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수업을 하다 보면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몇 년 전 일이다. 초등학교 5학년 된 아이인데 한우리논술원에서 필자와 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두 가지 놀란 일이 있었다. 한 가지는 책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줄거리 요약과 독해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책을 내어 주면서 읽어오라고 하였다. 다음 날 수업시간에 그 아이는 책이 너무 재미있다며 단숨에 책을 다 읽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내용 파악하는 수업에서 이 아이는 한 마디도 말을 하지 못하였다.
토론식 수업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첫 수업이라 수업태도만 파악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그 다음 수업에도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이 아이의 경우는 독서방법의 문제점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책을 읽기는 읽는데 말 그대로 글자만 읽은 꼴이 된 셈이다.
『연암을 읽는다』책 속에 `소완정 기문` 편을 보면 연암의 독서방법이 잘 피력되어 있다. 소완정은 연암의 제자 이서구의 호이다. 이서구는 연암에게 “독서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한다. 이에 연암은 "물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는 물을 보지 못하는데 그거 왜 그런지 아나? 보이는 게 죄다 물이면 물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일세. 자네가 동방삭(東方朔)처럼 글을 달달 외운다 한들, 뭐 얻는 게 있겠나? 이래서야 되겠는가?" 이서구가 놀라서 “어찌해야 좋겠습니까?”하고 다시 묻자 “자네는 물건 찾는 사람을 보지 못했는가? 앞을 보면 뒤를 못 보고, 왼쪽을 보면 오른쪽을 못 보지. 왜 그런지 아나? 방 안에 앉아 있으니 자기 몸과 물건이 서로 가리고 눈과 대상이 너무 가깝기 때문이지. 그러니 바깥으로 나가 문풍지에다 구멍을 뚫어 그리로 들여다보는 게 나은 법일세…."
위의 내용을 보면 책에 지나치게 함몰되면 책 자체의 요점파악이 어렵다는 것이며, 또 바깥으로 나가 문풍지를 뚫어서 보라는 것은 비판적 거리 확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연암이 말하는 독서는 ‘꿰뚫어 읽기’이다. 즉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주체적 글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소완정 기문`은 연암이 이서구의 독서법을 보고 문제점을 지적해 놓은 글이다. 이 글을 보면 독서법에 대한 논의가 아주 깊이 있게 다루어져 있다. 그 당시 사대부들이 관념적인 주자학에 매몰되어 청나라를 오랑캐로 취급하며 그 문화를 배격하고, 소중화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비판한다. 당대의 사대부들이 취했던 독서법으로는 창조적 글 읽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연암의 시대는 그렇다 치고,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이런 물음을 던지며 연암의 독서법을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는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독서를 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연암이 비판한 독서법은 성리학적 독서법, 고증학적 독서법, 과거시험만을 위한 독서법이다. 그 대안으로 독서를 사물 및 현실 세계와 긴밀히 연결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독서법은 감수성과 상상력을 억압하지 않고 활짝 열어젖힘으로써만 가능한 일이다. 책을 읽되 좀 더 깊이 있게 제대로 읽어야 한다. 연암 박지원의 글을 읽으며 고전 읽는 재미에 흠뻑 빠져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