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 왜관을 지나가면 내 뿌리 어딘가가 아파온다 왜관(倭館)! 수탈의 냄새가 고인 지명(地名) 흰옷 입은 어느 조상이 피멍든 맨발로 경부선 부역에 끌려갔던 고개일까 발자국마다 눈부시게 꽃 핀 봄날 역사 주변엔 패잔병의 게다짝같이 띄엄띄엄 잔류해 있는 낡은 왜식 관사 담이 높은 미군부대 철조망 가시와 성베네틱트 수도원 넓은 정원의 수음(樹陰)이 어쩐지 낯설다 아, 왜관은 내 아버지의 원적지(原籍地) 6·25때 부서진 철교가 웅웅 높새 소리를 내며 모래톱에 막혀 있는 낙동강에 개동박꽃 피고 직박구리새 지저귈 때 한 번쯤 뒤엎을 줄도 모르고 대한민국 근대 수난사에 척추가 휘인 채 순하게만 사는 땅 대구시로 편입해 버린 칠곡쯤에서 털털거리는 0번 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다 정차하는 곳에 닷새 장을 세우고 푸성귀 따위나 팔다가 이제 곧 왜관지방공단이 들어올테니 왜관은 참 살기 좋은 곳이라 자랑하는 그곳을 지나가면 나는 왜 까닭 모를 눈물이 나는지 발자국마다 눈부시게 꽃 핀 봄날 -이해리 시집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에서 경북 칠곡 출생 2003년 제3회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시부문) 수상 현)한국작가회의 대구지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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