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싸움부터 시작했다. 각종 특검법 발의가 쏟아지면서 여야가 서로 신경전을 벌이며 `맞불` 성격의 특검을 남발하고 있다. 싸우는 국회의원은 이를 지켜보는 상당수 국민의 "제발 좀 싸우지 마라"는 애원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야가 싸우는 모습이 초등학생과 다를 바가 없다는 지적을 22대 국회 수준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지난 6월 21일 열린 `채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는 청문회가 아니라 조롱과 모욕이 난무하는 `벌 주기 쇼`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날 입법청문회는 "무법천지" "모욕적 언행 난무" "왕따를 만들고 집단 폭행을 가하는 학교 폭력을 보는 듯" "벌 주기 쇼" "인기 영상, 숏폼을 만들기 위한 졸속 청문회` 등 온갖 비난이 터져 나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31일 제6차 전체 회의를 열어 더불어민주당이 ‘전국민 25만원 지원법’과 ‘노란봉투법’으로 각각 명명한 민생회복지원금지급 특별조치법과 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퇴거 명령에 불응하며 "지가 뭔데"라고 말한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권을 무기한 중지했다. 곽 의원은 이날 의사진행 관련 항의 도중 ″무슨 퇴거명령이냐. 지가 뭔데″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청래 위원장이 발언권 중지를 선언하자 퇴장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은 국민을 위해 얼마든지 싸울 수 있다. 국회에서 국민의 권익을 대변하기에 의원 자신과 소속 정당의 이해관계를 떠나 철저하게 서민과 약자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회의원 대부분이 자신을 뽑아준 국민보다 당리당략에 따라 의정활동을 펼치거나 상대 당에 맞서 싸우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국민의 대표라는 것을 망각한 채 의원들 서로가 고성과 막말, 조롱은 물론 몸싸움까지 벌여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국회폭력은 국회의 다수가 표결로 원하는 법률을 통과시키려고 할 때 반대하는 정당이나 소수가 몸을 던져서라도 입법절차를 방해해 법률 통과를 막으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국회의원 간의 몸싸움을 말한다. 2012년 5월 30일 국회선진화법 시행 후 물리적 폭력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아예 근절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소수의 폭력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해당 사안에 대한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국민에게 피해가 가는 현행 법률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안을 제정하면서 여야가 토론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논쟁(말싸움)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의회(parliament)는 `말하다`는 뜻을 지닌 프랑스어 동사 `parler`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언쟁하다`라는 뜻의 영어단어 `argue`의 명사 `argument`는 논쟁, 언쟁, 말다툼, 논거, 논증, 주장 등 여러 의미가 있다.
의회는 보다 나은 정책 입안과 법률 제·개정을 위해 말로 의견을 제시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곳이다. 때로는 격렬한 토론이 논쟁, 즉 말싸움으로 번지는 것은 모두 국민을 위해서라면 바람직하다. 그러나 양보를 잘할 줄 모르는 우리나라 국민의 경우 토론이 논쟁(말싸움)이나 고성을 동반한 싸움으로 번지기 쉽다. 토론 시 자기의견이 중요한 만큼 상대 의견도 중시해야 한다.
이러한 토론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면 건전한 토론에서 나오는 합의와 협치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국민과 국회는 이러한 수준 높은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결과 언쟁과 싸움이 난무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상당수 국민은 자신과 자기가 속해 있는 단체의 이익에 위배되면 무조건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과거 당파싸움을 하듯이 먼저 큰소리부터 쳐놓고 본다.
여야와 우파·좌파, 보수와 진보도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고착화된 나머지 유리할 때는 자기들의 신성한 이념을 앞세우고, 불리할 때는 무조건 상대를 공격하고 상대가 잘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보는 이른바 `편 가르기 사이비 진영론자`에 빠져 있다.
남아프리카 반투어에 "네가 있어 내가 있다"라는 의미를 지닌 `우분투`라는 단어가 있다. 야가 있기에 여가 있고 여당이 있어 야당이 있다. 국민의힘 여당(與黨)의 여(與)는 한자로 `더불어여, 줄여`이다. 22대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이름에도 `더불어`가 있다. 여야 모두 자기 당의 당리당략을 위해 움직이지 말고 여야 더불어(함께) 국민에게 더 좋은 정책과 복지를 안겨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국회는 김대중·김영삼·김종필 `三金` 같은 보스 중심의 거대 양당 체재로 흘러왔기 때문에 여야의 극한 대립에 따른 정치적 싸움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특히 여야는 당론이 결정되면 밀어붙이기식으로 국회를 이끌어 가기 쉽다.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은 각자의 입장을 당론으로 강제하기 때문에 개인의 정치적 소신은 펼칠 수 없게 된다. 당론에 갇히고, 강제당하게 되면 독립된 하나의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다.
공천을 받아야 국회에 진출하기 쉬운 우리나라 의원들은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의식하기 때문에 소속 정당의 당론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후보자가 지역구에서 경선을 통해 결정되기 때문에 다음 선거 정당 공천을 의식하지 않고 개인적 정치활동을 활발히 전개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도 이들 선진국처럼 거대 정당의 공천권을 쥐고 있는 몇몇 특정인이 주도하는 당론에 구애받지 않도록 상향식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정착이 절실히 요구된다. 지금까지 이 제도가 시행되지 않은 것은 공천규정을 좌지우지하는 기존 공천권자들과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 지키기, 즉 자기들이 `마르고 닳도록 해 먹고` 싶은 그들만의 리그 때문일 것이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