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당선 유력 후보에게 투표해 알량한 성취감 맛보려는 심리 없애야
후보 능력·자질 무시한 채 당선 가능성 보고 뽑으면 후회하기 쉬워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 정치철학자 플라톤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The Republic)』에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플라톤은 여기서 소크라테스를 화자로 내세워 대화를 풀어가는데 "정의란 강자의 이익에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트라시마코스에 소크라테스가 반박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를 바라고 통치하려 하지 않는다네.(중략) 그들 스스로 통치하기를 거부할 때 그들이 받는 가장 큰 벌은 자기들보다 못한 자들에 의해서 통치 당하는 것일세. 적격자들이 통치하기로 승낙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듯 하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마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좋은 것인 양 권력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 대신 이 일을 맡아줄 더 훌륭한 사람들이나 대등한 사람들을 발견할 수 없어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다가간다네.”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자들에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말은 "그들 스스로 통치하기를 거부할 때 그들이 받는 가장 큰 벌은 자기들보다 못한 자들에 의해서 통치 당하는 것일세"에 해당한다.
이 말은 누가 해도 정치는 마찬가지라는 입장의 정치적 허무주의자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민주시민으로서 정치의식을 환기시켜주는 명언으로 자주 사용된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투표 독려 차원에서 이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저질 정치인들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유권자들이 심판해야 한다"며 후보자나 칼럼니스트 등은 목소리를 높인다. 즉, 당선되자마자 주민들은 뒷전으로 하고 오로지 자신이 다음 선거에 당선되는데만 힘쓰는 `정치꾼`이나 시정잡배(市井雜輩) 같은 자들이 정치를 하지 못하도록 표로써 신성한 참정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표해야 저질스러운 인간의 지배 막는다"는 말로 축약된다. 루이스 라모르는 "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 우리는 단순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가 되어야한다. 투표하지 않는자, 불평할 권리도 없다"고 꼬집었다.
바꿔말하면 자신을 대신해 정치할 일꾼을 뽑는 중요한 선거에 무관심했거나 어떤 후보인지도 모른 채 편협된 지역적 정서 등에 이끌려 `묻지마 투표`를 한 결과 피해는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주인이고 정치인은 주인인 국민이 뽑는 지역의 일꾼이다. 때문에 국민 모두는 자신을 위해 일할 수 있는가를 충분히 검증한 후 지역 일꾼을 선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머슴인 그들은 투표할 때만 머리를 숙였다가 당선되면 주인인 국민을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 가두리 양식장에 가둬 놓고 개·돼지 취급하게 된다.
결국 머슴이 되레 주인 행세하면서 가두리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국민을 교묘하게 짓밟을 것이다. 국민 모두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들은 절대로 가두리를 치우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은 용으로 군림하면서 정작 국민은 개·돼지 취급하는 위선적인 `정치꾼` 같은 인물을 미리 파악해 절대로 뽑아주지 말아야 하고, 실체를 모르고 선출했다면 다음 선거에서 표로써 이들을 심판해야 한다.
자기이익만을 쫓는 `정치꾼`(politician)과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정치가`(statesman)는 제임스 클라크의 다음의 말에서 쉽게 구분된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훌륭한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정치 입문자가 가장 명심해야 할 명언이다. 국민 모두는 자신의 지역구 정치인이 정치꾼 행세를 하는지 정치가의 길을 가는지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정치인의 `왕도정치`와 정치꾼의 `패도정치`
정치인은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정치꾼은 패도정치(覇道政治)를 지향한다.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사단(四端)으로 하는 유가의 정치적 이상은 왕도(王道)사상, 즉 인덕(仁德)을 근본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도리에 있다. 반면 패도정치는 인의를 가볍게 여기고 무력이나 권모술수로써 공리(功利)만을 도모하는 정치다.
맹자는 왕도정치를 이상적 형태라고 숭상했고, 덕이 없고 엄격한 법가에 의한 통치 형태를 패도로 경멸했다. 임금이 백성을 덕으로 다스리지 않고, 힘으로 굴복시키는 공포정치를 편다면 백성은 임금을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잘 말해 주고 있다.
오늘날 공자의 인(仁)에 의한 덕치와 맹자의 왕도정치를 덕목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훌륭한 정치인을 보기가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현명하다는 유권자들은 왜 이같은 정치인이 아니라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운 정치꾼을 계속 뽑아 주는 것일까?
지역을 위해 소신 있고 바르게 할 수 있는 인물임이 검증됐는데도 그를 뽑아주지 않는 것은 바로 사표심리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국의 지역구 선거에서는 지지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낮으면 `가장 나쁜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차선(次善)이나 차차선(次次善)의 후보`에게 표를 주는 `사표(死票·선거에서 떨어질 후보에게 던져진 표)방지 심리`가 발동한다.
이같은 사표방지 심리에 `밴드웨건`(band wagon) 효과까지 겹치면 능력 있는 올바른 인물이 선출될 가능성이 낮아 앞서 지적한 대로 선거가 끝나면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기 쉬울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은 일도 잘하고 능력도 있는데 정당 공천을 받지 못해 당선 가능성이 낮아 그에게 표를 주지 않고, 차선이나 차차선의 인물이지만 당선 가능성이 유력해 그에게 표가 몰리는 현상을 실제로 매번 경험하면서도 계속 되풀이되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책임이 있다.
사표방지 심리와 밴드웨건 효과의 문제점에 대한 황진규 작가(철학흥신소 운영자)의 다음 글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밴드웨건` 효과라는 게 있다. 유행에 따라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현상을 뜻하는 경제용어다. 다른 사람이 사면 나도 사고 싶은 일종의 편승효과다. 정치에서도 밴드웨건 효과가 있다. 다수의 후보가 있어도 소수의 후보에게 표가 몰리는 현상이다. 쉽게 말해 `당선될 후보를 찍어줘야 한다`는 일종의 편승효과다.
예를 들면, 딱히 A후보를 지지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A후보를 지지하는 것 같아 좀 못마땅해도 A후보를 찍어주는 것이다. 선거가 임박하면 이런 밴드웨건 효과의 위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당선될 후보인지 아닌지 선거가 임박할수록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이런 밴드웨건 효과는 왜 생길까? 기본적으로는 최악(最惡)을 막기 위해 최악보다는 덜 나쁜 차악(次惡)을 선택한다는 마음탓일 것이다. 실제로 B후보를 지지하지만 `깜이 안 되는` C후보(최악)가 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D후보에게 표를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밴드웨건 효과를 만든다.
밴드웨건 효과의 다른 원인이 있다. `사표방지 심리`다 사표방지 심리는 안될 것 같은 후보에게 표를 줘서 표를 죽은 표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A후보를 지지하지만 찍어도 안될 것 같아 B후보에게 표를 주는 경우다. 사람들은 사표방지 심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지 하는 사람은 따로 있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B후보를 찍는 거야"라며 자신이 전략적이며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은근히 자랑한다.
이같은 사표방지 심리는 `전략적`이며, `합리적`인 것일까? 아니다. 이건 전략적·합리적인 것이라기보다 `비겁함`에 가깝다. 이길 것 같은 사람에게 투표해서 알량한 성취감을 맛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 이런 사표방지 심리가 이해도 된다. 우리는 대체로 현실에서 패자가 아니었는가? 아니 승패를 떠나 제대로 승부 한 번도 걸어본 적도 없는 소시민들 아닌가? 그런 우리가 선거를 통해 간접적이고 잠시나마 기분을 만끽해보고 싶은 심정, 이해 못할 바도 없다.
그렇다고 해도 이 사표방지심리가 비겁함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결혼할 만한 사람을 골라 사랑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너무 비겁하지 않은가?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우리는 `비겁함`을 `전략적`, `합리적`이라는 말로 포장하는데 너무나 익숙하다. 자신의 남루함과 초라함이 폭로되려 할 때 언제나 전략적·합리적이라는 말로 덕지덕지 화장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 대신 조건에 맞춘 사람과 결혼을 하지만 스스로에게 말한다. "결혼은 현실이잖아. 현실은 합리적으로 생각해야지"라고···.
그러나 자신이 투표로 잘못 선택한 그 현실이 불행으로 이어질 때는 이미 늦었다.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지역 일꾼이 누구인지 철저히 검증하고 제대로 뽑아야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지 않을 것이다.
상당수 유권자들은 말한다. "그 놈이 그 놈이다. 되고 나면 다 똑같은데 뭐 할려고 투표하나"라고···. 아니다. 다 똑같지 않는 숨은 일꾼을 뽑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