자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는 증거이다. 용(龍)으로 알았는데 이무기도 못 되었고, 사자인가 했더니 고양이였다. 한 두 번 속은 게 아니다.
현 대한민국 상황에서 어떤 인물이 지도자가 되어야 할까? 우선 국가관이 뚜렷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이를 침탈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다음에는 역사관이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해서 탄생되었는지 근현대사(近現代史)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건국(建國)과 부국(富國)을 이룬 이승만과 박정희 정신을 품고 있어야 한다.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번 국회 청문회에서 김문수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가관과 역사관이 그대로 드러났다.
`제주 4.3 사태는폭동이다.` `세월호 추모 공간을 광화문 광장에 한 건 잘못이다.` `일제시대 조상들의 국적은 일본이다.` `문재인은 김일성 주의자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잘못되었다.` 등등... 김문수 후보는 추호도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야당이 머리끝까지 흥분한 일제 시대 우리 조상들의 국적문제까지 그는 사실을 바로 말하였다. 패배의 역사도 역사다. 그걸 감추고 덧칠한다고 그 역사가 지워지나?
야당은 흥분하기 전에, 일제 시대에 살았던 우리 국민 중 국적이 `조선` 또는 `한국`으로 기록되어 있는 증거물을 제시해야 한다. 야당은 비록 일본 국적으로 되어 있었다라도 말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뜻인가?
이게 정글이나 다름없는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통하겠는가. 우리는 지금 이성보다는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논리는 뒷전이다. 이 혼탁한 시국에 김문수 후보가 전면에 나타났다. 진정한 우파 지도자의 출현을 애타게 기다리던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것이다.
영국의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은 그의 저서 『영웅숭배론』에서 "위인은 항상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갯불과 같다. 나머지 사람들은 마른 나무처럼 그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가 내려오면 모두 타오르는 불로 변한다"고 하였다.
이제 애국 국민들은 마른 나무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김문수 후보가 번갯불이 되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이상 `竹齋` 기고문)
다음은 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의 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부장관으로 임명한 김문수 전 경사노위 위원장의 국회청문회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군계일학`과 `낭중치추`는 비슷한 뜻을 지니고 있다. `닭의 무리에 학이 한 마리 있는 모습(군계일학)`과 `주머니 속의 송곳은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낭중지추)`라는 말은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다.
그는 1970~1980년대 학생운동과 재야노동운동의 대부였다. 고등학교 3학년부터 학생운동을 시작한 그는 서울대 재학 중에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되었다. 그 후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한일 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지냈고,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수배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또 1985년엔 전두환 정권의 엄혹한 탄압을 뚫고 `구로동맹파업`을 끌어내기도 했다.
그는 `위장취업`을 통해 노동운동에 뛰어든 뒤 노동운동의 전설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일화를 만들어냈다. 서울노동운동연합을 결성하고, 지도위원이 된 뒤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에 시달리면서도 동료들을 한 명도 불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또 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가 `장기표와 김문수는 내 아들`이라고 할 정도로 성실성과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정치권에 들어와서도 그의 현장 중심 부지런함과 성실성은 빛이 났다. 그의 참모로 있던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그는 정말 아랫사람을 조금도 쉬지 않게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항상 현장 중심으로 달려가고, 또 끊임없이 학습하며, 아랫사람을 점검하고 `오더`를 내린다고 한다. `나 김문순데…`라는 일화도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소방서를 점검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23명이나 목숨을 잃은 아리셀 공장의 화재와 7명이나 되는 목숨을 앗아간 부천 모텔 화재 등, 연일 계속되는 경기도 지역의 대형 화재 사건을 생각할 때, 김문수 위원장의 "나 김문순데…" 사건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칭송을 받아도 부족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그의 성실성과 치열함은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사회주의 사상 이념`에 대한 성찰에서도 드러났다. 다른 사람들은 동구권 몰락이 사상 이념 전환의 `핑곗거리`였겠지만, 그는 달랐다. 자신이 추구한 사회주의 이념이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찰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건국, 그리고 이승만과 박정희를 연구했다.
그 결과 자유·민주 정신에 입각한 대한민국의 건국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고, 이승만, 박정희라는 두 인물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는가를 확인하였다. 그가 `왜 극단에 극단으로 바꾸는 삶을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을 받는 이유도 그의 `현장성, 진정성, 그리고 치열함`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모호함`보다는 `분명함`을 추구해 왔던 사람이다.
"나라가 망했는데, 국적이 어딨습니까?", "헌재 결정은 인정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신영복의 사상을 존경한다면, 문재인은 김일성주의자가 맞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과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한다." 김문수 위원장의 단호한 발언과 태도에 `진짜 보수가 나타났다`며, 보수진영이 환호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를 두고 허현준 전 청와대 국장은 "장판교에서 조조의 10만 대군을 호령하던 장비를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또, 신평 변호사는 김문수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당선 후 사무실로 이소선 여사를 초청한 뒤 "제가 아직 저 자리에 앉지 않았다"며 이소선 여사를 안내해 앉히던 일화를 말하며, 그의 진정성을 극찬하기도 했다.
김문수 위원장은 국회의원 3선, 경기도지사 2선, 경사노위 위원장을 역임했음에도 재산이라곤 봉천동의 25평 낡은 아파트가 전부다. 공직생활을 그토록 오랫동안 했음에도 청빈한 삶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를 1990년대 `미스터 클린`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쳤던 `잠롱` 전 태국 방콕시장에 비유하기도 한다.
지금 사람들은 "정치가 혼란스럽고, 나라가 어지러운 이때, 국가의 중심을 바로잡고 세워줄 수 있는 `큰 리더`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세대교체를 통해 젊어져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나라가 안정되고 중심을 잡기 위해선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제대로 된 경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김문수 위원장이 `낭중지추`가 되고, `군계일학`처럼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