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기미 독립만세의 함성은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한지 10년 만에 일어났다. 우리 선열들은 의연하게 일본군의 총칼 앞에 쓰러지면서도 비굴하거나 주저함이 없었고 무력으로 대항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는 민중의 마음이요, 힘이다.
현재 우리 민족은 분단된지 63년이 지났지만 통일을 주변 강대국에 의존하면서 자주민족통일의 정신은 상실하고 말았다. 3·1절 기념행사는 해마다 하지만 민족애에 의한 통일정신은 찾아볼 수가 없다. 권력을 탐하는 기득권자들에 의해 기만당하고 이용당해 남에서는 좌파로 북에서는 반동으로 몰아 정치모리배들은 민중의 뜻은 아랑곳없이 정권 연장과 유지를 위한 도구로 순수한 민중들을 이용하여 63년 동안 우리 민족은 권력자들의 이용물이었다.
“한국 사람은 그저 맞아야 말을 듣는다”는 말, 지금껏 한번쯤 안 들어본 사람 있을까?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대해 ‘노예근성이 있다’, ‘자발적이지 못하다’, ‘시민의식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해 온 이 말의 문제점을 "`한국 사람은 그저 맞아야 말을 듣는다`는 표현을 뒤집어보면, 식민통치와 군사통치라는 부당한 정치권력에 순응하지 않으려 했던 우리나라 사람 나름의 저항 방식이 담겨 있다"고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부 정준영 교수는 지적한다.
즉 “오랜 시간 계속되는 부당한 정치권력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복종’ 혹은 ‘비타협’이라는 나름의 저항 방식을 택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비타협’ 저항방식을 ‘적극적 타협’으로 바꿔놓기 위해, 일제와 군부는 ‘폭력’을 일상적으로 사용했고, ‘한국 사람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라는 말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고 설명하면서 “이 말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군대 문화를 통해, 사회 각 분야에 유입됐을 뿐 아니라, 특히 군사문화에 젖어있는 각 학교 교실, 그리고 군대를 통해, 모든 국민들에게 주입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제 식민통치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이들이 해방 후에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친일파가 오히려 득세하는 현실을 보면서,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적극적인 저항은 피하되, 비타협, 혹은 소극적으로만 타협하는’ 자세를 체질화하게 됐다”면서 “이것은 권력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좀처럼 말을 안 듣는’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러한 배경이 담긴 ‘한국 사람은 그저 맞아야 말을 듣는다’는 말을 지금 마치 자신이 선각자인 것처럼 타인을 비하하는 일에 사용하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또 “한편에서는, 질서를 안 지키는 이들, ‘복지부동’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이 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질서를 안지키거나 복지부동하는 이들은, 다른 나라에도 우리나라만큼 있다”고 지적했다.
정교수는 “‘한국 사람은 그저 맞아야 말을 듣는다’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일제와 군부 악습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면서 “부당한 것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고, 권위를 인정받은 권력의 시민 참여적 통치가 지속된다면, 한국인들의 역동적 자발성은 자연히 드러나게 된다.”고 밝혔다.
맨 주먹으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자신을 불살랐던 우리 선열의 애족정신을 이어받아 “자주통일 만세”를 부르짖어야 한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의 뜻이 퇴색하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민족자주독립을 위해 남북 7천만 동포들이 통일을 외치며 태극기를 높이 들어야 한다. 그리고 6자회담처럼 7천만 민족의 운명을 언제까지 주변 강대국들에 의존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통일 후에도 저들의 상업주의적인 간섭은 끊이지 않을 것이며 민족의 자주성은 끝내 찾지 못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최대한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새로운 대한을, 가장 아름다운 나라, 정의와 평화를 노래하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우태주 리포터 woopo20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