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정감 넘치는 나의 고향과 삶의 뿌리" 대형마트 "거대 자본으로 상대 굴복, 승자독식" 인근 구미지역에 이마트 등 대형마트가 영업하면서 부터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중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시장잠식이다. 지역경제가 급속히 침체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놓고 의견이 분분해졌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편리한 쇼핑, 낮은 가격에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살아남으려면 경쟁력을 갖춰야 했고 그 일환으로 요즘 재래시장이 변하고 있다. 두 곳을 다니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형마트는 모든 것이 편한데 왜 점점 불편함을 느끼게 될까? 재래시장은 불편한데 왜 점점 편안함을 느끼는 걸까? 여기에는 다분히 재래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애향심이 깔려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재래시장에는 덤과 에누리가 있고 대형마트에는 에누리 밖에 없다. 덤과 에누리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덤의 사전적 의미는 `제 값어치 외에 거저로 조금 더 얹어 주는 일, 또는 그런 물건`이고 에누리의 사전적 의미는 `물건 값을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일, 또는 그 물건 값`인데 대부분 깎아달라는 의미로 쓴다. 시장에 가면 말 한 마디에 물건을 더 얹어주기도 하고 더 싸게 주기도 한다. 말의 소통이 되는 곳이다. 그러나 대형마트는 정해진 에누리 밖에 없다. 실제로는 에누리가 아닌 기업의 철저히 계산된 마케팅이라고 생각한다. 말이 오가는 흥정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에누리지 일방통행이 에누리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둘째, 재래시장에는 가족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대형마트에는 고용된 아줌마만 있다. 물론 교육을 받아서 늘 친절하고 상냥하다. 하지만 그뿐이다. 삶의 추억과 향수와 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셋째, 국밥집이다. 국밥은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가장 든든한 힘의 원천이다. 소머리국밥, 순대국밥이나 해장국에 소주 한 병, 그리고 국밥집 아주머니의 투박한 말투 속에는 일상의 삶의 애환이 그대로 녹아있다. 이에 비해 대형마트에는 패스트 푸드점이 있다. 물론 순대도 팔고 족발도 판다. 그곳은 음식을 사고파는 곳 이상의 삶의 정겨움이 없다. 넷째는 욕이다. 시장에 가면 심심치 않게 듣는 것이 상인들끼리 나누는 일상의 언어 속에 욕이 있다는 것이다.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서로 나누는 일상의 언어 속에 들리는 욕이 처음에는 낯설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싸울 때의 욕은 억양이 강하지만 일상의 대화 속의 욕은 정겹다. 이밖에도 많은 것이 있고 없을 것이다. 자그마한 좌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가는 좁은 시장길, 여기저기서 퍼덕이며 살아가는 삶의 목소리는 그 자체가 에너지며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시장은 우리를 먹여 살리고, 가르치고, 다시 살아가는 지역경제를 이끌어가는 너무도 끈적끈적 할 정도로 정으로 뭉쳐진 나의 고향과 삶의 뿌리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변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거대 자본으로 상대를 굴복시켜야만 생존하는 자본주의의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왜곡된 가치관은 우리들의 공동체인 시장을 점령했고 이제 우리들의 고향은 무너지고 있다. 아니 무너지는 정도가 아니라 파괴되고 사라지고 송두리째 뿌리가 뽑힐 위기에 처해있다. 공생(共生)이 아니라 독생(獨生)의 대형마트만 있는 비열한 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럼 왜 재래시장이 이렇게 헌신짝 취급을 받을 정도로 수모를 겪는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부의 대책 없는 유통시장 개방정책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소위 유통재벌들에 의한 자본의 폭력성 때문이다. 재래시장은 물론 동네 구멍가게까지 죽일 심산으로 무섭게 달려오는 대형마트의 무분별한 입점 때문이다. 그래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고, 어떡해서든지 살아남아야 한다. 앞으로가 문제다. 어떻게 하면 시장상인들의 이 절절한 외침을, 정당한 싸움을 제대로 지지하고 정당한 여론을 만들어 낼 것인가가 우리가 할일이다.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된다. 지역 상인이 살아야 우리도 살 수 있다. 이 일은 바로 고향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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