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을사강점’으로부터 시작된 한민족의 수난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수요집회’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일본군에 강제동원 된 ‘위안부’희생자에 대한 일본정부의 책임을 규탄하는 항의집회가 수요일에 열리다 보니 어느새 ‘수요집회’라는 고유명사까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일제강점 35년 동안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이 땅에서 저질은 만행은 일일이 말로서 형언할 수 없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악랄하고도 비인간적인 만행은 두말할 것도 없이 침략전선의 성노예, 황군(皇軍) ‘위안부’가 아닐 수 없다. 세계 어느 역사를 막론하고 선량한 타국의 소녀들을 제국주의 침략군의 성욕을 채우기 위하여 동원시킨 예는 이 지구상에서도 일본제국주의자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일본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하여 불쌍한 조선의 딸들은 오직 약소민족으로 태어났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여자정신대’란 이름으로 노예선보다 더욱 처참한 일본제국의 군함에 실려 이름도 모를 남국의 전선으로 끌려갔던 것이다. 무더운 적도지역에서 제국주의의 영광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병사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하여 이 비운의 딸들은 그들 제국병사들의 허기진 성욕에 제물로 받쳐졌던 것이다. 그 옛날 노예상인보다 더욱 야만적인 이 지축을 흔드는 만행이 결코 어느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바로 대일본제국의 국가정책으로 시행되었다는 점에서 일본제국주의의 잔학성과 그 야만성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이 인륜에 반하는 국제범죄에 대해서 그 어떤 책임추구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사죄도 배상도 거부하는 일본정부와의 외교적 타협을 시도해 왔던 것이다. 종전 반세기가 지난 오늘 날 새삼스럽게 전쟁배상을 거론한다는 것은 선린우호를 해칠 뿐,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한민국 정부의 기본시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민이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배상금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태평양전쟁 피해자문제는, 한국민에게 있어서는 통일문제와 더불어 근세백년 민족의 수난을 청산하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의 비극을 대신한 이 전쟁희생자의 원한이 이제는 조국의 외교적 걸림돌이 된다면, 그리하여 오늘 이 순간에도 겨레의 가슴을 치는 ‘정신대’희생자의 눈물조차도 외교적 흥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면 이민족에 짓밟힌 그들의 조국은 과연 어디란 말인가.
1875년 ‘선린우호’를 내세우며 포를 쏘는 운양호에 부관으로 동승했던 일본군 육군 소좌 가즈라·다로(桂太朗)는, 그로부터 한 세대가 흘러간 1910년 이완용이 ‘조약문서’에 도장을 찍을 때 대일본제국의 내각총리대신으로서 한국 병탄을 총지휘하고 있었던 것이며 그로부터 또 한 세대가 흘러갔을 때, 이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가를 오늘 우리는 ‘정신대’ 희생자의 눈물로서 확인하고 있다.
이 처참한 민족의 비극보다도 이 ‘조선의 비극’보다도 더 큰 국익이 있다면 그 국익이란 것은 과연 무엇이며 이 원한에 사무치는 민족의 울분을 풀지 않고서도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믿는 그런 정부 밑에서라면 또 다시 한 세대가 흘러갔을 때 한민족의 운명이 어디로 갈 것인가는 알고도 남을 것이다.
태양이 작열하는 남태평양의 어느 전선에서 ‘위안부’로 있었던 한 일본인 여성은, 종전이 되자 조선 출신 여성들은 모두 트럭에 실려 나갔으며 정글 속에서 총성이 울렸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일본제국의 천황의 칙령에 의하여 동원된 ‘조선여자정신대’, ‘보국정신대’의 마지막 모습인 것이다.
이제 그 실상은커녕 희생자의 규모나 윤곽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비극의 역사는 저물어 가고 있다. 약소민족이라는 그 가련한 운명 때문에 그들 제국병사들의 ‘황군위안부’로 끌려갔던 비운의 딸들 여자정신대, 아직은 동요를 불러야 할 나이에 일본제국의 전시군가를 부르며 끌려갔던 불쌍한 조선의 소녀 ‘황국신민 여자정신대’. 이 가공할 ‘인류에 대한 범죄’의 피해당사자들이 빼앗긴 일생을 서러워하며 오늘도 일본대사관 앞에서 피맺힌 구호를 외치며 절규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보호해 주는 정부도 조국도 없기 때문이다. 오직 있다면 한민족의 영혼을 갈기갈기 짓밟아 놓은 일본제국의 만행에 분노하는 동족이 있을 뿐이다.
나라 잃은 서러움을 안으로 마시면서 이름 모를 남국의 전선으로 끌려갔던 청춘의 붉은 얼굴도 이제 시들어 가는 한 노인이 되어 오직 한 몸 개인으로서 그 엄청난 대일본제국의 국가만행을 규탄하며 그들의 사죄와 배상을 받겠다는 그 모습은 너무나 처절하고도 가슴 아프다. 광복 60년이 지나도 어찌하여 그대들에게는 조국도 정부도 돌아와 주지 않는단 말인가. 철없는 나이에 노예처럼 끌려갔던 이 불쌍한 조선 사람아. 복사꽃이 너무 곱다고 소녀는 울었다는데…./유무열 극동평화연구소 연구원 uzriv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