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경북청유 선비문화 칠곡포럼`이 지난 5월 11일 칠곡문화원 3층 강당에서 개최됐다.
이번 `慶北靑儒 선비포럼`은 경상북도청년유도회(회장 김홍희)가 주최하고, 칠곡군청년유도회(회장 이우석)가 주관했으며, 경상북도와 칠곡군, 인천채씨 투암공파종회(회장 채종률)가 공동후원했다.
우선 정우락 경북대 교수가 `공자의 예술정신과 문학사상`이란 주제로, 구본욱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투암 채몽연·백포 채무 부자의 생애와 학업, 현창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각각 발표를 했다.
구본욱 교수는 "투암(投巖) 채몽연(蔡夢硯) 선생은 조선 중기 대구에서 태어나 한강(寒岡) 정구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한 유학자다. 그의 아들 백포 채무는 서사원·한강 선생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문과에 합격해 병조좌랑을 역임했다"고 소개했다.
구본욱 교수는 "채몽연·채무(蔡楙) 부자는 많은 저술을 했으나 1640년, 1663년 두 차례 화재로 하남정사가 불에 타 그가 저술한 시문과 서적이 모두 잿더미로 변해 소수의 시문만 전하고 있다. 그의 문집은 19세기에 이르러 아들 백포 채무의 문집과 함께 편집되는데, 당시 사미헌(四未軒) 장복추(1815~1900) 선생이 편집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1702년(숙종 28) 지방유림의 공의로 채몽연·채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소암서원(嘯巖書院)이 창건돼 두 선생의 위패를 모셨다. 1847년(헌종 13) 장내범(張乃範)을 추가 배향해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 훼철, 소암서원은 칠곡군 기산면 평복리로 이건돼 지금의 `소암서당(嘯巖書堂)`으로 유지되고 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사상사를 전공한 채억곤 역사학자는 `소암서원(嘯巖書院)이 품은 향기`라는 주제의 특별기고를 통해 낙동강 칠곡보 인근 산성(토성)이 관호산성이 아니라 `백포산성`이라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조명했다.
채억곤 사학자는 "백포 선생(1588~1670)의 성은 채(蔡)씨, 휘는 무(楙), 자는 자후(子後), 호는 귀은자(歸隱子)·백포(栢浦), 본관은 인천이다. 백포 선생은 서사원 정구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1612년(광해군 4) 향시인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됐으며, 그 후 성균관에 들어가 폭넓게 학문을 연마했다. 1633년에는 대과(大科)에도 급제해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로 기용됐다"고 백포 선생을 소개했다.
채억곤 사학자는 "백포 선생은 병조좌랑을 끝으로 관계에서 물러난 후 고향으로 돌아온 후, 칠곡군 약목면 관호리 낙동강변에 위치한 백포산(栢浦山)에 자주 올라 여러 학자들과 교유했다. 백포산 정상부에 위치한 백포산성의 경치가 사계절 무척 아름다워 이곳 고유의 지명인 `栢浦(백포)`를 선생의 호(號)로 삼았다. 그래서 선생의 본래 호인 `귀은자(歸隱子)`보다 ‘백포’로 더 많이 불리었고 이후 ‘백포 선생’으로 통하게 됐다"고 밝혔다.
백포산성 북동쪽 산기슭에는 능허대(凌虛臺)라는 넓고 평탄한 큰 바위가 하나 있다. 이곳에서 지역의 여러 선비들과 더불어 시도 읊고 함께 술잔도 기울였다. 이곳이 바로 백포 선생이 노년에 낙동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보며 인생을 즐긴 유식(遊息)의 장소였다.
채억곤 사학자는 자신의 저서 『칠곡의 역사』에서 낙동강 칠곡보 인근 `백포산성`의 유래와 명칭에 대해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백포산성에서 ‘백포’는 한자로 ‘栢浦’이다. 栢은 원래 ‘측백나무 백’ 자이고, 浦는 ‘개 포’ 자이다. 산성이 있는 이곳은 옛날부터 측백나무가 울창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측백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나무로 절벽이나 바위틈, 또는 척박하고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다. 특히 상큼하게 나는 독특한 향과 상록수인 측백나무는 조선 시대 성리학자의 기절(氣節)과도 잘 부합돼 예부터 성리학자들이 귀하게 여기는 나무였다.
또한 이 산성의 남서쪽 밑에는 오목하게 들어간 개(간석지의 일종)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와 함께 울창한 측백나무 숲이 어우러져 이 산성의 뒷산을 백포산(栢浦山)으로 지칭하게 됐고, 산성 밑 마을을 백포동(栢浦洞)으로 일컬어 왔다.
따라서 ‘백포’는 이미 지명으로 고유명사화한 지 오래이고, 줄곧 ‘백포산성’으로 불리어 왔다. 따라서 이 산성 이름을 역사가 짧은 ‘관호산성(觀湖山城)’ 보다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백포산성’으로 부르는 것이 더욱 친숙하고도 향토적인 이름으로 판단된다. 나아가 전통문화의 수호 차원에서도 부합한다.
백포산성은 삼국시대인 4세기경 성산가야의 연맹체인 변군미국에서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성(城)의 축조는 보통 그 지역의 방어에 주목적을 두고 있는 만큼 이 성이 낙동강 서안(西岸)에 위치해 변군미국과 성산가야의 지역 방어와 합치되기 때문이다.
또 백포산성과 인접한 성주군 월항면과 기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봉화산 정상부에는 성산가야 시대에 축조된 봉화산성(烽火山城)이 있다. 이 성은 산 정상에 쌓은 토석성의 산성으로, 토성(土城)인 백포산성과 축성 방법에 있어서 유사성이 많다는 점이다.
이성숙 기자 97460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