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스승의날이면 칠곡군에 위치한 북삼초등학교 3학년 때 저의 담임 선생님 김창상 은사를 잊지 못해 저의 동기와 함께 묘소를 참배하고 있습니다. 김창상 선생님께서는 선비 같은 교육자로서 호의호식보다는 어려운 제자들을 자식처럼 보살펴 주셔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미덕을 되살린 스승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집에서 1.2km 정도 떨어진 선생님의 하숙방을 매번 선생님께서 정해 주신 일정한 시간에 찾아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추운 겨울에는 방바닥에 이불을 깔아 두어 따뜻하게 해두었다가 제가 도착하면 얼어 있던 저의 손이 따뜻해지도록 이불 밑에 넣으라고 하신 기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또 돈이 없어서 교과서를 마련하지 못했는데 학급 친구들이 모두 하교한 후 공부를 해야 하니 교과서를 빌려줄 사람이 없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이에 선생님은 교사용 교과서를 주셨고, 저는 선생님으로부터 송충이를 잡아 온 공로상으로 받은 여러 권의 공책에 전 과목을 필사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참으로 큰 힘과 용기를 주신 선생님의 자상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특히 어려운 환경의 제자들에게 늘 "잘될 것이다". "훌륭하다" 등의 좋은 말씀으로 희망을 주시고 기를 살려 주었을 뿐 아니라 꿈을 잃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긍정적인 기대나 관심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가 당시 저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사랑한 피그말리온에 대한 신화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살아 있는 어떤 여자보다 더 아름다웠던 조각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여신 아프로디테는 피그말리온의 이러한 사랑에 감동해 그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합니다.
개인에게도 적용되는 피그말리온 효과는 일이 잘 풀릴 것으로 기대하면 잘 풀리고, 안 풀릴 것으로 기대하면 안 풀리는 경우를 모두 포괄하는 자기충족적 예언과 같은 말입니다. 반대어 스티그마 효과(Stigma effect)는 한번 나쁜 사람으로 찍히면 스스로 나쁜 행동을 하게 되는 낙인 효과와 같은 말입니다. 낙인 효과에서 `낙인(烙印)`은 쇠붙이로 만들어 불에 달구어(烙) 찍는 도장(印)을 이르며. 목재나 기구·가축 따위에 주로 찍고, 옛날에는 형벌로 죄인의 몸에 찍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끔찍합니까? 한 스승이 여러 제자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으니, 예부터 제자들이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해 스승의 지위를 임금이나 아버지에게 비교한 것은 가히 공감이 갑니다.
지금 시대에 초등학교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저에게 공책과 교과서를 아무 대가 없이 주신 김창상 선생님 같은 은사를 찾아보기가 힘들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저의 집안과 저에 대해 관심을 가질 조건이 하나도 없었는데 오직 제자에 대한 사랑으로 위로와 용기를 주신 것이 오늘의 저를 만든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대구에 있는 모 중학교 야간부로 입학하려고 했으나 당시 입학금(의무금)이 없어 저는 막막했었습니다. 그런데 김창상 선생님께서 소개해 주신 이 학교 아시는 분을 통해 무료로 학교에 다닐 기회를 얻었습니다. 제가 저녁 수업 후 잔업 1시간을 하는 조건이었습니다.
경상북도와 대구시가 분리되던 1981년 선생님은 칠곡군 지천면 신동에 있는 미감아(未感兒)학교에 근무하셨습니다. 저는 대구로 가시길 권했지만, 교육자는 어디를 가도 가르치는 것은 똑같다며 남들이 기피하는 그 학교에 남아 있겠다는 소신도 보여 주셨습니다. 결국 여러분의 권유와 함께 교육청에서도 앞으로 큰일을 하실 선생님을 알아본 결과 대구시로 전근을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80년부터는 하늘 같은 스승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려고 식사 대접을 하는 등 기업인이 된 제가 선생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사제지간 친구 이상으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면서 돈독한 관계를 이어 왔습니다.
선생님은 부잣집 아이든, 가난한 집 아이든 그 학생의 처한 형편과 상관없이 똑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김창상 선생님이야말로 노동자로서 전문직 교사가 아니라 성직(聖職)으로서 어버이 같은 스승이기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팔순을 앞둔 저는 스승의 따뜻하고 진실된 마음이 백지 같았던 어릴 적 저에게 그대로 반영되어 평생을 되새기면서 그 마음 본받아 늘 노력하는 제자가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