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면 대한민국 칠곡군에는 `평화의 여신상`이 있다. 자유의 여신상이 평화의 여신상보다 훨씬 크지만 한 많은 우리의 역사적 의미는 규모에 못지않게 깊을 것이다. 두 손으로 무궁화를 치켜들고 있는 우리 어머니 같은 이 여신상은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 위에 우뚝 서 있는 `4군인상`에 가려 정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전쟁터에 나간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어머니가 종전과 평화를 간절히 비는 자비로운 모습이다. 다부동전적기념관 `평화의 여신상`은 미국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을 모티브로 세워졌다. 6·25전쟁 당시 대구가 넘어갈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결사항전(決死抗戰)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낸 장병들의 희생을 기리며, 여인이 손에 든 무궁화는 한반도 평화를 상징한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뉴욕항으로 들어오는 허드슨강 입구의 리버티섬(Liberty Island·자유섬)에 세워진 조각상이다. 프랑스가 188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것이다. 정식 명칭은 `세계를 비치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다. 오른손에는 세계를 비추는 자유의 횃불을, 왼손에는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높이 46m, 무게 225t, 받침대까지 합치면 93.5m에 달하는 거대 여인상이다. 내부에는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축물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천재 조각가이자 건축가 프레데릭 오귀스트 바르톨디(Frederic Auguste Bartholdi)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조각했다고 하며, 에펠 탑의 설계자이기도 한 구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이 내부 철골구조물에 대한 설계를 맡았다. 자유의 여신상은 페인트칠을 하지 않았는데도 푸른빛을 띠는 것은 주철 조형물에 구리를 덧씌웠기 때문이다. 다부동전적기념관 `평화의 여신상` 앞에 있는 `4군인상`은 육군, 학도병, 전차병 등 4인으로 구성돼 있다. 우측의 전차병은 6·25전쟁 최초의 전차전인 `볼링 앨리(Bowling Alley) 전투`의 승리를 상징한다.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현재 다부리)과 금화·천평동 일원에서는 1950년 8월 18일부터 23일까지 대구로 진출하려는 북한군 제1사단과 이를 방어하려는 한·미연합군간의 최초의 전차전이 벌어졌다. 접전 끝에 북한군은 전차 7대와 자주포 3문 등을 버리고 도주했다. `Bowling Alley(볼링장)전투`는 포탄의 화구가 날아와 후방에서 폭발하는 상황이 마치 볼링공으로 핀을 넘어뜨리는 것 같아 붙여졌다. 또 전차포의 철갑탄이 마치 악마의 유희를 보는 것 같아 `악마의 유희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군이 독일군의 대공세를 좌절시킨 베르단의 지명을 따 `동양의 베르단`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탱크 모형의 다부동전적기념관은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다부동전투가 벌어졌던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 1981년 건립됐다. 수세에 몰려 있던 국군이 북진의 계기를 마련한 다부동전투의 승전을 기념하는 곳이다.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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