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의 신석기 시대 유물
우리 고장에서는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빗살무늬 토기와 움집의 주거지 등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만 신석기 후기로 추정되는 간석기 몇 점이 수습되었다. 1985년 채억곤(蔡億坤)은 낙동강에서 가까운 기산면 죽전리에서 돌괭이 2점과 돌도끼 1점을 수습하였는데, 이들은 주로 농경 생활에 이용된 간석기들이다.
기산면 죽전리 일대는 신석기 인들이 사냥과 물고기 잡이, 그리고 농경 생활을 하는데 비교적 적합한 지역으로 여겨진다. 이 시대의 칠곡에는 낙동강 주변 지역에 주로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이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이 되었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따라서 칠곡의 낙동강 주변 구릉 지대에는 앞으로 신석기 시대의 각종 유물의 출토와 유적이 발굴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그리고 1989년 인근의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유적에서도 신석기 시대 주거지인 움집 10여 기, 야외 저장 구덩이, 야외 조리장과 신석기 중·후기의 토기편이 다수 수습된 바 있어, 이 시기에 칠곡을 비롯하여 이웃 고장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신석기 문화가 전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는 기원전 8,0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돌을 갈아서 여러 가지 형태와 용도를 가진 간석기[마제석기(磨製石器)]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부러지거나 무디어진 도구를 다시 갈아 쓸 수 있게 되었으며, 무른 석질의 돌은 물론, 단단한 돌까지도 모두 제작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또 진흙으로 빚어 만든 토기를 사용하여 음식을 조리하거나 저장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생활의 수준도 보다 향상되었다.
신석기 초기의 토기로는 이른 민무늬 토기와 덧띠 무늬 토기가 있기는 하나,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는 빗살무늬 토기[즐문토기(櫛文土器)]이다. 빗살무늬 토기는 도토리나 달걀 모양의 뾰족한, 또는 둥근 밑 모양을 하고 있으며 크기도 다양하다. 이를 비롯한 이 시대의 각종 유물들은 신석기 인들의 생활 무대였던 바닷가나 강가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