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국보 1호인 숭례문(崇禮門)이 화재로 붕괴됐다. 화강암으로 쌓아 만든 기반을 제외한 누각과 지붕이 모두 탔다. 숭례문은 조선시대인 1398년에 창건됐으며 서울에 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됐다. 이번 화재와 같은 인재는 국가적 수치이며 현 우리나라가 얼마나 안일함에 빠져있고, 배금주의에 물들어 문(文)적 가치들을 홀대했는지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반드시 깊은 반성을 해야 한다. 숭례문이 불탄 것이 아니라 공직자들의 양심과 애국심이 이미 전소됐기에 숭례문도 따라서 불탄 것이다. 화재당일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해외출장비와 대한항공으로부터 체류비 일부를 지원받고 출장일정에 맞춰 개인 사비를 부담해 부인과 함께 암스테르담에 머문 것이 공직자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주장에 숭례문 화재의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 출장 목적이 분명하다고 해서 여비를 조달하는 편법이 묵인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관례였다고 해도 잘못된 관례는 바로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1780년 청나라 황제 고종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파견된 조선사신단 가운데 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사신단을 이끄는 지인의 배려 덕분에 한낱 서생의 신분으로 조선을 떠나 청나라 곳곳을 여행하고, 다시 북중국과 남만주까지 둘러본 뒤에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겪은 것을 책으로 펴냈다. 이것이 박지원의 열하일기다. 이 책으로 그는 조선 실학계의 뿌리가 되었고, 조선의 마지막 불꽃이라 일컬어지는 정조 시대의 큰 인물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다. 당시 조선 사신단들은 대부분 좋은 숙소에서 먹고 자고, 미인을 희롱하고 선물을 주고받기 바빴다. 그들이 한 것은 오늘날 한국인들이 흔히 하는 먹고 노는 `관광`에 속한다. 반면, 박지원은 스스로 청나라 학자들과 유럽인 신부들을 찾아다니며 토론을 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어냈다. 불행히도 오늘날 공직자의 해외연수는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외연수 자체가 일제의 계몽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인 사고방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서울행정법원에서 외유(外遊)에 대한 사법적 정의를 내린 듯한 판결이 있었다. 해외연수에 관광이 상당부분 포함됐지만, 일정 가운데 시찰도 일부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문제가 된 해외연수가 오직 관광을 목적으로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놀기를 많이 했느냐 공부를 많이 했느냐가 욕먹는 외유의 잣대가 될 순 없다. 목적을 따지고 결과를 검증해 공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해외연수 일부는 여행사 상품으로 추정되는 코스로 떠나면서 외국 지방의원들과의 교류, 문화재 관리실태 점검 등의 연수목적을 끼워 넣은 경우가 많다. 시민단체들이 전국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대부분 전체 일정의 70∼80%정도가 관광코스를 돌아다닌 것들이었다고 한다. 더욱이 사후보고서를 내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냈다 해도 여행사직원 또는 함께 간 공무원들이 대신 써준 것들이 많다는 게 한 서울시 도봉구의원의 고백이다. 이쯤 되면 세금낭비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경남 거제시의원들은 법정 여행경비가 연간 의원 1인당 130만원에 묶여있는 점을 고려, 해외연수에 관한 자체 규정을 1인당 2년에 한번으로 바꿨다. 대신 유럽 각국의 소각로, 하수종말처리장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해외연수를 했다고 한다. 주민들로부터 외유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해외연수에 관한 관련 법률과 규정을 강화해 지방의원과 공직자들의 해외연수일정 사전공개 및 사후보고서 공개제출을 의무화해야 할 것이다. 부디 깊은 성찰을 바란다. 모든 공직자들의 나태하고 천박했던 마음이 복원되면 숭례문은 천개라도 복원 가능하다. /우태주 리포터 woopo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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