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은 한역사의 좌표, 지우려 하여도 지워지지 않는 한민족의 아픔이 되살아나는 6-25한국전쟁! 하지만 반세기의 긴 시간의 흐름을 따라 경제성장의 급물살과 사상적, 사회적가치관 혼돈의 소용돌이 뒤안길로 역사의 소중한 교훈들이 망각 안에 서서히 묻혀버리는 세태를 무기력하게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왜 아픈 상처를 들추느냐"고 반문도 있겠지만, 군사전략서에 "전쟁을 방지하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교훈처럼, 너무나 큰 희생을 치렀던 이 땅에서의 전쟁이 다시는 발생되지 않도록 강력한 의지를 우리후손들에게 일깨워 주고 싶다. 또 한국전에 참가한 16개국의 젊은 병사들의 고귀한 희생의 넋을 한국인의 가슴에 따뜻이 묻고, 그 가족과 후손들에게 보은의 마음, 결코 소홀하거나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아울러 세계평화의 정신을 심을 수 있는 너무나 값진 보물을 구호에로만 그치는 호국의 고장이 될까 심히 우려되는 심정 가눌 길 없다. 필자는 6-25전쟁이 일어나기 만4년 전, 1946년 6월18일 왜관 아랫개(下浦) 갱빈(江邊)에서 태어났다. 다섯살 나이로 왜관에서 대구까지 피난 갔던 기억 중, 몇 가지회상은 아직도 선명히 되살아난다. 피난 후 본 집에 돌아오니 갱빈 마을은 유엔군 주둔지였다. 그 동안 군인의 신분으로 사관학교에서 전사(戰史)를 공부하면서, 한국전쟁의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의 방어선이 지리적인 전략이 얼마나 중대한 역할이었는가는, 일본점령을 위해 몽골군이 대한해협에서의 실패, 2차대전시 막강하던 독일 군이 영국 도버 해협을 건너지 못한 사례들과 견줄만하니, 그중에서 왜관의 명성을 재인식하여, 허물어진 옛 성터의 꼴이 되지 않기 위해서 범국가적으로 지혜를 모아야할 것이다. 6-25전쟁 마지막 고비의 풍전등화의 위기에, 왜관철교-인도교 북서쪽에 전쟁종식이 목전에 다다른 북한군이 낙동강을 건너기 위해 도하장비가 도착할 때까지 집결한 북한인민군이, 미8군 정보부 정보판단에 의하면 인민군 4개 사단과 수개의 기갑연대 병력 약 4만여명의 대부대가 집결, 큰 위협을 감지한 사단장 게이장군은 왜관북서지대 일대를 대대적으로 항공폭격을 하도록 항공근접지원(Close Air Support)을 요청하였다. 그 요청에 의해서 8월16일, 왜관낙동강 북서쪽, 폭3.5마일(6.5km), 길이 7.5마일(14km)의 27평방마일(92㎢)의 항공작전으로는 대단히 좁은 밀집지역에 B-29폭격기 98대가 북에서 남쪽으로(공격방향) 융단폭격으로 투하한 폭탄 량은 500파운드(227kg)폭탄 3천84개, 1천파운드(454kg)폭탄 150개로 즉, 육상 중(重)포탄 3만발에 해당하는 엄청난 폭탄을 소낙비처럼 쏟아 부었으니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다음날 그 지역 항공정찰보고에 의하면 전장(戰場)에 북한 인민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과(戰果)에 대해서 총공세를 위해 집결된 인적, 물량적 수치는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인적 물질적 그리고 정신사기에 치명타를 입어, 꼭 한 달(9월 15일) 후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북한공산군을 퇴각시킨, 역사적인 큰 두 작전 중 하나의 항공작전이 왜관낙동강 상공에서 이루어진 중대한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호국의 고장의인들 뿐만 아니라 더 넓은 세계로 인식을 고취시켜야할 것이다. 만약 이 시기를 놓쳐 인민군이 왜관 낙동강을 도하했더라면 인민군의 주력부대를 어디서 어떻게 격멸할 수 있었겠는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는 감회이다. 필자는 전투조종사로 24년간 조국영공을 수호하였고 공군사관학교에서 9년간 비행교수로 후배전투조종사를 양성하면서 34년간 총비행시간은 5천612시간인데, 그 시간을 쉽게 설명하면 하루 24시간으로 나누어 보면 234일(7.8개월)동안 하늘에서 체공했다. 왜관 낙동강을 무대로 한 이 고장 출신임을 자부한다. 이제 공직에서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 같이 6-25한국전쟁의 고귀한 사료(史料)가 호국의 땅에서 보존되고 영구히 기리기 위해 왜관 낙동강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항공 쇼(Air Show)가 개최되고, 전쟁재발을 위하여 전쟁기념관을 적어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못지않게 국가적인 차원에서 종합적인 계획 하에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을 지켜낸 호국의 고장치고는 두 기념관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필자의 귓전에는 항상 철교를 지나가는 기차 소리가 승자도 패자도 없는 6-25혈투 속에 숨져간 원혼들의 울음이 신음소리처럼 들리지 않는가? 울음이 멎도록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분들께 소명의식과 더불어 풀어야할 과제라고 봅니다. /이영순 본지 大記者 air460@hanmail.net 유석(惟石) 이영순 -공군사관학교/국방대학원 졸업 -대령예편/공사 비행교수 역임 -PEN 클럽/칠곡문협 회원, 시인 -현 순심고등학교 웅비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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