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다 본 왜관 낙동강은 오랜 역사의 물결이 거슬러 올라가는듯 보였다. 이곳은 한 때 `중계교역(中繼交易)`이 매우 성행했던 무역의 중심지요, 오늘날은 `영남의 젖줄`로서 풍요와 평화를 상징하면서도 6·25전쟁 당시 피가 강이 되어 흘렀다.
활발한 무역과 장시(場市)를 이루었던 낙동강 유역의 수운(水運)이 비운(悲運)의 역사로 바뀌어 흐르면서 낙동강은 붉은 피와 시커먼 공장폐수 등으로 신음 할만도 하지만 지금도 말 없이 흘러간다. 호국의 다리(인도교), 왜관교, 경부선 왜관철교도 낙동강을 가로질러 언제나 이 강물에 몸을 담군 채 역시 침묵하고 있다.
왜관
이해리
왜관을 지나가면
내 뿌리 어딘가가 아파온다
왜관(倭館)!
수탈의 냄새가 고인 지명(地名)
흰옷 입은 어느 조상이 피멍든 맨발로
경부선 부역에 끌려갔던 고개일까
발자국마다 눈부시게 꽃 핀 봄날
역사 주변엔 패잔병의 게다짝같이 띄엄띄엄
잔류해 있는 낡은 왜식 관사
담이 높은 미군부대 철조망 가시와
성베네틱트 수도원 넓은 정원의 수음(樹陰)이
어쩐지 낯설다
아, 왜관은 내 아버지의 원적지(原籍地)
6·25때 부서진 철교가 웅웅 높새 소리를 내며
모래톱에 막혀 있는 낙동강에
개동박꽃 피고 직박구리새 지저귈 때
한 번쯤 뒤엎을 줄도 모르고
대한민국 근대 수난사에 척추가 휘인 채
순하게만 사는 땅
대구시로 편입해 버린 칠곡쯤에서
털털거리는 0번 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다
정차하는 곳에 닷새 장을 세우고
푸성귀 따위나 팔다가 이제 곧
왜관지방공단이 들어올테니 왜관은 참
살기 좋은 곳이라 자랑하는 그곳을 지나가면
나는 왜 까닭 모를 눈물이 나는지
발자국마다 눈부시게 꽃 핀 봄날
이해리 시집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에서
경북 칠곡 출생
2003년 제3회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시부문) 수상
현)한국작가회의 대구지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