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40세면 불혹(不惑)을 떠올릴 것이다. `불혹`은 유교적 봉건주의시대 `공자님 말씀`이다. 눈만 돌리면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인터넷-정보시대는 사정이 다르다. 공자가 이 시대에 태어났으면 `40세 불혹`이라 했을까.
초스피드시대에 나도 모르게 받은 유혹을 이기기가 힘들다. 현대인들은 너무나 빨리 달려가고 있다. 자신의 존재와는 동떨어진 채 고속으로 질주하는 자동차에 몸을 싣거나 초고속 인터넷 정보의 바다 속에 함몰된 상태에서 말이다. 더구나 내 자신이 닦으면서 가야할 `마이웨이(My way)`가 아닌 남이 피땀 흘려 만들어 놓은 아스팔트길 위를 남들과 똑같이 쉽게, 그것도 재빠른 자동차를 타고서….
느림에는 동-서양의 구분이 없다. 흔히들 인스턴트 식품, 패스트푸드, 휴대폰, 초고속 인터넷 등이 앞선 서구인들에게는 `초스피드`를 추구하는 사람들로, `비가 와도 양반은 뛰지 않는다`는 유교적 전통관념이 배여있는 중국-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들은 `만만디`(`천천히`의 중국어) 민족으로 오인하기 쉽다.
그러나 걷기 예찬론자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는 빠름을 버리고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를 깨달으라며 그냥 지나쳐 버리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세상을 감상하기 위해 산책을 즐긴다고 했다.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저자로 유명한 밀란 쿤데라는 "기술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가 속도라면, 느림은 감속의 기법을 다룰 줄 아는 지혜"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느림은 게으름과는 분명 다르며 빠름에 적응하지 못하는 무능력도 아니라고 이들은 강조하고 있다.
`빠름의 철학`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 목적을 빨리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반면 `느림의 미학`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 정당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결과는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당신은 어느쪽을 선택할 것인가. 초스피드시대에 후자를 선택할 경우 누구나 도태된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빠른 자가용, 초고속인터넷 등 하드웨어적인 것이 너무 빨리 나를 도와주고 있으니 정신적인 부분은 빠르지 않아도 된다. 정신세계마저 빠른 하드웨어에 종속된다면 인간의 고유한 모습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빠름을 선택할 것인가, 느림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빠름의 시대적-사회적 상황 속에 `느림의 여유(마음과 정신)`가 함께 조화롭게 있을 때 `느림의 미학`이 비로소 완성된다.
달리는 자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외로워지는 법이다. 이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하고, 급기야 달릴 수도 없는 무한속도를 꿈꾸지만 `고독의 끝`에서 정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나는 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더 빨리 달려왔다. 때로는 달린다는 의식을 잃어버린 망각의 상태에서…. 그렇다고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늦었지만 불혹의 나이부터 천천히 걷는 연습부터 해야겠다. 빠르고, 편하고, 쉽게 갈 수 있는 `탈 것`을 타고 가지 않겠느냐는 유혹을 거뜬히 이기는 불혹의 40대를 위하여….
지금이라도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신이 나에게 부여한 나의 길을 찾아 한걸음씩 묵묵히 가야겠다. 그 동안 `탈 것`을 타고 너무 빨리 달려와 나의 진정한 존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이젠 나의 실존과 더 가까이 만나기 위해 그렇게 도망치듯 달려가지 않을련다.
태양이 떠는 낮에는 `눈부신 그림자`를, 달이 떠는 밤에는 `맘부신 그림자`를 내 존재의 벗 삼아 `구름에 달 가듯` 그렇게 걸어가리라.
그 동안 영화 속의 주인공으로 착각한 나머지 한갖된 이상의 스크린에서 맘대로 놀다가 지친 영혼을 추스리지 못했던 과거가 영상처럼 지나간다. 천천히 걷는 나그네는 절대로 지치지 않는다. 그러나 나그네가 나그네답지 않게 목표 지점에 빨리 도착하려거나 어딘가를 정복하려고 `탈 것`을 타고 빨리 가면 더 이상 나그네가 아니다.
나그네는 체력이 고갈돼 걷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에 지쳐 쓰러진 나그네`가 될까하는 불안의 짐을 내려 놓으면서 정처 없이 걸어가고 있다.
`길 위에서의 생각`
詩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