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율은 서쪽에 있는 낙동강이 남쪽으로 흐르면서 형성된 넓은 갯들을 끼고 있다. 조선 선조 때 직산공(稷山公)이 조정(朝廷)의 모함을 받아 이 갯들(당시에는 강 가운데 뚝섬)에서 유배(流配)생활을 했다. 당시 갯들에는 갈대가 무성(茂盛)하게 자라 있었다. 공은 이 갈대밭을 개간하여 밤나무를 많이 심고 가꾸었다. 이로부터 이곳 주변에는 밤나무 숲이 넓게 조성 되어, 사람들은 이곳을 밤나무가 많은 마을이란 뜻으로 ‘밤실’이라 불렀다. 이후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북율(北栗)과 중리(中里)일부를 이 지역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마을의 위치가 본래의 밤 숲보다 남쪽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남율(南栗)로 고쳤다. 그러나 아직도 이 마을 및 인근지역 사람들은 이 마을을 ‘밤실’이라 많이 부른다. 왜일까? ‘밤실’이 부르기 좋고 뜻도 좋고, 듣기에도 정이 가는 순수한 우리말 이름이기 때문일까? 우리 선조들은 밤나무 심고 가꾸는 것을 많이 장려했다. 그것은 율곡 선생과 관련된 ‘나도 밤나무’ 이야기나, 울릉도의 ‘너도밤나무’ 이야기 등 밤나무와 관련된 설화(說話)들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선조들이 밤나무 심기를 장려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밤나무가 다른 과실수에 비해 비교적 쉽게 재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곧바로 먹을 수 있는데다 저장성이 뛰어나고 맛이 있어서, 곡식이 모자랄 때 귀한 밥 대신 구황작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던 것이다. 그래서 밤나무는 ‘밥나무’로 불리기도 했다. 밥 대신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달리기 때문이다. 지난날 시골 아이들은 가을이 무르익으면 앞산 뒷산을 오가며 알밤을 주워 먹기도 하고 때로는 밤송이를 따서 생밤을 까먹기도 했다. 그런데 이 밤 알갱이의 속살을 먹기 위해서는 수고를 많이 해야 했다. 그 고슴도치처럼 뾰족한 밤송이를 벗겨 내고 나서도 밤톨의 겉껍질이 있고 또 그 속에 속껍질이 있으니 하는 말이다. 밤은 그 자체로 영양가 높은 식품이지만 약재로도 아주 훌륭하다. 밤은 근력을 강화해주고 뼈를 단단하게 해주므로 회복기 환자나 하체가 약한 사람, 걸음마가 늦은 어린아이에게 좋으며, 위장과 콩팥을 보호하고 강화해주며 혈액순환을 돕고, 지혈작용도 한다. 밤나무 잎도 쓸모가 있어서, 김장 때 밤나무 잎을 김칫독에 깔고 그 위에 김치를 넣으면 빨리 시지 않는다. 밤나무 잎의 성분은 알카리성이고 김치의 신맛은 산성이라 이 둘이 만나면 중성이 되어 김치가 시지 않고 오래 동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밤나무는 신주(神主)를 모시는 위패(位牌)를 만드는데도 이용된다. 그 이유를 알고 보면 참 재미가 있다. 다른 식물의 경우 나무를 길러낸 첫 씨앗은 땅 속에서 썩어 없어져 버리지만, 밤은 땅 속의 씨 밤이 생밤인 채로 뿌리에 달려 있다가 나무가 자라서 씨앗을 맺어야만 씨 밤이 썩는다고 한다. 그래서 밤은 자기와 조상의 영원한 연결을 상징한다. 자손이 수십 수백 대를 내려가도 조상은 언제나 자기와 연결되어 함께 이어간다는 뜻이다. 오늘날도 밤은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한다. 밤을 넣어 만드는 약밥은 별식중의 하나이고, 갈비찜을 비롯한 여러 요리에 모양 삼아 맛 삼아 밤이 들어간다. 그리고 가을철 밤에는 가족들끼리 둘러 앉아 삶은 밤을 까서 먹는 재미가 여간 아니고, 겨울밤에는 군밤 한 봉지 사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의 모습이 정겹다. 근본을 잊지 않고 요모조모 요긴하고 때론 특별하지만 풍성하게 끝을 맺는 밤나무, 밤나무는 요즘 작은 일에 너무 집착하는 우리보다 낫다 싶다. /정재술 순심중 교사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