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조약과 군사협정은 엄연히 구분해야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의 성립으로 포성은 멎었지만 그로부터 55년이 흘러간 오늘 날까지도 한반도의 정전상태는 종결되지 않고 있다. 그 주된 원인은, 평화협정의 체결주체는 누가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 때문이다. 평화협정이라고 함은, 전쟁당사자 간에 체결되는 강화조약을 말한다. 따라서 한반도의 정전상태를 종결짓기 위해서는 ‘남북한’간에 전쟁을 종식시키는 협정(명칭불문)이 체결되어야 한다(평화보장방식과 참여국가는 별개). 6·25동란에 있어서 전쟁의 당사자는, 침략전쟁을 도발한 북한당국과 이에 대한 자위의 전쟁을 수행한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양에서는 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 승전기념일’로 정하여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벌리며 한결같이 ‘북미평화협정’을 주창하고 있다. ‘남조선’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처럼 평양당국이 북미평화협정을 주창하는 이유는, 한국동란을 미국과 북한간의 전쟁인 것처럼 여론을 오도하여 미군의 참전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파견된 ‘국제경찰조치’였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6·25남침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떠들어 왔던 그들의 상투적인 선동을 공식화함으로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이 주체조선의 위대한 조국”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보고자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군사정전협정은, 국가나 국제기구(유엔)를 권리·의무의 주체(당사자)로 한 것이 아니라 교전 쌍방의 ‘군사령관’을 당사자로 하고 있다. 즉 한국정전협정의 법적 당사자는, 유엔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및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유엔군총사령관과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사령관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군사정전협정의 ‘시행주체’는,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 그리고 16개 참전가맹국 군대로서 구성된 유엔군 및 그 통합지휘 하에 놓인 대한민국의 전 육·해·공군이며 그들 군대가 소속된 국적국가나 유엔이 정전협정의 시행주체나 권리·의무의 주체(당사자)가 된 것이 아니다. 한국군이 유엔군총사령관의 통합지휘 하에 놓이게 된 것은, 한국사태에 관한 유엔안보리의 군사조치(권고결의)가 결정된 이후부터는 대한민국의 개별적인 무력행사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전협정에 있어서도 유엔군총사령관 만이 서명하고 한국군 대표는 다른 참전가맹국 군대와 마찬가지로 별도의 서명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유엔군총사령관은 한국군까지 대표하여 서명한 것이므로 대한민국 국군은 정전협정에 있어서 유엔군 측 당사자에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군사정전위원회에도 한국군 대표는 유엔군 측 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조차도 정치학자들을 비롯하여 각 언론보도(신문, 방송) 등에서는 한국군사정전협정의 당사자를 미국과 북한 및 중국이라고 하며 대한민국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논리를 취하고 있다. 한국은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①한국군사정전협정의 법적 당사자가 미국과 북한,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및 중화인민공화국이라면, 미국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의 성립당시에 이미 북한 및 ‘중공’(中共)을 합법적인 국가로 승인했다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미국은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유엔에서의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로 승인하기 전까지는 ‘중공’을 합법적인 국가로 인정한 바가 없다. 6.25당시 유엔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는 중화민국(대만) 정부였으며 중화민국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갖는 상임이사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이나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일방의 당사자로 하는 국제조약을 그들 불법집단과 체결했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1953년 정전당시 유엔의 입장에서는 한반도에서 합법정부를 가진 주권국가는 대한민국이므로 유엔이나 미국이 ‘국가’로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일방의 당사자로 하는 정전협정을 체결했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②한국군사정전협정의 법적 당사자가 미국과 북한 및 중국이라면, 이 협정에 서명한 각 사령관은 각각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및 중화인민공화국을 대표하는 전권위원 또는 정부대표의 자격이라야 한다. 그러나 미군 장성이 맡아 왔던 유엔군총사령관(존·클라크)이 정전협정에 서명한 것은 유엔군을 대표하여 서명한 것이며 미합중국을 대표하여 서명한 것이 아님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정전협정에 서명한 북한의 김일성은, 당시 내각수상의 지위에 있었지만 정전협정의 체결에 있어서는 조선인민군을 대표하여 그 최고사령관의 자격(元帥)으로 서명한 것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대표하는 정부대표(首相)로서 서명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중국인민지원군사령관(팽덕회)은, 중화인민공화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중국의 정규군대인 인민해방군을 대표한 것도 아니다. 그는 오직 의용군의 형식으로 출병한 인민지원군(人民志願軍)을 대표했을 뿐이다. 이와 같이 한국군사정전협정은, 국가나 국제기구(유엔)를 당사자로 한 국제조약이 아니라, 교전 쌍방의 군사령관을 권리·의무의 주체(당사자)로 하는 ‘군사협정’이므로 ‘대한민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인가 아닌가 하는 논란은 처음부터 제기될 여지가 없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양에서는 “남조선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며 남조선 군대는 작전지휘권도 없는 미국의 용병이므로 정전상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하여 그 당사자인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기묘한 술책을 전개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유엔군의 제재의 대상이 된 평화의 파괴자가 거꾸로 유엔군의 한 회원국가와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는 것은 유엔의 존립목적을 교란하는 불법행위로서 이는 ‘법률적 불능’에 속한다. 따라서 ‘북미평화협정’이란 것은 유엔헌장을 폐기하기 전에는 국제법상 그 성립이 불가능한 것이므로 그것은 찬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노태우 대통령)는, 이 존재할 수도 없는 ‘허상’을 반대하기 위하여-진짜 미국이 당사자인 줄 오인한 나머지-“대한민국도 정전협정의 당사자라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엉뚱한 발상에서 “정전위원회의 유엔군 측 수석대표를 한국군 장성으로 교체케 해야 하며 한미연합군사령관으로부터 국군의 작전통제권을 환수해야 한다”는 기발한 논리를 창안해 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한사코 반대하는 유엔군사령부를 기어코 설득시켜 1991년 3월 드디어 한국군 장성을 정전위원회의 유엔군 측 수석대표로 교체케 하는 ‘빛나는 성과’를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판문점의 봄소식은 대한민국이 ‘당사자’가 된 것이 아니라 바로 정전협정의 파탄이었던 것이다. 인민군측은 이에 대한 항의로서 1994년 4월 정전위원회의 그들 대표단을 완전 철수시키고 정전협정상의 임무마저 폐기한다고 선언해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민군의 무력도발이 끊임없이 발생해도 이를 따져야 할 정전위원회조차 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인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허상의 마술’에 속은 ‘선무당의 비애’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국가의 진운을 가로막는 이 불필요한 긴장조성도 결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 착오로 인한 정책적 허수의 결과라면 다가오는 세월이 더욱 염려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이 당사자라는 얼치기 주장이 난무하는 한, 평화협정은커녕 한민족의 운명이 어디로 흘러갈지 암담하기 때문이다. /유무열 극동평화연구소 연구원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