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홀로와 더불어 조화를`
박세원 법무사
칠곡문화원 회원
부부간에 다투면 어느 일방이 집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집에서 기르는 개도 주인이 화를 내면 일단은 문밖으로 도망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있던 자리를 피하는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다. 현재와 다른 상황을 맞이함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문화유적지 탐방을 위하여 떠나는 것은 지금 내가 처한 입장에서 떠나 새로움, 아니 우리들보다 먼저 이 땅에서 산분들의 흔적을 만나기 위함이리라. 문화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라고 하는데, 옛날과 현재의 다른 지방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나에게 무엇을 보여 줄 것인가.
칠곡문화원에서 준비한 버스 3대에 오른다. 70대 전후의 회원과 60대 후반, 여성회원들끼리 한 버스에 탑승한다. 그것이 편한 모양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움 중 하나가 불편한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인 모양이다.
순천 선암사, 선녀가 개울이 있는 바위에 내려 목욕을 하고 싶을 정도로 아늑하고 불심이 조용한 가운데 일어나는 느낌이 드는 사찰이다.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절을 지었을까. 대단히 크게 깨달은 스님이 창건하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인근이나 아주 멀리에 살고 있던 목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참여에 의하여 지어졌을 것이다.
전쟁의 승리는 장군의 명예가 된다. 이름도 없고 역사책에는 전혀 기록되지 않는 사람들이 전투과정에서 죽고 다치면서 전쟁은 끝이 난다. 아마도 선암사도 많은 주민들이 그 큰 불사에 동원되었으리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의 먼 조상도 동참 모르겠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소원을 빌고 빌어 가피(加被;부처나 보살이 자비를 베풀어 중생에게 힘을 줌)를 얻었으리라.
같은 순천에 있는 낙안읍성, 성을 지키는 군졸과 선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늙은 노파가 동동주를 팔기 위하여 언능 오란다. 언능이 빨리 오라는 말인가. 일행들과 동동주를 두어 잔 마셨다. 오줌보가 약한데 겁이 난다. 성곽이 이렇게 낮을 수가 있나. 필요한 성벽돌이 없었는가. 남해로 침범하던 왜구가 말 그대로 키 작은 족속들이라 높은 성벽이 필요찮은 것인가.
치열한 전투가 있던 장소가 관광객으로 들 끊고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지금과 그 전의 삶의 환경이 다른 것을, 옛날이 좋았다는 말과 그때는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 하는 말은 오늘과 그때의 오늘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옛 사람이나 지금의 사람 모두가 이 `오늘`을 최선을 다하여 살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다수종으로 울창한 산림이 조성되어 있는 유학산과 가산산성을 오르는 데는 무료인데, 어찌 보성차밭은 차나무 단 일종 밖에 없는데 입장료는 왜 받나? 차밭 중앙에 무덤은 외로이 누워있는 이유는? 삶은 허무하다지만 차나무와 같이 비탈진 곳일망정 다른 여러 차나무와 같이 군락을 이루듯, 사람들도 자신의 자리에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과 더불어 최선을 다하여 살라고 하는 메시지일까.
떠났다가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귀가하는 버스 안 회원들의 기분 좋은 노래 가락을 들으며 구상 시인의 `홀로와 더불어` 시 구절을 떠올려 본다. "나는 홀로다.… 나는 더불어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 삶에/그 평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