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 채우기보다 적당할 때 멈추는 것이 좋다
"지족(知足)이면 불욕(不辱)이요, 지지(知止)면 불태(不殆)니라."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뜻의 이 말은 노자(老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명예와 재물에 대한 인간의 지나친 탐욕을 경계하고 있다. 인간의 욕망에는 한이 없다. 적절한 욕망은 생명력을 높이지만 한없는 욕망은 탐욕으로 변해 인간을 파멸로 유도한다.
잔 속에 기둥을 세우고 그 속에 구멍을 뚫어 술이 70% 정도 차오르면 잔 속의 술이 모두 밑으로 흘러내리게 되어 있는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있다.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들어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하며 넘치도록 가득 채우는 것보다는 적당할 때 멈추는 것이 좋다는 과욕 경계의 속뜻도 있다. 신비롭기까지 하지만 공기의 압력 차이를 이용한 것으로, 원리만 알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잔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도공 우명옥이 만들었다고 전한다. 그는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던 경기도 광주분원에서 스승에게 열심히 배우고 익혀 마침내 스승도 이루지 못한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명성을 얻는다. 유명해진 그는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재물을 모두 탕진한 뒤 잘못을 뉘우치고 스승에게 돌아와 계영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계영배 이야기는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다. 조선 후기 의주 출신 거상 임상옥이 최초로 국경지대에서 인삼무역권을 독점해 막대한 재화를 벌어들였지만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과욕을 다스리면서 굶주리는 백성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최인호는 계영배를 통해 평등하여 물과 같은 재물을 혼자 가지려는 재산가는 반드시 그 재물로 비극을 맞게 되고, 저울과 같이 바르고 정직하지 못한 재산가는 반드시 그 재물로 파멸을 맞을 것이라는 교훈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인간 의지가 보다 많이 개입되는 욕망으로 재물욕과 명예욕이 있다. 중세의 가톨릭교가 말하는 일곱 개의 대죄 중 둘째가 과욕이었으며 석가는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6가지 중 맨 마지막으로 탐욕을 꼽았다. 석가가 탐욕을 제일 마지막에 둔 것은 그만큼 덜 중요하다고 여긴 때문이 아니라 가장 확실하게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너도나도 재물욕과 명예욕 숭배를 당연시하는 풍조다. 그러다 보니 브레이크는 없다. 나눔이나 양보 또는 공존의 미덕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남의 정당한 몫까지 어떤 식으로든 뺏으려는 욕망들만이 팽배해 있다. 지도층이 탐욕적이면 사회 전반에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지고 지도층이 중심을 잃으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그래서 옛날부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염치와 명예심이 있어야 한다.
일찍이 유럽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말이 있었다. 이는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유럽 상류층의 의식과 행동을 지탱해 온 정신적인 뿌리이다. 전쟁이 나면 귀족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솔선해서 싸움터에 나가는 기사도 정신도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도 국민통합이 이루어지고 희망이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지도층들이 적어도 일반국민보다는 덜 이기적이고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재물과 욕망의 흘러넘침이 없는 삶이 행복과 여유가 흘러넘치는 삶이다. 결실의 계절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모두 잃게 된다는 계영배의 교훈을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우태주 리포터 woopo20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