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에 살았던 `국민화가` 이중섭(1916∼1956)의 그림 `시인 구상의 가족`이 지난 4월 24일 K옥션 경매로 나와 시작가 14억원에 낙찰됐다. 이 작품은 1955년 이중섭이 시인 구상(1919∼2004)에게 준 이후 70년만이다. 이중섭은 원래 대단한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미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한 그는 문화학원에서 처음 만난 야마모토 마사코와 훗날 결혼하게 된다. 이중섭은 마사코에게 ‘남덕(南德)`이란 한국식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남쪽에서 온 덕이 많은 이’라는 의미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10월 원산이 연합군에 수복됐으나, 12월 중공군 참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이중섭은 아내·두 아들과 함께 해군 수송함(LST)을 타고 월남했다. 1952년 이남덕(마사코)은 부친의 부음을 듣고,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에 갔다. 가족 간의 생이별 속에서 이중섭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화폭에 담았다. 6·25전쟁이 끝나자 이중섭은 그림을 그려 돈을 번 후 일본에 가 있는 가족과 만나리라는 부푼 꿈에 가득 차 있었다. 1954년 한 해 동안 그의 유명한 작품들이 대부분 그려졌다고 한다. 이중섭은 6·25전쟁과 휴전이 지나 대구에서 잠시 생활한 것을 알려져 있다. 주로 향촌동과 북성로에서 예술인들과 친교를 가졌다고 한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2명의 친구가 구상 시인과 정점식 화가였다. 정점식은 재직 중인 계성고 미술실을 월남한 이중섭에게 한 달간 빌려주어 1955년 4월 대구미공보원에서 개인전을 열도록 도와 주었다. 이중섭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전시회가 열렸지만 판매된 그림값을 회수하지 못해 더 곤란한 처지가 됐다. 이로써 이중섭은 극단적인 절망에 빠져버렸고, 급기야 정신적으로 미쳐갔다. 그후 이중섭은 칠곡군 왜관읍에 살던 친구 구상 시인의 집에 얼마간 머물렀다. 이 시절 그린 그림이 바로 `시인 구상의 가족`이다. 구상이 자식에게 세발자전거를 사주던 날의 모습을 이중섭(그림 맨오른쪽)은 자신을 포함해 그림으로 남겼다. 구상과 부인이 웃고 있으며 이중섭도 오른손을 내밀며 미소를 머금은 화목한 모습이다. 배경은 낙동강이 버드나무와 함께 그려져 있다. 종이 위에 연필로 밑그림을 스케치한 후 옅은 유채물감으로 채색한 천진한 표정을 담고 있다. 이 그림에서 가족에 대한 이중섭의 애틋한 그리움을 엿볼 수 있다. 1955년 12월경 이중섭은 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그렇게도 자주 보내던 편지를 아예 끊었다. 그는 아내와의 단절로 극도의 절망감에 시달리면서 `죽음에 이르는 병`(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이 저서에서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라 했다)을 극복하지 못하고, 1956년 9월 적십자병원에서 무연고자로 마흔 살의 생을 마감했다. 이중섭은 편지에서 아내를 “나의 생명”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이중섭이 아내가 너무 보고 싶어 그린 `부부`란 작품은 재회를 꿈꾸며 아내를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담뱃갑 속 은박지에 긁어 그린 은지화(銀紙畵)다. 그에게 아내는 영감의 원천이자, 솔메이트(영혼의 동반자)였다. 1954년 11월 이중섭은 아내에게 보낸 연서(戀書)에서 “이 세상에 나만큼 아내를 사랑하고 미친 듯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끝도 없이 상냥한 나의 아름다운 천사여!”라고 읊었다. 칠곡군은 올해 타계 20주년을 맞는 구상 시인과 이중섭 화가가 우정을 나눴던 옛 왜관 골목길을 문화·예술의 거리로 조성하고 있다. 구상 시인과 이중섭 화가의 우정은 두 사람의 유학 시절 일본에서 시작돼 원산을 거쳐 왜관까지 이어졌다. 이중섭은 ‘시인 구상네 가족’ 등 구상 시인과 관련된 작품을 남겼고, 구상 시인은 임종 직전 이중섭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고 한다. `구상·중섭 우정의 거리`는 왜관읍 구상문학관과 왜관초교를 중심으로 삼성아파트와 순심여중·고 사이 도로를 순환하는 폭 4~7m·길이 822m 규모다. 구상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인 구상문학관을 중심으로 ‘구상·이중섭 우정의 마당’, ‘구상과 이중섭의 이야길’, ‘골목길에서 피어나는 우정’, ‘푸른 우정의 거리’ 등이 조성된다. 여기에는 두 예술가를 기억할 담장 예술과 조형물, 포토존, 경관조명 등을 설치한다. 4개 구간에 각각의 테마를 입히고 스토리텔링화해 특화된 명품거리는 26억3천만의 사업비를 들여 올해 말 준공될 예정이다.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