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타인과 약속을 하거나 지나가는 인사로 "언제 차 한 잔 하자"고 해 놓고 막상 만난 자리에서는 커피나 술을 마시는 경우가 다반사다. 서양에선 차와 커피를 확실히 구분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과거 즐비했던 다방(茶房)은 거의 다 사라지고 커피전문점으로 간판이 바뀌었다. 차(茶)나 음료 등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하는 공간인 `다방(茶房)`을 순수 우리말로 하면 `차방`, `찻집`이다. 그만큼 커피에 밀려난 국내 차(茶)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우리가 다반사로 사용하는 `다반사`라는 용어도 문제가 있다. 다반사(茶飯事)에서 다는 차 다(茶)자이고 반은 밥 반(飯)자이다. 사전적 의미는 "차(茶)를 마시고 밥(飯)을 먹는 일이라는 뜻으로, 보통 있는 예사로운 일(事)을 이르는 말"이다. 항다반사(恒茶飯事)의 준말이다. 우리 민족이 얼마나 차를 마셨기에 이 말이 생겨났을까. 다반사란 말은 중국에서 적용되는 말이다.
중국 속담에 `아침에 차 한 잔은 하루를 활기차게 하고, 정오에 차 한 잔은 일을 즐겁게 하고, 저녁에 차 한 잔은 정신을 맑게 해주고 피로를 풀어 준다`라는 말이 있다. 중국인의 차 사랑은 맑지 않은 물을 정화해 마시는 데서 시작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의 효능과 차 문화가 이들의 생활 속 깊이 자리잡으면서 중국이 `차의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러나 새천년(2000년)과 함께 커피 소비가 급증하면서 중국은 커피 대국으로 부상했다. 차 생산지에서 커피생산지로 변모하고 있으며, 중국인들의 커피 소비도 급증하고 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서구 문화가 유입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스타벅스 같은 국제적 커피기업들은 원재료 조달을 위해 중국 차의 고향으로 알려진 윈난성(雲南省)에 법인을 세워 커피의 주요 생산지가 됐다. 우러나오는 맛과 향을 지닌 차가 기호품이었던 중국인 특유의 `만만디(천천히)`가 젊은층을 중심으로 ‘빨리빨리’ 문화에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한국 국민의 1인당 연간 차 소비량은 50g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차보다 술을 훨씬 많이 마신다. 이같은 음주문화로 생겨는 말이 ‘음주망국(飮酒亡國) 음다흥국(飮茶興國)’이다. 술을 마시면 나라가 망하고, 차를 마시면 나라가 흥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차 단체 대표나 원로 중에서 차가 술보다 좋다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술을 비하한 이 말을 자주 인용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말을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이 했다고 하나 다산이 이 말을 했다는 기록이나 저서는 없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호에서 보듯이 차를 누구보다 좋아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술독에 빠졌으나 차를 마시면서부터 정신을 차렸고, 위대한 저술을 대거 남기게 됐다. 그의 호는 지명에서 온 차나무가 많은 산 `다산(茶山)`이지만 이를 거꾸로 하면 `산다`가 된다. 다산은 술에 찌든 몽롱한 삶에서 맑고 깨끗한 차의 삶으로 바꾸면서 다시 살아났다.
한국 최고의 지성이자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교수의 차와 술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자. 차(茶)는 깨어 있는 물이고, 술은 잠들어 있는 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차(茶)의 나무는 달마의 눈꺼풀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잠자지 않고 수도를 하던 달마가 어느 날 너무 졸음이 와서 자신도 모르게 깜박 졸았다고 한다. 그는 그것을 크게 뉘우치고는 다시는 수면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눈꺼풀을 도려내 뜰로 내던져 버린다. 거기서 싹이 나 나무 한 그루가 자라니 그것이 곧 차(茶)의 나무라는 것이다. 차는 잠을 몰아내는 각성의 물이다. 달마의 눈처럼 늘 깨어 있는 물, 사람들은 거기에서 수면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칠곡차문화회 배외자 회장은 "다기(茶器) 등을 갖춰 차를 즐기려면 커피에 비해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선입견 때문에 차를 멀리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며 "차는 사치와 허영이 아니라 차를 우려내는 과정에서 기다리는 여유를 가지고 상대와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소통의 매개체"라고 말했다.
배 회장은 "초스피드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조급한 습성에 따른 병폐는 물론 소통 부재에 따른 오해와 충돌은 차 마시는 문화가 해결해 줄 것"이라며 코로나19로 힘들게 `집콕`하는 사람들에게 차 한 잔을 권했다.
이성원 대표기자 newsir@naver.com