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지난 5일 시급 기준 1만30원으로 확정 발표됐다. 이 금액은 모든 사업장에 일괄 적용된다. 그러나 여당은 차등화하겠다는 의지를 계속 보이고 있다.
특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업종·연령별로 유연한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영세 사업자의 부담을 덜고 노인 고용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김천)은 지난 19일 사업의 종류·규모·지역·연령별로 최저임금을 나눠 정하도록 하는 최저임금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최저임금법 4조 1항은 최저임금을 사업 종류별로 구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제도가 36년째 전체 산업에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어 업종별 등으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게 송 의원의 입법 취지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 조사 결과 지난해 법정 최저임금(시급 9860원)을 받지 못한 근로자가 301만명으로, 1년 새 25만명이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근로자 7명 중 1명꼴이다. 최저임금을 위반한 고용주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1차 피해자는 근로자들이지만 최저임금을 주지 못해 범법자가 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도 피해자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워 최저임금을 2018년 16.4%, 2019년 10.9%로 대폭 인상했다. 그 결과 취약계층 등 일자리가 무너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고물가·소비 위축 등 경기침체 속에서 최저임금은 가파르게 올랐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평균 9%가 인상됐다. 자영업자를 비롯한 소상공인과 기업체는 최저 임금을 감당하지 못하면 직원부터 줄일 수밖에 없다. 이같이 일자리가 없어져 아르바이트와 노동으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대학생과 근로자들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급여를 받고도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회적 불행`을 낳게 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을 올리는 방향은 맞으나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일하는 사람이 301만명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최저임금 이하를 받으면서까지 일하겠다는 노동자가 많다는 건 아직 한국의 경제 발전 수준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일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며 “기준 금액을 올리는 데만 목적을 두지 말고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사람을 어떻게 줄일지, 최저임금에 어떻게 유연성을 도입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전체 근로자 임금의 중간 지점인 근로자 중위 임금의 62% 수준으로 OECD 평균 57%는 물론 미국 28%, 일본 46%, 독일 54% 등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
경총은 이제라도 ‘지킬 수 없는 최저임금’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화가 급선무라는 주장이다. 현행법으로도 업종별 차등화가 가능하지만 최저임금 도입 첫해인 1988년 한 해만 시행되고 사문화됐다. 지난해 편의점, 음식·숙박업, 택시운송업에만 차등 적용하자는 안건이 최저임금위원회에 제출됐지만 부결된 바 있다.
경총은 업종과 지역에 따라 고용 요건과 고용주의 지급 능력이 크게 다른데 전국 모든 작업장에 똑같은 최저임금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에선 업종·지역별은 물론 연령별로도 최저임금을 차등화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행은 돌봄 서비스 부담 완화 방법으로 외국인 근로자에게는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말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외국인 근로자를 전년보다 24% 증가한 6만명 넘게 배정할 계획이다. 고령화 등으로 갈수록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는 외국인 근로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당장 부족한 일손을 외국인 근로자로 대체하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외국인 근로자와 내국인에게 동일한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그러나 외국인은 의사소통 등의 어려움으로 작업능률이 떨어진다. 최저임금은 계속 오르는 반면 농가소득은 감소하고 있어 농업 분야의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경영계의 주장은 최저임금 제도를 폐지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반대하고 있다. 어떤 업종에서도 지금보다 임금이 낮아지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며,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최저임금법 도입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