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지역에서 바르게살기운동을 펼치면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놓고 깊이 생각해 보았다.
`바르다`는 사전적으로 "말이나 행동 따위가 사회적인 규범이나 사리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부합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즉 언행일치(言行一致)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생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가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따라서 언행일치하는 `바르게 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이인편(里仁篇)에서 "옛사람이 함부로 말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실행이 미치지 못할까 부끄러워서였다(古者, 言之不出 恥躬之不逮)"라고 지적했다. 言之不出(언지불출)은 말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벼이 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언행일치가 되는 군자(君子)는 자기가 한 말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까 말을 아낀다. 바르게 사는 군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 자신이 실천할 수 없는 말을 할 때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논어 위정편 13장에는 "자공이 군자에 관해 묻자 공자께서 `자신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먼저 실천하고 난 이후에야 그것을 말해야 한다`고 답했다(子貢問君子 子曰 先行其言 而後從之)"라는 구절이 나온다. 자신이 말한 대로 작은 일부터 지키지 못하면 후에 큰일까지 행동이 말에서 벗어난다.
이처럼 공자는 말보다 행동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실천을 수반하지 않은 말을 가장 경계했던 것이다. 공자는 먼저 실천한 뒤에 말하라고 했다. 말과 행동에서 행동이 먼저다. 자공(子貢)은 공자가 아끼는 제자이지만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말이 많으면 언행일치가 어렵다. 많은 말을 실천에 다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군자의 말에는 위엄이 있어야 한다. 잘못 말하면 권위를 잃는다.
공자는 논어 곳곳에서 말을 삼가고 먼저 행동할 것을 역설한다. 논어 학이편에서는 "일에는 민첩하되 말에는 삼가라(敏於事 愼於言)"고 권유한다.
공자는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이야말로 바르게 사는 군자로 보았다. 군자는 진심(眞心)과 신심(信心)을 성실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만큼 부끄러울 것이 없고, 언제 어디서나 떳떳하다. 말만 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 말은 아무런 의미와 실속이 없는 허언(虛言)이 되고 만다. 말이 앞서는 소인(小人)은 거짓말이 드러날까 두려워 또다른 더 큰 거짓말을 계속함으로써 그것을 합리화하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소인이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그가 어떠한 행동을 해도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군자처럼 바르게 사는 것과 착하게 사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착하다`는 말은 마음이 곱고 상냥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착하게 산다는 것과 바르게 산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저 남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착하게 보인다. 잘못된 것 같은데도 그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착하게 살아가는 것은 상대와 현실에 순응하기에 쉽게 살아가는 삶일 수 있다. 반면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며 바르게 사는 사람은 틀렸으면 틀렸다고 지적한 후 틀린 것을 바로잡기 위해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남들의 미움을 받아 가면서 바르게 살아가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상대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착하게 사는 것이 어쩌면 훨씬 쉽게 사는 삶일 수 있다. 남들의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 타인의 시선에 맞추는 착한 삶은 `좋은 게 좋다는 식`이어서 발전이 없다. 그러나 진리와 정의에 입각해 자신의 주관을 버리지 않고 올바르게 사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의 진실이 입증되고, 전체 사회가 정의롭게 변해가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을 확인할 것이다.
물론 착하게 살아가는 것이 결코 나쁜 삶이라는 말이 아니다. 남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선(善)하게 살아가는 동시에 보다 나은 국가나 사회, 온 인류를 위한 공동선(共同善)을 위해 바르고 정의롭게 살아가자는 말이다.
남병환 바르게살기운동 칠곡군협의회 직전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