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작오산∼구봉산의 반월형 둘레길 조성으로 半月形 성곽은 `護國의 명당`, 지역발전의 새 기운 넘쳐 선종 1주기 맞은 김수환 추기경의 칠곡 발자취도 살려야 한반도의 척추와 같은 백두대간은 백두산을 정수리로한 천지연(天地淵)의 깊은 수기(水氣)는 많은 에너지를 분출하며 산따라 기맥따라 대간을 이루며 내리다 삼남을 가르는 매봉산(1,303m) 분기점에서 태백산과 남쪽 마지막 지리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낙동강 700리를 가운데 두고 분가한 낙동정맥은 영취산 통도사를 찾아 내리다 중간 기착지인 팔공산의 웅자함을 만나 팔공의 기맥을 크게 형성하면서 대구를 품에 안고 있다. 비로봉을 정점으로한 기맥의 주류는 칠곡의 관문 가산(902m)으로 이어져 황학산을 건너와 황학지맥을 만들어 소학산(624m)과 유학산을 같이하면서 왜관, 지천, 석적을 경계로 하고 있고, 그 중앙인 소학산은 왜관읍 경계의 최고 봉우리 중심축이며 서북을 향해 석적읍을 가르면서 기반산을 내려와 작오산 끝자락이 한축이 되어 낙동강을 만나 왜관의 서북 관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소학산 정점에서 다시 한 축은 남쪽을 향해 완만한 산등성을 연결하며 내리다 겹꽃과 같은 은혜로운 장원산(壯元山)을 만나고 있으면서 왜관읍 금산·낙산리를 아우르며 관장하는 금무산이 평원에서 솟구쳐 매망산과 용산을 향해 내려와 낙동강, 금호강의 합수지점인 구봉산을 자리매김하고 왜관의 남쪽 관문을 마감하며 이와 함께 낙동강이 양쪽 관문을 휘감으니 활과 같이 반월형(半月形) 성곽이 형성, `호국의 명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간은 정맥을 만들고 이어져 팔공의 기맥을 형성하고 내리면서 주류의 소학산을 정점으로 하여 왜관 고을을 만들고 인간이전 태초의 자연은 조류와 동물들의 산길이었을 것이다. 지맥이 혈맥으로 승화하여 유구한 역사는 인간의 보금자리와 함께 산길따라 나뭇길로 다시 다듬어졌을 것이다. 자연 속에 풍요로운 인간의 삶은 강을 따라 많은 문화와 문물이 들어왔을 것이다. 더욱이 칠곡군은 천주교 순교의 고장으로 어느 곳보다 일찌기 신나뭇골 한티성지를 만들었고 순교와 박해가 거듭되면서 옛날부터 있어온 산길과 나뭇길은 숨어다니는 고행으로 수난당한 순교자들의 길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근대사에서 민족간 치룬 처절한 6·25전쟁은 왜관을 거점으로 마지막 교두보를 형성하기 위해 낙동강 철교를 중심으로 한 배수진 구축은 반월성과 같이 형성된 왜관의 지맥과 기맥의 모든 자락의 산천이 반공호를 염주알 같이 구축한 흔적이 60여년이 지났지만 여러 곳에서 지금도 아직 뚜렷하다. 순교자의 숨어다니는 길 위에 다시 나라를 지킨 호국 영령의 발자취가 겹으로 쌓여 지난 날을 되새기며 우리는 오래된 숱한 인연의 새겨진 길 위에 다시 둘레길을 만들 예정이다. 그리고 마을마다 산자락 따라 둘레길에는 마을 어른들의 오래된 아름다운 전설의 이야기는 마음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고 산책길, 등산길이 더욱 즐겁게 할 것이다. 낙동강과 금호강의 합수지점인 팔공기맥의 마지막 자락 구봉산 기슭은 강물따라 전망과 경치가 아름다워 조선 16대 왕, 인조가 대군시절 여기에서 풍류를 즐기다 석양의 붉은 노을에 환상의 새 따오기가 시류를 노래하는 청아함을 듣고 노을 하(霞), 따오기 목(鶩)을 합하여 霞鶩亭(하목정) 정자의 글씨를 임금이 직접 쓴 친필 현판이라고 하며 고색이 창연한 문화제적 가치와 함께 400년이상 묵은 백일홍 나무들이 우람하고 영흠함을 간직하며 정자의 품격을 한층 더 높이고 있다. 하목정을 뒤로하고 구봉산을 오르면 소담한 높고 낮은 9개의 봉우리가 강기슭을 같이하며 길게 누어있어 마치 큰 용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긴 꼬리가 늪에서 수기를 받아 뭍을 따라 구봉산에서 용산(龍山)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팔공기맥을 향하여 용트림하는 형상이며 용의 중간등에 해당하는 자리가 왜관읍 금남리에서 대구시 달성군 하빈을 넘어가는 파회고개(바윗고개)인데 청나라 장수 이여송이 임진왜란때 원병을 와서 보니 조선에는 기맥이 왕성하여 큰 인물이 많이 나올 것을 경계하며 지맥을 잘라낸 곳이 바윗고개 자리라고 마을 어른들이 전한다. 파회(坡回)고개에서 다시 오르며 이어지는 용산 자락의 묘골은 사육신 중의 한 분이며 충절의 명문가인 순천 박씨 시조인 박팽년 공, 유복 적손이 묘골 태고정에서 태어난 곳이며 서쪽 등을 같이하며 천하를 포용할 수 있는 유유자적한 넉넉함을 가지면서도 명예와 부에 연연하지 않고 송죽 같은 곧은 절의의 삶을 향유하라는 삼가헌(三可軒) 가풍의 전통을 이어받아 주손이 관리하고 육신사 사당을 같이한 관광 명소이며, 배산임수 즉 용산이 마을 뒷산으로 고개마루에 육각정 정자를 지어 등산 길손을 맞이하는데 대부분 정자는 자연의 운치와 함께 사면 팔방 팔각정의 좋은 전망을 연상하나 충절의 사육신을 모시는 신당이 존치하기에 엄숙함을 격으로하여 육각정을 지었다고 한다. 용산에서 매망산을 지나 금무산에 오르면 사방이 확 트인 넓은 시야가 수십리에 이르고 이 금무산 기슭에는 아름답고 슬픈 전설의 이야기 주인공인 한유장군의 무덤이 후손들에 의해 잘 모셔져 있다. 한유장군이 낙동강에 용이 산다는 깊은 용소심에서 화살보다 빠른 하늘을 나는 듯한 용마를 얻었다고 한다. 경연대회에서 애마인 용마에게 화살보다 늦게 도착하면 너를 죽인다고 약속하고 금무산 정상을 향해 용마를 타고 올라서니 화살이 보이지 않아 지나간 줄 알고 용마의 목을 치는 순간 화살이 정상을 향해 올라옴을 보고 자신의 경솔한 잘못을 뉘우치고 함께 자결하여 용마와 같이한 장군의 무덤을 지금도 그 주위 마을 후손들이 향배, 관리하고 있다. 근년에는 도굴꾼에 의하여 수난도 당했으며 전설의 고향에도 방송된 바 있으며 또한 금무산 줄기에는 중생대 바다풀 화석인 고사리 화석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무산을 뒤로 하고 동북쪽 울창한 소나무길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천주교 성지인 신나뭇골 순교지가 엄숙한 모습으로 맞이한다. 천주교 성지의 요람인 신나뭇골 성지는 영남지방 포교 활동의 최초 거점이며 교구 역할을 한 곳이기에 세상을 향한 빛나는 자랑거리가 되고 보배로운 성지라 하겠다. 신나뭇골 성지를 뒤로 하고 한티성지와 함께 지금은 없어진 왜관읍 봉계리 장자동 천주교 공소를 향하여 한적한 숲길을 계속가면 중국 낙양성 10여리의 높고 낮은 무덤보다 더 규모가 큰 조양공원(지천면 달서리)과 청구공원(지천면 백운리)에 의 넓고 깊은 여러 계곡의 층층의 많은 무덤이 아물거리는 시야는 인생무상과 함께 숙연함을 아니 느낄 수 없다. 조양공원 끝자락에서 지난 16일 선종 1주기를 맞은 김수환 추기경이 그 옛날 박해를 피해 어린시절 어버이와 함께 산등성을 넘나들었던 아홉사리고개가 눈아래 선명하며 저 멀리 장자동 30여호의 마을 전체가 신자촌을 형성하며 공소가 있던 자리가 한눈에 보인다. 추기경께서 생전에 이 길을 찾으러 오셨다가 찾지 못하고 돌아간 길이기도 한 안타까운 여한의 길이다. 금무산에서 신나뭇골 성지를 지나 팔공기맥을 향하는 중간에 장원산(370m)이 있다. 말 그대로 장원급제 장원봉이다. 비록 봉우리는 작지만 칠곡군 산지명을 설명하는 택리지에 의하면 겹겹이 골짜기가 많아 물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 왜관읍 매원·봉계·삼청·오수월리, 지천면 완정리, 송정리, 신리, 달서리 등 많은 마을을 거느리며 풍부한 물을 많이 내려보내니 농경사회 위주의 삶이 자연적으로 그 감사와 은혜로움에 여러 고을 사람들이 장원봉이라 불러주지 않았나 유추 해석을 해본다. 팔공기맥이며 왜관읍 왜관리와 매원리를 중심으로 한 정통 정점인 소학산은 영남 3촌(3대마을)의 하나인 매원마을의 주령이기도 하다. 소학산 정상 정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왜관과 석적의 경계인 기반산을 계속 내려오면 산기슭에 팔각정자가 자연을 벗하며 유유자적하고 긴 계곡을 내려다보면 칠곡군 송정 자연휴양림이 저멀리 낙동강 줄기와 함께 훤하게 내려 보인다. 휴양림 계곡과 함께 울창한 나뭇길을 따라 길을 걷는 한적한 정취는 겨울 찬바람에 늘 푸른 소나무의 모습이 더욱 창연하다. 옹기종기 다소곳한 양지바른 송정 자연휴양림 마을을 지나 계곡의 끝자락을 내려서면서 경부고속도로 다리 위를 건너면 등 굽은 소나무 능선이 작오산(자고산이라고도 함) 정상의 정자를 가리키고 있다. 작오산은 큰 거북이가 강에서 뭍으로 올라오는 기도발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며 정상의 정자에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가면 왜관읍 끝자락이기도 한 하목정이 눈아래 아른거린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하여 크게 만든 둘레길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산길따라 나뭇길 따라 순교자의 길을 따라 신나뭇골 성지를 중심으로 장자동 공소와 만나게 하고, 문화재로 지정된 가실성당(왜관읍 낙산리)과 함께 한티성지를 연결하는 추억의 순례와 순교의 길을 만들고 세계 전투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치열한 승리의 함성이 아직도 깃들어 있는 유학산 다부동 전투의 신화는 다시 승전으로 이룩한 전적비가 수호신이 되어 칠곡을 지키는 수문장이다. 왜관농협은 당국의 협조를 받아 그 길을 더듬어 영원히 잊지 못할 호국의 길을 열면서 겹겹의 유구한 인연을 따라 그 위에 둘레길을 내고 다듬어서 역사의 향기가 베어나는 마당과 자연의 휴식공간(피정·避靜)으로 연결해 지역민들은 물론 전국민, 아니 세계인들에게 가톨릭과 호국의 메카로 각광받게 하고 싶다./글·이수헌 왜관농협 조합장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