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소녀의 위훈(偉勳) 천고에 빛날 순국혼, 금일 천안서 기념비 제막식” 이는 1947년 11월 27일 동아일보 기사로 천안에서 유관순 열사의 기념비 제막식을 알리는 기사입니다. 유관순 (1902~1920) 열사 순국 26년 되는 해에 천안에 기념비를 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우내장터에서 만세 운동에 참여하다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부모님을 비롯하여 일가친척이 순국의 길을 걸어야 했던 유관순 집안의 비극은 다름 아닌 일제 침략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일본은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와 함께 만세운동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인물로는 어윤희(1881~1961) 독립지사가 있습니다. 3월 1일 개성만세운동을 주도한 어윤희 지사는 유관순과 같은 형무소에 수감해 있으면서 선배로서 관순을 잘 보살폈다고 하지요. 또 한 인물은 오정화(1899~1974) 지사가 있는데 1919년 3월 5일 경기도 고양군 동막상리(東幕上里)에서 펼쳐진 독립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당시 사립 흥영학교 직원 이었던 오정화 지사는 만세운동으로 잡혀 유관순과 함께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던 것입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동풍신(1904~1921) 열사입니다. 동풍신 열사는 열일곱의 나이로 함경북도 명천 하가면 화대동 일대에서 펼쳐진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잡혀 함흥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서대문 형무소로 이감되지요. 동풍신 열사가 만세 운동을 벌이던 화대장터에서는 함경북도 만세시위 가운데 최대 인파인 5천여 명의 시위군중이 화대헌병분견소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일본 헌병의 무차별 사격으로 5명이 현장에서 순국한 곳입니다. 동풍신 열사의 아버지는 병중이었지만 수많은 동포가 만세운동으로 숨져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자리를 털고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가 현장에서 순국한 분입니다. 오늘은 97년 전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던 날입니다. 그 가운데는 유관순, 어윤희, 오정화, 동풍신 같은 여성독립운동가들도 함께 했음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요?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