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년 된 광주이씨 귀암종택(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625번지)이 최근 작은집 사이에 옛 담을 헐고 새 흙돌담으로 쌓는 공사를 한 가운데 선비들이 즐겨 심은 회화나무와 배롱나무, 향나무가 수백년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귀암공 종택은 1670년(현종 11년) 이원정이 양주목사 재임 때 왜관읍 석전리 돌밭에 신기제택을 세워 매원에서 귀바우로 이거했다고 전한다. 현재의 사랑채와 정침(正寢·안채)은 몇 차례 중수(重修)를 거쳐 1937년 중건(重建)을 한 건물이다. 종택 내 불천위(不遷位) 사당(祠堂)인 숭문묘(崇文廟) 건물은 2010년 중건했다.
귀암(歸巖) 이원정(李元禎·1622∼80)은 효종 3년(1652년) 문과에 합격해 1677년(숙종 3년) 대사간(大司諫), 대사헌(大司憲), 성균관 대사성(大司成), 형조판서(刑曹判書), 1679년(숙종 5년) 이조판서(吏曹判書) 등 관직을 두루 지냈다. 경상도 사람으로 드물게 이조판서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귀암종택 사당 숭문묘에는 불천위 이원정 위패와 4대조를 합해 5위가 모셔져 있다.
이 집안은 칠곡군 지천면 신리 웃갓 석담 이윤우 선생으로부터 시작해 석전리 광주이씨 4대 한림(翰林)집안으로 유명하다.
귀암종택 입구에서 대문채와 사랑채, 정침, 불천위 사당이 고풍스럽게 들어서 있다. 종택 서편에 위치한 농암정사(聾巖精舍)는 귀암공의 8대 주손인 상석(相奭·호 농암·1835~1921) 선생께서 일제의 창씨개명과 삭발령을 거부한 채 은거한 곳이다. 특이한 점은 건물구조가 태극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농암공이 나라 잃은 시국에 나라를 걱정하는 심사(心思)를 태극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 태극형 건물은 학계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귀암종택에 살고 있는 이필주(李弼柱·78) 귀암 13대 종손은 "종택 마당 비석에 아로새겨 놓은 `尙門崇禮`(상문숭례)를 늘 보면서 문중을 높여 소중히 여기고 예(禮)를 그대로 지켜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편리한 대로 고쳐서 예를 지키는 것은 예가 아니다"고 말했다.
귀암종택 안에는 회화나무와 배롱나무(백일홍), 향나무가 350여년 인고의 세월을 지키며 서 있다. 이 고목 3그루는 2009년 9월 경상북도 보호수로 지정됐다. 대나무 숲도 종택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모두 선비들이 좋아한 나무로 알려져 있다.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일편단심 배롱나무
배롱나무(백일홍)는 예로부터 선비의 청렴함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즉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한 번 성한 것이 얼마 못가서 반드시 쇠하여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고 했는데 백일 동안 피어 있는 백일홍이 있으니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이 아닌가!
배롱나무는 흔히 백일홍이라 불리우며, 나라꽃 무궁화와 함께 여름을 대표하는 꽃이기도 하다. 사실 꽃 한 송이가 백일 동안 피어있지는 않고 열흘간 피었다가 진다. 하지만 피고 지기를 다함이 없는 무궁화(無窮花)처럼 한 가지에 매달린 수백 개의 꽃이 하나씩 피었다가 지기를 반복하면서 마치 백일 내내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개화기간이 길어 영원한 생명을 염원하는 의미로 무덤가에 많이 심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조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成三問)은 배롱나무를 사랑해 시 ‘백일홍’을 남겼다. "지난 저녁 꽃 한송이 지고, 오늘 아침 꽃 한 송이 피어 서로 백일을 바라보니, 너를 대하여 좋게 한 잔 하리라”(昨夕一花衰 今朝一花開 相看一百日 對爾好衡盃).
배롱나무의 붉은 꽃은 성삼문의 단종을 향한 변하지 않는 일편단심(一片丹心)이었다. 성삼문은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게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아 능지처참(陵遲處斬)을 당했다. 성삼문의 무덤 앞에는 후손이 심은 배롱나무가 있다.
우리 조상은 배롱나무를 서원이나 정자 주변, 사찰 정원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100일 동안 끊임없이 피고 지는 배롱나무꽃처럼 줄기차게 학문을 닦고 정진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붉은 꽃처럼 처음 먹은 뜻을 쉽게 접지 말라는 경계의 가르침도 있다. 배롱나무 껍질은 아주 매끈하여 마치 껍질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겉과 속이 같은 표리일체(表裏一體)와 청념의 선비 기질이 잘 나타나 있다.
배롱나무 꽃은 질 때도 제 색깔로 화려하게 진다. 기세등등하게 색깔을 내며 피를 토하듯 우르르 떨어진다.
하나밖에 없는 주군(主君)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떳떳하게 생을 마감한 성삼문 같은 충신을 위해 오늘도 백일홍과 무궁화는 피고 지기를 계속한다.
▶향나무···마음의 정화를 통한 조상과 끊임없는 소통
향교나 서원, 오래된 한옥을 지키고 있는 유구한 향나무를 마주하면 선비의 지조와 향기가 느껴진다. 선비들이 조상의 사당 앞이나 자신이 거처하는 곳에 향나무를 심은 것은 마음의 정화를 통한 조상과 자신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불천위 이원정 위패와 4대조를 합해 5위가 모셔져 있는 귀암종택 사당 숭문묘(崇文廟) 바로 앞에는 배롱나무와 향나무가 있다. 숭문묘(崇文廟)는 학문을 숭상하는 사당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필주 종손은 불천위를 모시면서 향나무를 통해 조상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김도훈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는 "향은 절을 비롯한 종교시설, 궁궐이나 종묘 같은 거룩한 의식이 행해지던 곳, 국립현충원 같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기리는 곳 등에서 예나 지금이나 정갈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귀하게 사용된다. 참으로 우리의 정신을 정갈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 왔던 것 같다. 그런 향의 원료가 된 향나무는 고귀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회화나무···`선비나무` `학자나무`
회화나무는 학식이 높은 선비 집안에서만 키울 수 있어 `선비나무` 또는 `학자나무`로 불렀다고 한다. 얼마나 기품이 있고 멋이 있으면 나무에게 선비라는 호칭을 해주었을까?
외형이 느티나무와 비슷한 회화나무는 높이 25m까지 자라며 천년을 거뜬히 살아 정자나무로도 손색이 없다. 중국에서는 주나라 때 삼정승이 조정에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어 놓고 정사를 돌보았기 때문에 성스러운 나무로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과거급제를 하거나 벼슬을 얻은 관리가 관직에서 물러날 때 기념으로 회화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회화나무 영문명은 `Chinese scholar tree`(중국 학자 나무)다.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