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 서쪽 달암티(月岩峙) 고개 밑에 한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을 사람들은 금학이(金鶴)라 부른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마을 뒷산, 즉 달암티 고개에 명당(明堂)이 있었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이여송(李如松)이가 이 명당(明堂)자리를 없애기 위해 이 산의 혈맥을 잘랐다고 한다. 이때 땅속에서 금새(金鶴) 한 마리가 날아 나왔는데, 이 새가 산위를 한참동안 배회하다가 떠났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이 마을을 금학이(金鶴) 혹은 금악이(金岳)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편으로 생각해볼 때, 산의 혈맥을 자른다고 해서 나야 할 인물이 안 나오고 그 마을이 망한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산의 혈맥을 끊음으로써 ‘아이고! 이제 우리는 망했어!’ 하는 식의 풍수에 대한 민중의 정서와 마음이다. 인간과 땅이 정확하게 1대1 대응한다는 풍수 관념은 동아시아 민족의 오래된 사상이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고유사상은 집단무의식 형태로 다음 세대로 계속하여 이어져 내려왔다. 그리하여 땅이 병들면 인간이 병들고, 지맥을 자르면 당연이 사람의 맥도 잘리게 돼, 그 땅에 사는 사람 역시 힘을 못 쓰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풍수관념은 타문화에 비해 그 지지의 강함과 폭이 넓은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 어디를 가나 풍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가에까지 "○○산의 정기를 받은 터전위에 학교가 세워졌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우리의 풍수 관념은 우리나라에서 생활해온 사람들의 생활 이상이다”라고 말한다. 즉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까하는 우리 민족의 사상과 노력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우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풍수지리를 얼마나 믿고 숭배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풍수적 정서를 중국이나 일본인들이 역이용했다. 그들은 풍수지리학에 뛰어난 인사들을 우리나라에 몰래 보내어 전국의 명산(名山) 명당(明堂) 자리에 쇠말뚝을 박고 석침을 박거나, 쇳물을 녹여 붓고, 뜸을 뜨거나 숯을 묻었다. 그 외에도 신성한 곳을 공원화 하거나 도로나 철로를 내고 건물을 신축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명당의 지기(地氣)를 끊고자 했다. 중국이나 일본인들의 이러한 풍수 침략은 고도의 심리전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풍수를 이용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情緖)를 해치고 희망을 잃게 하여, 우리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이제는 장수가 나지 않는다’ ‘큰 인물을 기대할 수가 없다’ ‘명산의 혈(穴)을 다 끊어버렸다’는 등의 자학(自虐)과 패배(敗北) 의식을 심어줌으로써, 우리나라를 그들의 지배하에 묶어 두고자 했던 것이다. /정재술 순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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