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주하는 이 강은 어제의 그 강이 아니다./내일 맞이할 강은 오늘의 이 강이 아니다./우리는 날마다 새 강과 새 사람을 만나면서/옛 강과 옛사람을 만나는 착각을 한다." 구상 시인의 연작시 강24 `그리스도 폴의 강` 전문이다.
구상 시인의 묘가 낙동강 칠곡보 생태공원이 보이는 천주교 창마묘지로 이장, 부인과 함께 합장됐다. 구상은 강을 소재로 연작시를 발표해 `강(江)의 시인`으로 통한다. 강은 그가 삶과 문학, 생의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던 구도자적 정신세계를 담고 있는 시심(詩心)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구상의 딸 구자명 소설가는 "아버지께서 강나루(낙동강)에 묶인 나룻배 뱃전에 올라 우두커니 강 맞은편 마을을 바라보실 때도 있었고, 때로는 뱃전에 쪼그리고 앉아 낚싯대로 고기를 낚아 올리듯 그러한 자세를 취할 때도 있었다. 고기를 낚아 올리는 낚시꾼의 모습이었는데 아마 고기 대신 아버지께선 시어(詩語)를 낚고 계실 것으로 생각했다. 아버지의 시는 강물이 흘러가듯 삶과 죽음의 경지를 초월해 영원 속으로 흐르는 불멸의 시"라고 회상했다.
구상이 1974년 폐질환 치료를 위해 낙동강 변 왜관에서 서울 여의도 한강 변으로 이사한 것은 왜관 구상문학관 관수재의 관수(觀水) 의미에 충실하기 위해 강변을 떠나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30년간 한강을 보면서 `강`을 소재로 삶이 흐르는 죽음 같은 연작시를 이어갔다.
설창수 시인은 구상 시인이 살던 집(현재 구상문학관) 사랑채 이름을 `觀水齋(관수재)`로 정해 주었다. 진주 촉석루(矗石樓) 남장대(南將臺) 현판을 쓴 유명 서예가 정명수 선생은 `觀水洗心(관수세심)`이란 제의(題意)를 써 보내왔다고 한다. 관수세심 관화미심(觀水洗心 觀花美心)은 `물(강)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의미다.
구상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 11층에도 `觀水齋`라는 조그만 서각 편액을 걸었다고 한다. 그는 퍼내고 또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원천(源泉)인 강에서 영혼까지 씻어 내리는 생명물 같은 시어(詩語)를 건져 올렸으리라.
구상은 1919년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태어났다. 4살 때인 1923년 베네딕도 수도원의 교육사업을 위촉받은 아버지를 따라 함경남도 문천군 덕원면 어운리(함남 원산 근처)로 이주해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8년 원산 성 베네딕도 수도원 부설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일본 니혼대 종교학과에서 불교를 공부했다.
그는 1945년 형 구대준 신부가 주임 신부로 있던 흥남천주교회에서 운영하던 대건의원 서영옥 의사와 결혼했다. 그후 경제적 문제와 악화된 병세로 수차례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부인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이를 극복해 나갔다.
1946년 원산 문학가동맹이 펴낸 해방기념시집 『응향』에 실린 세 편의 작품으로 필화(筆禍)를 겪었다. 북한으로부터 `예술지상주의적·퇴폐주의적·악마주의적·부르주아적·반인민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1947년 2월 원산을 탈출해 남하했다.
6·25전쟁 당시 종군작가로 활동한 바 있고, 1953년 부인이 순심의원을 개업한 칠곡군 왜관으로 이사했다. 1953년 영남일보 주필과 1955년 매일신문 상임고문 등을 맡아 언론에 몸담기도 했다. 1952년부터 1999년까지 효성여대·서울대·서강대 등에서 교수(강사)를 맡아 문학창작과 후학 양성의 길을 걸었다. 향년 86세가 되던 2004년 5월 폐질환으로 영면할 때까지 쓴 연작시 `강` 65편과 왜관수도원 농장 등을 배경으로 하는 `밭일기` 101편이 발표됐다.
고 구상 시인은 경기도 안성시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했다가 타계 20주기를 앞두고 지난해 11월 본향 같은 칠곡군 석적읍 천주교 창마묘지로 이장했다.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이 관리하는 이곳 공원묘지는 신부를 비롯해 수도자와 천주교인을 안치하고 있다.
강은 구상 시의 원천이자 젖줄이다. 구상 시(詩) 행간에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강물이 흐르고 있다. 칠곡군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올해 타계 20주년을 맞는 구상 시인과 이중섭 화가가 우정을 나눴던 옛 왜관 골목길을 문화·예술의 거리로 조성하고 있다.
구상 시인과 이중섭 화가의 우정은 두 사람의 유학 시절 일본에서 시작돼 원산을 거쳐 왜관까지 이어졌다. 이중섭은 ‘시인 구상네 가족’ 등 구상 시인과 관련된 작품을 남겼고, 구상 시인은 임종 직전 이중섭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고 한다.
`구상·중섭 우정의 거리`는 왜관읍 구상문학관과 왜관초교를 중심으로 삼성아파트와 순심여중·고 사이 도로를 순환하는 폭 4~7m·길이 822m 규모다.
구상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인 구상문학관을 중심으로 ‘구상·이중섭 우정의 마당’, ‘구상과 이중섭의 이야길’, ‘골목길에서 피어나는 우정’, ‘푸른 우정의 거리’ 등이 조성된다. 여기에는 두 예술가를 기억할 담장 예술과 조형물, 포토존, 경관조명 등을 설치한다.
4개 구간에 각각의 테마를 입히고 스토리텔링화해 특화된 명품거리는 26억3천만의 사업비를 들여 올해 말 준공될 예정이다.
구상 시인의 딸인 구자명 소설가는 "낙동강과 한강은 아버지 삶의 두 축인 만큼 왜관 우정의 거리에 이어 서울 여의동로가 명예도로로 지정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 길에서 존재론적 시를 쓴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만이 아니라 멀고 깊게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