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스크는 꼭 입어야 하는 옷 같아서 마스크를 벗으면 벌거벗은 기분이 들어요." "공들여 화장할 필요가 없고, 회사에서 억지 미소 짓지 않아도 되니 마스크를 계속 하겠습니다."
실내 마스크의 착용 의무가 해제됐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의 얘기다.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30일부터 의료시설, 감염취약시설, 대중교통 등 일부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실내 시설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를 권고로 전환했다. 2020년 10월 마스크 착용 의무가 도입된 지 2년3개월여 만이다.
그러나 하루 종일 마스크를 착용해 답답해하거나 빠른 동작 시 숨이 막혀 벗기를 원했던 사람들 상당수가 쉽사리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마스크를 쓰면 미세먼지 방지 효과가 있다. 마스크가 호흡기 건강을 지키는 데 가장 간편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지난 2월 1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벌써 마스크를 벗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지난 2년여 동안 마스크가 한 몸처럼 익숙해져 버린 한국과 일본에서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이유를 집중 조명했다. NYT는 “한국인과 일본인 일부는 마스크를 쓰면 화장을 하거나 미소를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점으로 여긴다”고 보도했다.
인간은 눈보다 입에서 표정을 쉽게 지을 수 있다고 한다. 조금 불편한 자리라 해도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를 지으면 예의를 차리면서도 속내를 감출 수 있다. 그러나 마스크를 쓰면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적당한 높이의 목소리만 유지하면 사람들을 대면하는 상황을 부담 없이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마스크는 ‘얼굴을 아름답게 유지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덜어준 고마운 존재였다. 마스크 착용 시 여성은 화장에서, 남성은 면도에서 일부나마 해방됐던 만큼 이제는 오히려 맨 얼굴을 드러내는 걸 불편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NYT는 "독감이나 계절성 알레르기 같은 호흡기 질환을 피하려는 것도 계속 마스크를 쓰는 이유 중 하나"라고 전했다. NYT는 아시아인들은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걸 중시하는 만큼 누가 면역력이 약한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공장소 등에서 마스크 착용으로 그런 이들을 보호한다는 좋은 에티켓과도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마기꾼`은 선뜻 마스크를 벗기 어려울 것이다. `마기꾼`은 `마스크`와 `사기꾼`의 합성어로 마스크 쓸 때 더 예뻐 보인다는 의미다. 영어로 ‘마스크 피싱(maskfishing)’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마스크 쓴 사람에게 낚여 속았다는 경우를 말한다.
이처럼 마스크가 외모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보니 미국에서 마스크가 호감도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흥미로운 실험을 하기도 했다. 동일 인물의 마스크 착용 전후 사진을 실험자에게 보여주고 호감도 조사를 한 결과 마스크 착용 후를 더 매력 있게 평가했다. `마기꾼 효과`가 실제하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인간의 뇌는 이미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부족한 정보를 추측한다고 한다. 얼굴의 절반을 마스크로 가리면 시각적으로 눈 주변부가 집중되고, 그 정보를 토대로 가려진 부분을 각자의 이상향으로 상상하기 때문에 실제 모습보다 마스크 착용 후를 더 매력적으로 보는 착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서울대 곽금주 심리학과 교수는 “선으로 그린 원이나 삼각형을 바라볼 때 우리는 보통 좋은 도형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지 의식적으로 울퉁불퉁한 선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며 “마스크를 쓴 사람을 볼 때도 그 안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보다는 TV 등에서 마주해왔던 완벽한 이미지를 자동으로 대입해보기 쉽다”고 말했다. 상대가 마스크를 벗었을 때 느껴지는 실망감은 단순히 외모 때문이라기보다 이전부터 이미 보아 왔던 이미지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안면 특성상 눈보다는 하관(광대뼈를 중심으로 얼굴의 아래쪽 턱 부분)이 돌출해 있다. 마스크를 쓰면 더 예뻐 보이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마스크 하나로 팔자(八字) 주름과 하관 주름을 가릴 수 있어 중년 여성들에게 마스크는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마기꾼`의 반대인 `마해자`(마스크+피해자)는 마스크가 잘생긴 얼굴을 가려 오히려 피해를 본다는 의미의 신조어다. 남들이 나를 ‘마기꾼’으로 볼지, ‘마해자’로 볼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인터넷상에서는 마기꾼 판별용 스마트폰 앱까지 등장해 관심을 끌고 있다. 실내 마스크 착용이 해제된 지난 30일 `마해자 자유의 날`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반대로 이날을 ‘마기꾼 심판의 날’로 풍자하기도 했다.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