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 ‘죽마고우도 말 한마디에 갈라진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말이 씨 된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 된다.`
말과 관련된 속담이다. 태초에 신(神)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기 때문일까.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예부터 어른들은 분별없이 아무렇게 말을 하면 `말이 씨 된다`라며 주의를 주셨다. 함부로 말하다가 이 주의를 받으면 무서워 하던 말을 중단하곤 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누구든지 심은 대로 거두리라. 말이 씨가 되면 말한 대로 이뤄질 것이다. 말이 씨앗과 같다면 한번 뱉어 놓은 말도 땅에 떨어진 한 알의 씨앗처럼 싹트고 성장해 잎이 달리고 꽃이 핀다는 것이다.
희망하는 것을 계속 상상하고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으로 주문(呪文)을 계속 외우면 힘이 솟아나고 언젠가 그대로 이뤄질 때가 있다. 말이 씨가 되는 순간이다. 주문(呪文)은 말의 씨앗을 자신의 마음과 신념 속에 심는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굿판에서 무당의 주문은 그냥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의 씨앗을 촘촘하게 꼭꼭 심는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가 매일 새벽에 정화수(井華水)를 떠 놓고 가족의 평안은 물론 자식이 잘 되기를 비는 기도만큼 순수한 진언(眞言)이 있을까.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언어는 참되고 긍정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부모의 칭찬과 격려 한마디가 자식에게 희망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은연중에 심어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우들과 스마트폰 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학생들은 흉기보다 무서운 폭력적인 언어와 나쁜 말의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정모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하면서 언어폭력의 심각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흔히들 언어폭력이 물리적 폭력보다 심각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언어폭력은 모든 폭력의 시작인만큼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고 비속어나 폭력적인 언어를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할 권리는 있지만, 동시에 욕설과 폭력적인 말을 듣지 않을 권리도 있다. 표현의 자유가 상대의 인격과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분이 나쁠 때 나쁜 언어나 비속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 청소년들은 비속어를 암묵적 합의라는 미명 아래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문제는 비속어와 욕설이나 언어폭력을 계속 하다 보면 습관처럼 굳어져 나중에 고치려고 해도 잘 고쳐지지 않은 데 있다.
청소년 스스로 언어문화개선 홈페이지를 통해 언어 습관에 대한 자기 진단을 수시로 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부모의 언어습관이 그대로 자녀에게 반영되는 만큼 어른들부터 고운 말과 품격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모든 폭력의 시작인 언어폭력을 미리 막아 밝고 명랑한 사회를 조성해 나가기 위해서는 바른말 고운 말 사용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존댓말 사용 권장으로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대수 부모들은 자녀의 존대어 사용을 원하고 있으나 요즘 자녀가 부모에게 높임말을 사용하지 않는 세태 때문인지 경어 사용을 포기한 것 같다. 아무리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 하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낮춤말을 하면서부터 부모를 동등한 관계에서 마구 대하게 되고, 결국 반인륜적 사회로 흘러가기 쉽다.
내가 존중 받기 위해서는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이는 `꼰대 마인드`와는 다르다. 존댓말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존댓말은 수직 관계에서 사용하는 권위적인 어법이 아니라 상대방을 높임으로써 나 스스로를 높이는 경어(敬語)다.
부모와 교사는 자녀와 학생에게만 존댓말 사용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부모와 교사가 먼저 경어 사용을 실천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듯이 존중을 중시하는 사람이 자신과 타인을 존중할 수 있다. 부모와 교사의 입장에서 수직적 상하관계에서 아이를 꾸짖기보다는 존중하는 말투로 타이르면 아이는 인격체로서 어른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는 느낌으로 어른들을 존경할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자신의 어록 『다산어록청상』에 "지위가 높은 사람의 말 한마디는 아랫사람의 인생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좋은 말도 가려서 하고 충고도 살펴서 하라.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박힐 수 있으니 사려 깊지 못한 말과 행동은 원망을 사고 재앙을 부른다"고 강조했다.
반드시 필요한 말만 할 때 말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다. 말은 사람의 인품을 닮는 그릇, 즉 인격이기 때문이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박힌다면 차라리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좋다. `가만히 있으면 2등은 한다.`
품격 있는 지성인은 자신이 말할 때와 어떤 말을 해야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할 줄 안다.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다.’ 그러나 서양의 이 격언대로 처음부터 계속 침묵하라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어야 그에 맞는 말을 할 수 있기에 우선 상대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聖(성인성·耳+口+王)은 耳(귀이)와 口(입구)를 잘 다스리는 王(왕)이라는 뜻을 지닌 한자다. 이 글자에서 귀(耳)가 입(口) 앞에 위치한 것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번뜩이는 지혜가 경이롭다. 시대를 초월해 있는 聖人(성인)은 오늘날 소통의 시대에도 부합한다. `경청(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