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낙동대교 부근 강가에 조그만 마을이 하나 있었다. 그 마을을 사람들은 ‘말구리’라 불렀다. ‘말구리’는 ‘말이 떨어져 죽은 구덩이’이란 뜻인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애절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이 마을에 어떤 부부가 살고 있었다. 남편은 늘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위해 따뜻한 점심밥을 지어오곤 했었다. 그런데 하루는 점심때가 지나도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아내가 점심밥을 내어오지 않았다.
남편은 허기도 지고 걱정도 되고 해서 그만 일손을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아침까지 멀쩡하던 아내가 갑자기 벙어리 짓을 하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되풀이되는 손짓 몸짓에서 대충 아기를 낳았다는 뜻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이것저것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곧장 방문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조금 전에 낳았다는 갓난아기가 이불을 얹는 선반 위에 올라가 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도대체 무슨 괴이한 일인가. 잠시 정신을 수습한 농부 내외는 방에 들어가 아기를 선반에서 내려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더 더욱 놀랐다. 아기 입안에는 이빨이 가지런히 나 있었고, 겨드랑이에는 조그만 날개가 달려 있었던 것이다. “이 아이는 비범한 장사임이 분명하다.” “이 일을 장차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그 당시 가난한 백성이 영웅을 낳으면 권력자들이 가만두지를 않았다. 혹시 그 영웅이 백성을 살리려고 저희들과 맞서 싸우기라도 하면 큰 일이니, 아예 힘을 쓰기 전에 죽이려 들었던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전 가족이 다 죽을 판국이 되었다.
이에 이 부부는 차마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기를 서둘러 없애기로 마음 먹었다. 먼저 그들의 눈에 띤 것은 다듬잇돌이었다. 그들은 그 다듬잇돌을 아기 배위에 올려놓고는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다시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그 무거운 다듬잇돌이 아기 배위에서 숨결에 따라 들락날락할 뿐, 아기는 이불을 덮은 듯 그냥 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더 더욱 겁에 질린 농부내외는 아기 겨드랑이에 돋아 있는 날개를 잡아떼고 밖에 나가 볏섬을 떠메다 올려놓았다. 그때서야 아기는 고함을 지르며 발버둥을 치더니 마침내 죽고 말았다.
이러한 비극이 있던 바로 그 순간 뒷산 중턱에서 천지를 진동하는 뇌성과 함께 큰 바위가 둘로 갈라지더니, 그 속에서 용마(龍馬) 한 마리가 나타나 사흘 밤 사흘 낮을 구슬피 울다가 마침내 마을 앞 강물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용마(龍馬)가 떨어져 죽은 강가의 그 깊은 소(沼)를 ‘말구리’라 하게 되었는데, 이 마을 이름 ‘말구리’ 또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정재술 순심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