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20일 대구의 한 중학생의 투신 자살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 학교폭력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숨진 학생은 무려 9개월 동안 같은 반 친구 2∼3명으로부터 목검과 단소, 격투기 글러브 등을 이용한 폭행과 물고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한 24시간 협박과 강요에 시달렸지만, 보복이 두려워 부모님이나 학교에 차마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가해학생들은 맞벌이 가정인 피해학생의 집에까지 찾아와 폭력을 휘둘렀고, 그럴 때면 `엄마 언제 와`라는 문자메시지를 근무 중인 어머니에게 보낸 것이 어린 중2 학생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경기도 여주의 한 중학교에서는 선배에게서 후배에게로, 수년에 걸친 집단폭력 대물림이 알려져 충격을 주었다. 3학년 학생 10여 명이 2학년 학생 10여명에게 야산, 개천 다리 밑, 읍내 공원 등에서 집단폭행과 금품갈취를 계속하고 강제 자위행위 강요 등 성추행까지 저질렀다. 갈수록 커져가는 선배들로부터의 갈취금액을 감당할 수 없었던 피해학생들은 급기야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1학년 후배들과 동급생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는 가해자로 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올해 초 광주의 한 여고생은 새벽에 또래 여고생 3명의 전화를 받고 학교 앞으로 불려나가서는 머리채를 잡아 채이고 발길질 등 집단폭행을 30분 가까이 당했다. 가해학생들은 근처에 있던 신문배달원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폭행을 계속하다가 주민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자 모두 달아났다. 피해 여학생은 경찰에게 “가해학생들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이들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고, 결국 이 사건은 관할 경찰서에 보고되지 않았다. 최근 유력한 한 중앙일간지와 한국교총이 공동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중·고교생 720만 명 중 이른바 `왕따(집단 괴롭힘)를 당하는 학생이 30만명(4.1%)에 이르고 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전국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교 2학년까지의 어린이와 청소년 3,5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0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재학기간 동안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들이 23%이며, 이 중 54%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폭력 경험 학생의 14%는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20%는 많이 고통스러웠다, 27%는 고통스러웠다고 대답해 학교폭력 피해로 인한 고통이 방관하지 못할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막상 가해학생들은 `장난삼아` 학교폭력에 가해자로 참여하게 되고(40.2%),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재밌는 방법`을 찾으면서 폭력과 괴롭힘 수위가 끝간 데 없이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왕따 학생을 집단적으로 비방하는 인터넷 안티카페 개설, 핸드폰 메신저를 통한 집단 욕설 테러, 사진 협박이나 유포 등 첨단 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상대방을 괴롭히는 방법도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학교폭력의 원인은 다양하게 거론된다. 치열한 입시경쟁과 성적 제일주의로 인한 학업 스트레스, 과거에 비해 어려움에 대처하는 정신적 능력이 약해진 학생들, 또래 문화의 확산, 인터넷에 난무하는 각종 음란·폭력물과 게임, 전반적인 교권의 약화 등…. 그러나 거시적인 원인들을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해학생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만큼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는데, 부모들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주어야 할 학교는 체벌금지 조항 등으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에 대한 제재력을 상실해 방관자나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피해학생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문제가 불거져 교사 개인과 학교의 인사·행정·평판상 불이익을 받는 것을 더 꺼리는 보신주의가 만연해 있다. 반면, 범죄나 다름 없는 강도 높은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학생들은 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의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피해학생과 그 가족만 “왜 그리 약하냐”는 비난 속에 폭력으로 새겨진 몸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흐느낄 뿐이다. 정부는 학교폭력 등 각종 위기상황 학생들을 상담-지원하는 `wee project(학생안전통합시스템)` 강화에서부터 경찰력의 학교 투입 등 강력한 대책들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폭력은 저질러서는 안 될 중대한 범죄라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반복교육을 통해 명확히 인식시키고, 학교폭력 발생 시 피해학생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가해학생들에 대해 강제전학을 비롯한 분명한 응분의 처벌과 집중적인 상담·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함으로써 제1의 교육현장인 학교에서 정의와 아동청소년 보호가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교사가 실질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도록, 그에 필요한 충분한 권한과 책임이 주어져야 하며 이에 장애가 되는 규정들은 과감한 개선이 필수적이다. 또, 학교폭력을 감추고 덮으며 “또래 아이들끼리의 일로 별 문제 아니다”는 식의 대다수 학교의 대처방식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최근 정부와 한나라당에서 교내 폭력을 자진 신고하는 학교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학교폭력은 당사자인 학교와 교사가 그것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이 올바른 해결을 위한 가장 중요한 첫 걸음임을 말해준다. 나아가 학생들의 인성교육 강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성 제고와 같은 근본적인 대책도 중요한데, 이것은 가정과 사회가 다 함께 노력할 부분이다. 지금 이 시대는 책임지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다. 아이들을 보호하고 바른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온 몸으로 책임을 감당하는 그러한 학교를 이 시대는 필요로 한다. 미처 피어보지도 못한 채 생명을 포기하는 어린 학생들의 고통에 더 이상 소극적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대구와 교육계, 이제 변화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대구경북연구원 지역교육팀 김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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