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허공을 마디마디 안고 있는 나는
당신의 더운 입김을 기다리는 피리여요
만 가지 근심이 출렁이고 있어요
속 깊이
바람을 불어넣어 내 몸을 덥혀 주어요
내려앉은 어둠을 밀어내 주어요
당신의 촉촉한 입술이 닿으면
깜깜한 어둠에 파르르 균열이 일어나지요
가지런한 내 숨구멍을 따라
당신의 손가락 끝이 움직일 때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비명이 흘러나와요
내가 깨어나는 소리여요
당신이 자아낸
푸른 음률은 북명北溟 바다를 찾아 떠나고
따뜻한 음색은 흐르는 강으로 녹아들며
하늘 아래 외로운 대나무들
무성한 숲으로 서게 하여요
내 몸속으로 들어와
깊디깊은 잠을 깨우는 당신은
어둠을 베는 섬광 같은 칼날인가요
강바닥 쿡쿡 내려찧는 상앗대인가요
소리로써 천하는 다스려지는데
당신 없는 나는 침묵이어서
슬퍼요, 서러워요
제21회 신라문학대상(600만원의 상금과 상패)을 수상한 이 시는 한국문인협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문학 2010년 1월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