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유통점에 밀려 명맥만 잇는 재래시장이 살아나려면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주)신세계가 구미3공단 지원시설부지에 신축하려는 이마트 동구미점에 대한 건축심의가 조건부로 통과된 가운데 구미 대형마트 등의 활발한 영업 및 확장으로 칠곡지역 상권이 죽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대형 유통점의 물량공세와 ‘원스톱’ 쇼핑의 편리함은 재래시장으로부터 소비자들의 발길을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경쟁력을 잃은 소규모 점포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상권도 크게 줄었다. 재래시장이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려면 무엇보다 특성에 맞는 `맞춤형 지원`과 상인들의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선거철만 되면 재래시장은 물건을 살 손님들이 아닌 정치인들의 발길이 잦다. 상인들은 ‘서민경제의 상징’으로 대접해주는 게 달갑지 않다. 일부에선 재래시장과 도시 영세 소매상권의 붕괴는 유통산업 구조 고도화 등에 따른 전세계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많은 선진국에서는 구조와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서도 전통 상권을 보호·육성하고 이를 사회안전망 구축과 동반성장의 씨앗으로 삼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프랑스는 1970년대 이후로 시장이나 도심 영세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유통업체 출점을 제한하는 법안을 강화해 왔다. 현재 ‘라파린법’(1996)을 통해 매장면적이 300㎡를 넘는 소매점의 설치· 확장·변경 때에는 ‘지역상업위원회’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파리 시내에서는 대형마트를 찾아보기 힘들다. 또 노동법으로 대형마트의 일요일 영업을 금지하고 있다. 위치나 영업시간에서도 시장은 대형마트와 차별성을 갖는다.
칠곡군은 왜관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아케이드를 조성키로하고, 시장 활성화 방안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년 동안 전국 시장을 현대화하는데 들어간 예산은 6천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전국의 재래시장 전체의 점포 가운데 비어있는 곳이 13%로 천문학적인 돈을 들이고도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는 것은 저마다 특성을 살리지 못한 획일적 현대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지붕을 씌우는 이른바 아케이드 조성에 들어간 돈만 3200억원, 예산의 절반 이상이 시장의 겉모양을 바꾸는데 쓰인 셈이다.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재래시장이 아무리 현대화 시설을 갖춘다 해도, 자본력을 갖춘 대형마트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며 “대형마트를 흉내 낼 것이 아니라 재래시장의 태생적 한계를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한 차별화 전략에 실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맞벌이 가정 증가와 차량 이용자 급증 등 잠정적 고객들의 소비패턴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측면이 강하다"며 "현대화 시설을 하면서 이들 소비자를 위한 시설이 아닌 상인들을 위한 정책을 폈다"고 덧붙였다. 이는 결국 주객전도의 결과를 가져왔고, 소비자들의 발길을 돌려놓는 데 실패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수억원을 들여 재래시장을 ‘대형마트화’해도 상인들의 주인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제아무리 좋은 활성화 대책을 내놓아도 변화에 적응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는 것이다. 시장에는 카드사용 비율이 현금 사용을 추월하고 있음에도 아직 카드 단말기조차 없는 곳이 태반이다. 콩나물 값 1000원 등에 카드를 사용하기 어렵지만, 이런 불편을 해결할 수 있도록 상인들의 의식전환이 뒤따라야 한다. 상인 중심의 재래시장 활성화 대책에서 벗어나 ‘소비자’ 중심의 자구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대형마트와 인터넷쇼핑을 선호하는 소비행태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산뜻해진 아케이드로 상징되는 가시적인 변화만으로 한계가 있다. 시설을 현대화한다고 소비자들이 시장을 찾지는 않는다. 소비자가 가고 싶어 하는 그 시장만의 매력을 만들어야 한다. 왜관시장 현대화사업도 점포주의 요구 충족은 물론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의 결실을 거둬야 할 것이다. 손님이 붐벼야 주인이 즐거운 법이다. /우태주 리포터 woopo20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