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평생 추위와 함께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조선시대 4대 문장가 중 한 사람인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 선생의 수필집『야언(野言)』에 나오는 시구(詩句)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梧千年老恒藏曲(오천년로항장곡)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고/매화는 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질은 남아있고/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난다"는 뜻이다.
퇴계 이황 선생은 매화를 늘 곁에 두고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 퇴계는 임종 직전에도 "저 매화 나무에 물을 주거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매화는 선비의 높은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귀한 나무로 사군자(四君子)의 처음이다.
퇴계와 선비·군자에 있어서 매화는 옥매화(玉梅花)를 말한다. 옥매화는 원래 향기가 없으나 향기가 난다고 함은 선비의 충절을 의미하는 가상의 향기를 말하는 것이다. 무향(無香·향기가 없는)의 고고(孤高)함이 아주 먼 곳까지간다는 `무향만리(無香萬里)`다. 옥매화는 백매화(白梅花)와 홍매화(紅梅花)가 있다. 칠곡군이 고결한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군화(郡花)로 결정한 매화는 백매화(白梅花)다.
매화는 꽃을 강조한 이름이다. 열매를 강조하면 매실나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매화는 개나리, 진달래, 벚꽃보다 꽃이 일찍 피어 봄기운을 미리 느끼게 한다. 매실나무를 꽃의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화괴(花魁)`라고도 한다.
매화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일찍 피기에 ‘조매(早梅)’, 추운 날씨에 핀다고 ‘동매(冬梅)’, 눈 속에 핀다고 ‘설중매(雪中梅)’라고 한다. 색에 따라 매화가 희면 ‘백매(白梅)’로, 붉으면 ‘홍매(紅梅)’로 부른다.
칠곡군은 군민의 고결한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취지로 군화(郡花)를 매화로 정했을 정도로 매화와 관련이 깊다. 특히 칠곡군에는 매화마을이 있다. 바로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梅院里)다. 마을이름에 원(院)이 있는 지명은 조선시대에 관원이 공무로 다닐 때에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다. 칠곡군의 경우 조선시대 확실한 원(院)은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 있었던 다부원(多富院)이다. 매원(梅院)도 여기에 해당하나 원(院)에 대한 역사적 자료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마을주민은 전한다.
`매화꽃이 떨어진` 터에서 봄이면 매화가 활짝 피는 매원마을, 앞으로는 동정천이 흐르고 용두산을 뒤로하는 배산임수 명당이다. 매원마을을 중심으로 지리적 지형을 보면 유학산에서 소학산, 장자봉, 도락산을 거처 용두봉에 이르러면 매원마을이 형성돼있다. 장원봉은 좌청룡이요, 자고산은 우백호이다. 앞에는 동정천이 흐르고 뒤로는 명산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이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중의 명당이다. 풍수지리상으로는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이라고 한다.
매화낙지형은 `매화꽃이 떨어지는(落) 지형`이다. 매화꽃의 중심부인 꽃대는 매원마을이다. 매화의 속잎에 해당하는 마을 인근 지형을 보면 북으로는 용두산이 나직하게 감싸고 있으며, 남쪽의 아망산(안산)과 서쪽의 산두산, 동쪽의 죽곡산에 둘러싸여 원형을 이루고 있다. 또 매화의 겉잎에 해당하는 바깥 지형은 북쪽은 유학산, 남쪽 금무산, 서쪽 소학산, 동쪽은 황학산으로 이뤄져 있다. 학이 머무는 유학산(遊鶴山), 학의 둥지 소학산(巢鶴山) 등 온통 학(鶴)이다.
지금도 매원마을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는 위치에 따라 `상매(上梅·위쪽 매원)·중매(中梅·가운데 매원)·서매(西梅·서쪽 매원)`로 나뉘어 불린다. 상매·중매·서매는 마을의 유력 성씨인 광주이씨 선대의 거주지에 따라 구분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본래 상·중·하(上中下)로 구분됐으나 ‘하’매의 표현이 낮춤을 나타낸다고 해 상·중·서로 구분해 불렀다고 전한다. 마을 아래(下)가 서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영남의 3대 반촌(양반촌)인 매원마을을 민속마을(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해 학문과 예(禮)를 중시해온 선비의 고장으로 되살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13년 8월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나 매원마을은 함께 등재되지 못해 전쟁의 아픈 역사와 함께 주민들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미군은 6·25 전쟁 당시 북한군 지휘부가 점령한 박곡종택을 중심으로 반경 500m 일대를 폭격해 매원마을 고택(기와집) 300여 채가 폭파되고 현재 60여 채(門間채 포함)만 남아 있다.
이성원 편집국장 newsir@naver.com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