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다는 것은 날로 더하는 것이요, 도를 행한다는 것은 날로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냄으로써 무위에 이른다, 무위 즉 무엇을 인위적으로 하지 않지만 되지 않는 것이 없다." 도덕경에 나오는 글이다. 그릇의 용도는 채움에 있다. 따라서 가득 찬 그릇에는 더 이상 무엇을 담을 수 없다.
담기 위해서는 그릇을 비워야 한다. `여백의 미`라는 말이 있다. 비어 있는 것이 그냥 빈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배치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채울 수 있는 사람이나 집단은 없다. 그래서 다양한 것이고 무질서해 보이는 것이며 시끄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권위주의적 사고로 볼 때는 비효율적이며 비생산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 사는 동네는 원래 그래야 `맛`과 `멋`이 있는 것이다.
5월의 따뜻한 봄은 야외에서 활동하기 좋은 날씨인데다가 가족 단위의 외출도 많아지는 계절이므로 전국에서 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다. 축제란 원래 성스러운 신앙적 제의(祭儀)에서 출발했으나 오늘날에는 종교적 상징성이 퇴색해 놀이 형태로 변모했다. 지역마다 축제를 만들어낸 배경에는 모두 사연이 있고 저마다의 고민과 열정이 있다.
칠곡군에서도 지난 5월5일부터 8일까지 4일간 지역의 벌꿀을 비롯한 농산물을 홍보-판매하기 위해 지천면 신동재에서‘아카시아벌꿀축제’를 열었다. 어느 지자체나 축제가 끝나면 관객을 얼마나 동원했느니 이러저러한 성과를 내세우며 성공을 자축하고 홍보에 열을 올리게 마련이다. 물론 아카시아벌꿀축제도 마찬가지다.
언제든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행사가 주변에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 좋은 일이다. 삶 자체를 풍요롭게 하는 다양한 방식 중 축제 역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축제들은 비슷비슷한 행사와 공연들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축제가 비경제적이라는 지적들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아카시아벌꿀축제도 지역민의 정서와 다른 축제를 위한 축제, 행사를 위한 행사라는 비판이 항상 뒤따르는 것도 분명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축제의 전반적인 아이템도 참신하지 못했고, 축제장의 구성과 안내체계 또한 미비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관객들은 불만을 쏟아내고 영업부스 임차상인들 또한 장사가 안된다고 불만이고 축제장 주변에는 각종의 장사꾼들이 판을 치고…. 지역이미지를 제고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 것도 아니고 많은 지역민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한마당이 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축제는 지역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지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준다. 가끔 이웃들과 허심탄회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눌 때 그들의 욕구를 생생하게 느낄 때가 많다. 그것은 거창한 문화행사나 공연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하는 답사프로그램이나 공연들, 건강과 관련된 강좌들, 지역과 환경의 문제들을 함께 생활 속에서 공유하는 일들, 타인들과 유대를 갖고 싶어하는 마음들이 그것들이다. 방문객 수를 따지고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따지는 일에서는 제발 벗어나자. 지역에 터잡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안하고 다독거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2억4천여만원의 막대한 칠곡군 예산이 투입, 의례적이고 홍보성으로 축제를 치르다 보니 축제의 주인이어야 할 지역민들을 구경꾼 노릇이나 하게하고 지역문화를 적극 발굴하고 육성하는 일에 무관심한 축제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축제 내용의 질적 개선을 위해 인기있는 축제를 모방한 유사 축제를 여는 것보다는 우리 지역의 역사성과 특수성, 교육성을 살린 축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며 관 주도형 축제에서 벗어나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축제로 전환해야 생명력과 독창성을 유지할 수 있다.
축제가 성공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축제의 지역적 특성, 축제 내용의 독창성, 축제 주체의 민중성, 축제 기능의 생산성, 축제 지식의 전문성 등이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아카시아벌꿀축제는 이런 다섯 가지 요소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칠곡군이 지역의 역사성에서 의미 있는 것을 선정해 적극 육성하는 길을 찾기 바라면서 `낙동강평화축제`가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지난 2000년 낙동강변에서 치른 이 행사는 위에서 말한 요소를 고루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지역의 역사적 비극을 승화하기 위한 제의로서의 의미를 지닐 뿐만 아니라, 지역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해낼 수 있고, 문화산업화의 가능성도 충분하며, 인권과 평화 문제를 학술적으로 논의하는 전문성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 깊이와 폭을 넓히고 경제적으로도 유용한 ‘축제산업’의 도약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우태주 리포터 woopo20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