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다. 중국의 문물과 사상을 우러러 사모하는 모화사상(慕華思想)과 주체성 없이 세력이 강한 나라나 사람을 받들어 섬기는 사대사상(事大思想)이 뿌리깊이 박혀 있다. 지금도 약소국가에 대한 강대국 지배와 약자와 지방의 강한 중앙집권 체제에 익숙해져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인의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를 목표로 하는 일본 군국주의의 중앙집권적 식민지배체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국민은 이로써 뼛속까지 타율적이어서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자신을 지배해 나가는 자율적 통치기반이 형성되지 못했던 것이다. 때문에 중앙집권을 하기가 쉬운 국가였다. 조선시대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노예 신분으로서 아직도 노예근성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누구에게 종속되어 책임지기를 싫어한다. 물론 왕과 권력자의 중앙집권에 반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왔다. 양반과 상놈, 지배자와 피지배자, 중앙집권과 지방지배 등으로 분명하게 구분돼 왔다. 이같은 뿌리깊은 노예근성을 바탕으로 왕과 대통령, 중앙집권세력 등이 지방으로 권력을 나눠주는 분권을 철저히 막아온 덕분에 지방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중앙은 돈과 모든 것이 넘쳐난다. 이를테면 지방(비수도권)은 `영양실조`로 죽어가는데 중앙(서울·수도권)은 비만으로 병들어가고 있다.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0.2%가, 100대 기업 본사의 95%, 전국 20대 대학의 80%, 의료기관의 51%가 각각 몰려 있는 우리나라 같은 국가는 세계적으로 찾을 수 없다. ◆자주 재정권 없는 `무늬만 주민자치` `권력과 사랑은 서로 나눠 가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중앙은 지금까지 누려오던 돈과 권력, 온갖 혜택을 지방으로 나눠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1991년 지방의회선거와 1995년 동시 지방선거로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가 열렸다. 지방자치는 지방이 스스로 그 지역과 지역민을 다스리는 주민자치를 말한다. 그러나 군수와 시장, 도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을 주민 투표로 뽑기는 하는데 자주(自主) 재정권과 자주 입법권을 보장 받지 못하는 현재의 지방자치는 `무늬만 주민자치`라는 지적이 많다. 지방자치단체의 자주 재정권이 확보되지 않으면 지방분권 실현이 멀리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세와 지방세 8대 2의 비율을 6대 4까지 확대하고 지역간 세입 불균형을 조정하는 재정 조정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방정부의 재정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중앙정부에 예산을 지나치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세입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의원들은 별다른 관심이 없다. 특히 중앙정부는 보조금과 교부세 등을 통해 지방정부(지방자치단체)를 통제하고 있어 지방자치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지방의 재정자립도는 1992년 69.6%에서 2015년 45.1%로 계속 떨어졌다. 지방분권 실현 방안 중 하나로 국세인 부동산 양도소득세를 지방세로 이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례로 서울에 주민등록 돼 있는 시민이 소유하고 있던 경북도 칠곡군 땅을 팔면 양도소득세는 서울시에 내지만 법률 개정으로 경북도에 양도소득세를 납부해 도세로 운영하고, 칠곡군에 배분해야 수도권-비수도권 간 세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헌법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 명시해야 나아가 진정한 지방자치는 각 지자체의 조례가 지역실정과 주민들의 요구에 맞게 제정할 수 있는 자주 입법권에 따른 세율조정 등이 선행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지방의 실질적인 자치와 분권을 이뤄 그야말로 국토의 균형발전을 꾀하지 않으면 국가적 위기는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중앙에 집중된 권력과 돈을 지방으로 나눠(분권·분산) 주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지방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헌법에 명시하는 개헌을 서둘러야 한다. 오는 3월 9일 실시되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권력 나눠먹기와 영구집권을 위한 내각제 개헌은 여기저기서 회자되고 있는데 `지방분권 국가’를 헌법에 명시하겠다는 등 획기적인 지방살리기는 대선공약으로 찾아볼 수 없다. 전국지방분권협의회와 경남신문 등 전국 9개 지역신문으로 구성된 한국지방신문협회는 지난달 27일 헌법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이다’라고 명시하는 등 지방분권개헌 대선공약 촉구 결의대회를 가졌다. 대한민국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제3항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이다`를 넣자는 것이다. 또한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주민 자치권을 가짐을 기본권에 명시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격상하는 동시에 지방정부의 조직과 운영에 대해 자치권 보장 ▶‘자치법률’과 ‘국가법률’로 이원화된 법률을 통한 자치입법권 강화 등을 촉구했다. ◆일제가 조선을 쉽게 지배하기 위한 중앙집권 체제가 오늘날까지 내려와 권선필 목원대학교 교수는 오늘날 계속되는 중앙집권 체제에 대해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나라를 수월하게 지배하기 위해 바꾼 문화가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권 교수는 “조선시대에는 지방의 힘이 중앙보다 더 컸을 뿐만 아니라 지방 세력의 힘이 강해 여러 가지 폐해도 있었다”며 “중앙에서 임명한 관리가 지방에 처음 가면 면신례라 불리는 신고식을 해야 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힘이 강했던 지방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마을헌법을 만들고 현재의 주민자치위원회 같은 기관을 만들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중앙의 권력을 지방으로 준다는 의미로 `분권`이란 말을 사용한다. 이같은 분권이 지방으로 갔을 때 각 지역이 스스로 하는 것이 지방자치고 주민자치다. 지역공동체의 최소 단위인 동·리(洞·里)가 없는 읍·면·동은 있을 수 없고, 읍·면·동 없는 시·군·구는 생각할 수 없으며, 시·군·구(기초자치단체) 없는 시·도(광역자치단체)는 물론 전국 17개 시·도 없는 대한민국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우월감을 갖는 중앙정부는 지방은 보이지 않고 무시하게 된다. ◆지방자치는 소국과민(小國寡民)과 상통 지방자치(자치분권)는 소국과민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소국과민(小國寡民)은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이란 뜻으로, 노자(老子)가 그린 이상사회(理想社會), 이상국가를 말한다. 노자는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생활은 풍요롭고 편리해지지만 인간의 노동을 감소시키고 게으름과 낭비, 생명의 쇠퇴를 가져온다며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 같은 이상사회·이상국가를 소국과민에서 찾았다. 소박하고 작은 소국과민(小國寡民)의 공동체는 최소한의 마을 단위에서 넓게는 지금의 지방자치단체까지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 주민 스스로 투표에 의해 이장(里長)을 뽑고, 이장은 주민들이 원하는 요구사항과 뜻을 받들어 소수에 불과한 주민들과 함께 자치규약에 따라 마을을 민주적으로 운영해 나간다. 이장은 마을에 중요한 안건이나 의결사항이 있으면 미리 공지해 마을 전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이를 결정하고 가결한다. 이같은 마을자치는 고대 그리스 아크로폴리스(Acropolis)에서 꽃피운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와 다를 바 없다. 미국 독립 혁명의 기반이 됐던 `Town meeting`(마을회의) 및 프랑스 대혁명 당시 파리 민중의 자치조직이었던 `Comite section`(구역 위원회)가 비슷한 참여민주주의다. 조선시대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든 향촌의 자치 규약인 `향약`(鄕約), 마을 주민들이 농사일 등을 공동으로 하기 위해 부락 단위로 만든 조직인 `두레`와 계(契) 등은 주민자치 조직의 근간이 됐다. 흔히들 지방자치를 민중의 의사를 직접 반영하고 민중의 지지를 받는 `풀뿌리 민주주의`로 명명하기도 한다. 풀뿌리의 의미는 김수영 시인(1921~1968)의 대표 시 `풀`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시 마지막 연에 `풀뿌리` 시어가 나온다. 혹자는 ‘풀’을 가난하고 억눌려 사는 민중의 상징이고, ‘바람’은 민중을 억누르는 지배세력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처음엔 바람에 의해 풀이 누웠다가 일어난다. 그러나 나중엔 바람보다 먼저 풀이 누웠다가 먼저 일어나는 풀(민중)의 주체적 모습(삶)을 묘사했다. 첫 연에서 ‘풀’이 눕고 울다가 또 눕는 것은 흐린 날 비를 몰아오는 ‘바람’ 때문이라고 했다. 어두운 현실에서 억눌리며 사는 민중의 삶을 ‘풀’에다 비유한 것이다. 둘째 연에선 ‘풀’이 ‘바람’보다 먼저 눕고 울고 일어나는 장면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지배세력(바람)에 눌려 사는 민중(풀)의 굴욕적인 삶을 엿볼 수 있다. 셋째 연에서는 반전이 일어난다. `풀`(민중)의 반란이다. 날은 흐리고 ‘풀’이 눕고 일어나고 웃고 우는 것이 `바람`과는 무관하게 엇갈린 모순을 보이고 있다. ‘풀’이 발밑까지 눕고, 마지막으로 풀뿌리 채 눕는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가난하고 억눌린 민중이 발밑, 아니 보이지 않는 뿌리(근원) 깊숙이 정신까지 유린 당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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