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면에서 남쪽으로 약 6km 지점 연호리에 구슬개(玉浦)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을 구슬개라 부르는 것은, 까치가 구슬같이 아름다운 알을 많이 낳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구슬개 마을에 활 잘 쏘는 선비가 살고 있었다. 어느 봄날, 선비는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요란한 까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펴본 선비는, 가까이 있는 큰 고목나무 가지에서 어미 까치 한 마리가 안타깝게 울고 있는 모습을 발견 했다. 큰 구렁이 한 마리가 혀를 날름거리며 까치집을 향해 기어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선비는 새끼 까치들이 구렁이의 먹이가 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지고 있던 활을 겨누어 구렁이를 향해 쏘았다. 화살이 쌩! 소리를 내며 날아가 구렁이의 머리에 박혔다. 어미 까치는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듯이 몇 번이고 선비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이후 이듬해 봄에 그 까치가 이곳에다 구슬같이 아름답고 큰 알을 많이 낳았다고 한다.
한편 이 전설을 단순히 보은(報恩) 설화로만 보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위 이야기에서 `선비는 까치를 위해 구렁이를 죽였다.` 그러면 선비의 이러한 행위는 과연 올바른 선택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동물의 세계에서 사자가 초식동물들을 마구 잡아먹는다고 해서 사자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저 육식동물의 본능이며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구렁이는 먹이사슬 관계에 따라 자신의 먹이인 까치를 잡아먹으려 했던 것뿐이다. 까치 또한 작은 벌레들을 잡아먹으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만약 어느 누군가가 이런 육식동물들의 행위를 억지로 막는다면 생태계는 균형이 깨져 파괴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생 동물이 자신의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먹이를 죽여서 잡아먹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선비가 까치와 구렁이의 일에 간섭을 한 것은 바람직한 행위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을 어찌 자연법칙의 문제로만 볼 수 있겠는가? 만약에 구렁이가 그냥 큰 까치를 잡아먹으려 했다면, 선비도 모른 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렁이는 어린 새끼 까치들을 노렸고, 선비는 그 까치 어미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누가 그냥 지나칠 수 있었겠는가? 모성은 자연적인 감정이며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성애 앞에서는 누구나 숙연해지고 돕고 싶어진다. 그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때문에 이 일은 자연법칙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인정(人情)적인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