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사 "개발도 좋지만 아름다운 자연은 보존해야" 왜관 달오산이 심하게 훼손, 신음하고 있다며 왜관리 달오마을 출향인사 등이 불법 벌목과 무단 형질변경을 중단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왜관8리 달오마을이 끝나는 인근 달오산 기슭은 숲속의 나무를 마구 베어 진입로(차량이 다닐 정도의 너비)를 만들어 놨을 뿐 아니라 이 길을 따라 얼마 가지 않으면 지름 30∼40㎝ 정도의 나무들이 절단됐거나 뽑혀 나가 산림이 수백평의 맨땅(일부는 밭으로 전용돼 있음)으로 변해 있다. 진입로 가에 쓰러져 있는 소나무 및 산림이 훼손된 곳의 밑둥치, 뿌리채 뽑혀 절단된 참나무 등은 이 일대의 달오산 훼손이 얼마나 심한가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달오마을 한 주민에 따르면 이곳 산림훼손은 몇년전부터 서서히 이뤄져 왔다며 수백평에 소나무와 참나무 등이 얼마나 많이 베어져 나갔는지는 훼손면적을 보고 추정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70대인 그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봐왔던 큰 소나무 등이 이곳에서 베어져 나갔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칠곡군 관계공무원은 묘터를 닦기 위해 이곳 왜관리 1039번지 달오산의 소나무와 참나무 7그루만 무단으로 벌목, 지난해 9월 J모씨를 당국에 고발했다고 해명했다. 7그루는 누가봐도 훼손된 달오산 면적과는 터무니 없이 차이나는 수치다. /이성원 편집국장 newsir@naver.com 달오마을이 고향인 김재수(70·부산시 수영구 광안4동) 前동명대학교 교수는 다른 출향인 10명과 함께 달오지역의 T공업 등 혐오시설이 이전해야 한다며 경북도에 진정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김 前교수는 특히 어릴적 아름다운 추억이 되살아나는 고향의 달오산이 심하게 훼손돼 가는 것을 보고 매우 안타까워하며 칠곡군 당국에 이를 제지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는 달오마을은 월오(月塢)라고도 하는데 달(월)오마을과 달오산이 月(달월)자형을 이루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달오의 月자 좌변 옆은 달오지구 택지개발로 원형이 모두 파괴됐고, 月도 계속되는 달오산의 훼손으로 점차 잠식당해 가고 있다고 김 前교수는 지적했다. 이를테면 달오택지개발지구 등의 달무리도 사라져 가고 있으며 달오산의 달(月)도 부숴져 가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다. 다음은 김재수 前교수가 칠곡신문사에 보내온 달오마을의 감회를 적은 편지 내용이다. 유년시절 영상만이 곱게 남은 나의고향! 찾아가서 쉬고 싶고, 돌아가서 살고 싶은 나의 고향 달오마을…. 고향을 떠난지 50여년이 지났으나 지금까지 나의 어린날의 보금자리를 잊어 본적이 없다. 갖가지 향수가 짙게 밴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주름살을 키워 온 나의 삶! 오늘도 변함없이 뱃고동 소리가 멈추지 않고 언젠가는 떠나야 할 이별의 종착역 부산. 이곳에서 둥지 틀어 인생을 불태웠던 교직생활 40여년간의 긴여로를 지난 2005년 2월 마감했다. 이웃이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고, 사람이 많지만 정다운 사람찾기가 어려운 현실 속에서 숨막힌 교통지옥에 갇혀 시간을 도둑 당하고 있는 이 노년의 지친 육신. 콘크리트 구석진 방에서 뭉글뭉글 타오르는 커피잔 놓고 유년시절의 고향을 그려본다. 그리운 내 고향 달오마을은 늦은 겨울 할미꽃 고개 숙이면, 곧 진달래 만발하고, 이어 복사꽃, 살구꽃, 오얏꽃이 울긋불긋 대장정을 이룬다. 여름이면 보릿대와 생풀로 모기불을 피워놓은 앞마당에 침상 대나무 평상에 앉아 정겨운 이야기와 함께 모닥불에 구은 옥수수 냄새에 잠든 동생들을 조심스레 모기장 안으로 뉘어주시던 정다운 할머니. 어찌 무엇이 한가진들 잊을 수 있겠는가! 실개천(냇가, 도랑)에 친구(복이 돌이)와 함께 맨손으로 붕어, 미꾸라지, 메기 잡으려고 쫓아 다니다가 아침에 가라입은 무명바지 홀랑 다 적시곤 하였지…. 봄이면 밀서리, 가을이면 콩서리로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 키를 키웠지. 겨울이면 앞논에서 썰매를 타다가 물에 빠져 무명바지 가랭이, 양말 모닥불 피워 말려신고, 눈싸움에 추위도 잊은 채 진땀을 흘리던 나의 어린시절. 언제 가도 고향은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게 나를 감싸주며, 또다시 어린 시절을 기억하게 한다. 비록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그곳에는 인정이 있었고 꿈과 위안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풍성한 것은 없어도 늘 마음은 넉넉했고 조급한 것이 없었으며, 5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어도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나의 고향은 변함이 없으리라. 시인 장진명 달오산에는 벽오동 나무가 별 하나씩을 꿰차고 달 없는 밤마다 노래를 한답니다 나는 그 노래가 듣고 싶어서 달오산으로 갑니다 벽오동을 이 산에 심은 어느 선생님은 첫새벽의 울음을 다하지 못하여 산자락마다 이파리들을 심어 놓았나 봅니다 나는 보이는 산 이파리마다 피고 지는 잎들을 담지 못하여 발자국마다 수를 셉니다 내 발자국은 수를 세기에는 그 걸음이 단정하지 못하여 별 하나를 밟았습니다 그 선생님은 푸른 아픔을 키워내려고 어두운 골짜기에 별들을 심어 놓았나 봅니다 어쩌면 매원교 저 편 날개 하나로 세상을 버티는 백로들을 위해 달 없는 밤에도 벽오동은 창창한 울림으로 노래를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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