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야! 오늘 반장선거 하는 날이잖아! 앗싸! 수업 띄어 먹고~ 키키키.”
“으이그~ 근데 오늘 누구누구 나가?”
“보면 알겠지 뭐.”
5년 전, 새 학기의 반장 선거 날. 학교 가는 길에서 친구들이 웃으며 뛰어가고 있는 동안 나는 옆에서 내 연설문을 읽고 있었다.
“제가 반장이 된다면……” 2학년에 이어 두 번째에 이은 나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린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만큼 흥분되고 짜릿함이 느껴지는 듯 했다.
“소라야, 떨지 말고 잘해. 연습 많이 했으니까 그만큼만 하고. 우리 큰 딸,파이팅!”
아침에 엄마께서 해주신 응원을 생각하며 나는 3교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등굣길부터 3교시 전까지의 시간들이 물 흐르듯 흘러갈 때마다 긴장된 어린 나의 머리엔 ‘반장선거’만이 들어 있었고, ‘꼭 반장이 되자!’라는 집념이 손에 쥐어져 있는 연설문에 쌓여갔다. 이윽고 3교시를 알리는 종이 치자 아이들이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문이 열리며 선생님께서 들어오시고 곧 반장선거가 시작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반장선거에 나갈 친구들은 모두 나오라고 한 뒤, “여기 이 종이에다 친구들 3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오세요. 그래야 반장선 거에 나갈 자격을 줄 겁니다. 단, 서명은 한사람한테만 해 줄 수 있어요.”
하고 말씀하셨다.
2학년 때 반장선거에 나가서 부반장이 되었을 때는 친구들은 서명을 받지 않고도 선거에 나갈 수 있었고, 그 전에도, 또 그 후 3학년 1,2학기 때에도 그랬기 때문에 나는 이 새로운 방식에 호기심 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우선 친구들의 서명이 급했기 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을 접어두고, 나를 확실히 밀어주기로 했던 나의 삼총사 친구들과 그 외 2, 3학년 때 나와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그리고는 다행스럽고 기쁜 마음으로 서명서를 선생님께 제출했다. 그렇게 해서 남은 후보는 5명이었다. 남자친구가 3명, 여자친구가 나를 포함해 2명이었다. ‘남자애들이 남자들만 뽑아주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감이 덮쳐오긴 했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기에 내가 세운 친구들과의 약속을 하나하나씩 힘 있게 발표했다. 그 후 다른 친구들이 저마다의 약속을 내세우며 연설을 발표했는데, 그 중 어떤 한 친구가, “제가 반장이 되면 콜팝을 돌리고 토요일 마다 간식을 넣겠습니다”라고 공약을 내세웠다.
그러자 친구들이 ‘와!’ 하며 박수를 치고 웃었다. ‘쳇! 비겁하게 먹을 걸로 애들 꼬이기나 하고.’ 하는 내 생각과 달리 내 마음속에서는 ‘나도 맛있는 걸 사준다고 할 걸 그랬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들의 연설이 끝날 때 까지 혼자 고민하던 나는 엄마의 응원을 생각하곤 힘이 불끈 솟아올랐다. ‘그래. 저런 건 자신의 혼자 힘으로 해결해 나갈 수 없는 애들이 하는 거야.’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앞에서 투표를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눈빛을 발사했다.
이윽고 개표가 시작되었다. 한 표 한 표가 나올 때마다 나와 후보인 내 친구들 그리고 우리 반 친구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1학기를 보내야할 우리 반의 대표를 뽑는 일 이여서 그랬을까? 그런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개표가 끝이 났다. 결과는….
내 4학년 인생의 1전 1승! 그것도 대승이었다. 표를 합해서 분석해 보았을 때 여자친구들뿐만 아니라 남자친구들 까지 나를 뽑아준 것 이었다. 우리 삼총사 가족은 나를 향해 승리의 V를 날려주었고 선생님과 친구들은 박수를 쳐 주었다. 내 진심을 담은 약속이 꼭 지켜질 수 있기를 바라며 나에게 소중한 선물을 주었던 것 이다.
한편, 간식을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내세웠던 친구는 두 표를 받고 떨어지고 말았다. 친구들 말을 들어보니 ‘매주 토요일 마다 간식을 넣으면 쟤네 집 거지되겠다.’라는 생각이 서로서로 통해서 뽑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재미있고 엉뚱한 이유로 나는 남녀분포가 자유로운 반장이 되었고, 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토요일에는 급식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플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간식거리에 자신의 양심을 팔지 않았던 ‘백만불짜리 양심들’을 위해서 열심히 1학기를 달리고 또 달렸다.
그 해 내가 새로운 사회를 향해서 내딛은 첫 걸음이요, 첫 과실 이였으며, 첫 배움이었던 반장선거는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올해 또다시 열리는 우리나라의 대선. 항상 뉴스에서는 대선 후보들에 관한 얘기들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 뉴스 속에서 후보들은 자신들의 진짜 속내는 드러내놓지 않은 채 그럴듯한 얘기만을 내뱉는다. 이렇듯 국민들에게 달콤한 약속을 내세우려는 모습이 꼭 간식으로 친구들을 현혹하려던 그 어린친구의 모습을 닮아 있지는 않을까? 아니, 이속에서는 순수함조차 찾아볼 수 없는 타락한 공명의 이름이 박혀있지는 아니할까?
대선은 우리 모두의 대표자를 뽑는 자리이기에 이번만큼은 제발 진실한 공약 자가 나와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말 서민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푸근함과 구수함이 느껴질 수 있는 그런 분 말이다. 내가 맞이하였던 내 4학년 때의 그 감동처럼, 나의 ‘백만 불짜리 양심들’과 함께. ‘4천 8백만 불의 진실 된 양심들’의 진정한 대표자가 될 수 있게…. / 장곡중학교 3학년 임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