星! 울고 있었구나. 그간 너랑 만나 마신 나의 술잔으로도 담을 수 없을 만큼 넘쳐흐르는 너의 울음. 평범할 수 없는 아픈 내음이 물씬 풍기는구나. 을씨년스런 겨울바람도 잠재우는 한잔의 보드카보다 더한 독취가 나는 너의 아픈 `통취`. 아니 깊어져가는 가을의 스산함을 은근한 취기로 마셔버리는 국순주(鞠純酒)같이 나의 가슴에 베어드는 그윽한 향취이리. 星. 너랑 내가 자주 만났던 카페 `무아`를 기억해주렴. 그 카페이름처럼 우리네 한사람 한사람은 원래 無我가 아니겠니? `내가 없다` 이는 항상 존재하는 나의 실체성이 없다는 의미일게다. 나아가 무아지경에 이른다는 말은 `나`라는 의식의 틀에서 벗어나 아집이 없는 상태이리라. 더구나 우리네 삶의 구석구석을 보면 항상 똑같이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어디있니. `나`가 있으면 `너`가 있고, 나같이 못난 사람이 있으면 너같이 잘난 사람이 있으며 너랑 나랑 만남이 있으면 이렇게 헤어짐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無我`의 논리대로라면 영원한 이별, 다시 못만나는 결별이란 있을 수 없는 법. 흔히들 사용하는 `회자정리`(會者定離), 즉 만나는 자는 반드시 헤어진다는 말속에 이미 `이자정회`(離者定會), 즉 헤어진 자는 반드시 만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아니리라. `극과 극은 상통한다.` 하나의 극에서 이탈돼 그 극에서 가장 멀어질 정도로 숱한 회귀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 처음의 극과 다시 만나는 것이 상극의 말로인 성싶다. 회자정리, 이자정회는 인간의 조건이다. 조건은 필연과 우연의 양면이 있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 평생을 함께하는 천생연분(필연적)의 부부가 되지 않는가. 즉,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난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두 사람은 만났어야 한다. 여기에 우연과 필연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만남과 이별도 함께 있다가 서로 헤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이별은 만남과 동일선상에 함께 있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별은 영원히 단절되는 결별, 즉 종점이 아니다. 새로운 만남의 의미로 거듭나는 하나의 쉼표이다. 굳이 점이라고 할 경우 만남과 하나되는 `4차원의 점`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星! 우리의 이별을 영원한 결별로 생각지 말았으면 한다. "이별은 사랑의 종말이 아니라 사랑의 결과다." "아 나는 님을 보냈지만 내마음의 님은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와서 치유할 수 없을 우리의 아픈 기억을 남에게 보이긴 싫다. 서러워 아파하는 너의 마음 조각들이 기쁨으로 만나도록 해줄 만큼 내게 위로할 힘도 남아 있지 않고…. 이럴줄 알았으면 너랑 만나면서 필연적으로 있을 헤어짐을 위해 조그만 힘이라도 남겨 놓았을텐데 난 너의 모든 것을 너에게 던졌나봐. 그럼에도 자꾸 너의 모습이 생간난다. 늘 외롭다고 말한 星! 부족함과 만족을 알아 자제할 줄 안 星. 자기만큼 남을 사랑하지 못해 고민에 빠졌던 星. 이제 그런 星이 내곁에 없어서 하는 말인데 나는 星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아니 헤어진 지금에야 알 것 같다. 목이 마르면 타는 목마름으로 시원한 물을 찾고, 배가 고프면 배고픈 초라함으로 밥을 찾는 어쩔 수 없는 속물적 삶을 거부하려고 발버둥친 星의 성스러움. 지금 나의 순수와 다시 만나고 있을게다. 자! 떠났지만 다시 만나자. 星. 돌아올 만남의 마당은 없어도, 떠나도 만나고 다시 헤어져 날개란 날개는 모두 떨어져 나갔어도 이제 어디에도 갈 길 없는 한가닥의 숨결로 만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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